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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페니키아 여자의 믿음'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07 조회수601 추천수5 반대(0) 신고

시리아-페니키아 여자의 믿음 (7, 24- 30)

 

그 부인은 이교도로서 시리아-페니키아 출신이었는데,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 내 주십시고 그분께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하고 응답하였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그 여자가 집에 가서 보니, 아이는 침상에 누워 있고 마귀는 나가고 없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으나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어떤 부인에 의해 숨어 계실 수가 없었다. 그 부인은 곧바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분 발 앞에 엎드려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 내 주십사고 예수님께 청하였다.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자녀들의 빵을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하고 모욕스런 말씀을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인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하고 응답하였다. 모욕적인 말을 들으면서도 끈질기게 이토록 예수님께 간절히 청하는 이  여인은 누구인가? "입술로는 공경하면서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너희는 나를 헛되이 섬긴다."라고 말씀하셨던 바리사이파나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매달리는 이 여인은 누구인가? 그들과 이 여인과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우리는 어제 복음에서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립힌다."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러니까 사람을 더립히는 것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나오는 것이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안에서 사람을 더립히는 것들이 나오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것은 "어리석음"이라고 했다.


거의 모든 것은 어리석음에서 나온다. 즉 무엇이 선이고 악이고 ,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 먼저이고 나중이고, 거짓이고 진리인지를 구분할 줄 모르는 어리석음이 사람을 더립힌다. 예수님은 이런 분별력이 없는 사람을 "어리석은 이"라고 하였다. 

 

그럼 어리석음이란 무엇인가?
어리석음은 어둠이다. 어둠은 보지 못한다. 보지 못하니까 구분할 수 없다. 매일 보아도 그것이 그것이고 그것이 그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헤메이다가 구렁텅이에 빠지고 넘어지고 그래서 상처투성이가 된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셨고 보여 주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들은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마르 4,12)고 하였고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니까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렇게 보고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듣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이들을 가리켜 귀머거리, 소경이라고 하였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있던 몇몇 바리사이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겠지요?"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고 말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씀하셨다.

 

어리석음에서 지혜로운 자가 되려면 깨달아야 한다. 즉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을 알아들어야  하고 예수님이 보여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깨달음이 곧 어둠을 제거하고 빛을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마르7,18)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깨달음은 "생명의 샘이 진정 당신께 있고, 우리는 당신의 빛으로 빛을 보옵나이다."(시편 35)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내 안에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면서 주어지는 은총이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마태4,16)라고 예언했던 대로 빛으로 오셨다.


우리는 빛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깨닫기 시작할 때 새로운 세계를 보기 시작할 것이다.그 세계는 육의 세계가 아니라 영의 세계요, 땅의 세계가 아니라 하늘의 세계요, 유한의 세계가 아니라 무한의 세계요, 거짓의 세계가 아닌 진리의 세계이다.

 

 따라서 이렇게 영적으로 눈이 뜨일 때 그 때부터는 새 하늘 새 땅을 보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새로운 세계를 보기 시작하는 사람은 그 세계를 보지 못하는 사람과는 다르다. 즉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다. 즉 어둠에서 빛을 보기 시작하고 그 빛을 통하여 보지 못했던 주변을 보기 시작한다. 그 때부터 어디로 가야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어떤 음식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인지 아닌지, 무엇이 나에게 이롭고 해로운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지혜롭게 말하고 행동한다. 지금 무엇을 말해야하는지 무슨 행동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무엇이 중요한 일인지 아닌지, 무엇이 우선이고 나중인 지를 구분할 수 있다. 어리석음은 이런 것을 구분할 수 없다. 어둠이니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에게 이로운 것인지 아닌지를 구분 못하고 "불륜, 도둑질,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중상, 교만"등과 같은 해로운 일들을 마치 자기에게 이롭고 행복하게 해 주는 것으로 착각하고 행한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바로 자기들 앞에 생명의 빵이시고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보고서도 알아 보지 못하였지만 부인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아 보았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유령이다"라고 불렀다. 유일하게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 이는 이 부인 뿐이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주님!" "하느님"으로 알아 본 이들과 알아 보지 못한 이들과는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른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기는커녕 트집이나 잡으려 하고 , 마음으로 공경하기는커녕 입술로만 공경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친다고 하면서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고 자기들의 전통을 하느님의 계명인양 가르치는 어리석음 행동들을 하지만 이 부인은 그렇지 않다. 이 부인은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림 없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분 앞에 엎드렸고, 더러운 영이 들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달라고 청하였고, 강아지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더욱 간절하게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간청하였다.

 

이 부인이 사람들과 다르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 하나이다. 즉 다른 이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아 보지 못하였고 이 부인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아 본 것이 그 차이점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이 물을 필요로 하는 나무 뿌리가 물을 찾아 뿌리를 뻗치듯이 주님을 찾는 간절함이 있는 사람만이 주님을 만날 수 있고 알아 볼 수 있고 주님을 알아본 사람만이 그분 앞에 엎드려 간청할 수 있고 어떤 난관과 시련이 있어도 굴하지 않고 매달리 수 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 생활이 생명력을 잃었다면 그것은 어쩌면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아 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고 그것은 복음을 알아 듣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 부인이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치유해달라고 청하는 모습에서 교회의 모습을 그리고 지도자의 역할을 본다. 교회의 지도자나 자녀를 둔 부모들은 적어도 이 여인처럼 주님을 올바로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즉 신앙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입술로만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주님을 공경하고 알아 볼 수 있도록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 더러운 영이 들린 자기 딸을 치유 받게 하기 위해서 누구에게 가야 하는지, 어떻게 청해야 하는지, 주위 사람들한테 이런 저런 모욕적인 말을 듣는다 하더라도 어떻게 응답하고, 자기 딸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 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찾는 이들 그리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아보는 사람은 주님이 숨어 있어도 찾아 낼 수 있고 그 앞에 엎드릴 수 있고 자기의 어려움을 하소연 할 수 있지만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즉 어리석은 사람은 보고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듣고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유령이다"라고 소리를 지른다거나 예수님을 보면서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트집이나 잡으려 한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아볼 수 있는 눈이 뜨이지 않는 한 우리는 마음으로 주님을 공경하지 못하고 입술로만 주님을 공경하게 되고 사람의 계명을 하느님의 계명인 양 가르치는 어리석은 짓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유광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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