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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복음묵상] 나는 그저 그들 옆에 있고 싶었다 l 양승국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08 조회수862 추천수13 반대(0) 신고

 2007년 2월 8일 연중 제5주간 목요일


 

 그 여자는 시로페니키아 출생의 이방인이었는데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녀들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이 먹는 빵을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하고 말씀하셨다. “선생님, 그렇긴 합니다만 상 밑에 있는 강아지도 아이들이 먹다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얻어먹지 않습니까?” “옳은 말이다. 어서 돌아가 보아라. 마귀는 이미 네 딸에게서 떠나갔다.”(마르7,26-29)


The woman was a Greek, a Syrophoenician by birth,
and she begged him to drive the demon out of her daughter.
He said to her, “Let the children be fed first.
For it is not right to take the food of the children
and throw it to the dogs.”
She replied and said to him,
“Lord, even the dogs under the table eat the children’s scraps.”
Then he said to her, “For saying this, you may go.
The demon has gone out of your daughter.”


 

 구원이 약속되지 않았던 이교도들에게도 하느님의 자비는 예외가 없으시다. 구원의 약속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원을 받고자 하는 열망과 믿음이다

 

☆☆☆

 

 

나는 그저 그들 옆에 있고 싶었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현재 일본에서 ‘밤의 선생님’으로 유명한 미즈타니 오사무 선생님의 체험을 다룬 책 ‘애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를 감명 깊게 읽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던지시는 한 말씀 한 말씀이 제게는 너무나 감명 깊고 소중해서, 마치 살아있는 돈보스코를 뵙는 듯합니다.


   “교사 생활 21년 동안 꼭 한 가지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한 것이 있다. 그건 바로 한 번도 학생을 야단치거나, 때린 일이 없다는 점이다. 나는 학생들을 절대 야단치지 않는다. 아이들은 모두 ‘꽃을 피우는 씨앗’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처 꽃피우지 못한 씨앗들을 만나기 위해 나는 오랫동안 밤거리에서 살았다. 그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들 옆에 있고 싶었다.”


   고된 하루 일과를 끝내고 피곤한 몸을 겨우 가누며 또 다시 밤거리로 나서는 이유에 대해서 선생님은 이렇게 설명하고 계십니다.


   “내가 보기에 밤거리를 헤매는 아이들도 역시 사랑스런 아이들이다. 따스한 태양빛이 비추는 밝은 세계에 사는 어른들이 매정하게도 그 아이들을 더더욱 어두운 밤의 세계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상처를 입고 슬퍼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 밤거리로 들어서고 그들과 만나고 싶다.”


   수십 번도 더 ‘배신을 때린’ 아이, 그래서 엄청 속을 썩인 아이가 더 이상 어찌해볼 도리가 없이 망가진 다음 최후의 수단으로 선생님을 찾아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 얄밉기 짝이 없습니다.


   “선생님, 이번에도 절 도와주실 거죠? 절 버리지 않으실 거죠?”


   선생님의 답변은 언제나 한결 같습니다.


   “그럼, 우리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보자.”


   다음의 글을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눈앞이 흐려졌습니다.


   조직폭력배들의 사무소에서 학교로 연락이 왔다. 지난번에 두 번 다시 자신들의 세력권 안에서 기웃거리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겨우 구해낸 한 소년이 다시 자신들의 세력권에 들어왔기 때문에 붙잡고 있다고.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하지만 소년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지고 소년이 잡혀있는 조직 사무소를 방문했다. 소년은 소파에 앉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떨고 있었다. 그의 양 옆을 여러 명의 조직원이 에워싸고 있었다. 그 건너편에서 험악한 얼굴로 앉아있던 우두머리가 몹시 불쾌한 듯 말했다.


   “미즈타니씨, 우리도 체면이란 것이 있는데, 약속을 어겼으면, 뭔가 대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소?”


   그들은 나의 손가락 하나를 요구했다.


   그 후 소년은 고등학교로 돌아갔고, 일본의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도쿄의 중국음식점에서 언젠가 자기 가게를 갖게 되기를 꿈꾸며 성실하게 일을 배우고 있다.


   손가락 하나를 잃은 아픔은 매우 컸다. 그러나 소년의 미래를 위해서 손가락 하나쯤은 희생할 수 있었다.


   오늘 복음에서는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의 치유를 청하는 한 가련한 이방 여인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딸이 너무나 불쌍했던 나머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간절히 예수님께 딸의 치유를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습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 다가가는 딸이 머릿속에 떠올랐던 여인은 끝까지 물러서지 않습니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예수님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딸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수모라도 감수하겠다는 마음으로 집요하게 졸라대는 여인의 자세가 돋보입니다.


   딸을 위해서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 여인을 바라보며 미즈타니 선생님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거리에서, 조직폭력배들의 세계에서 비틀비틀 휘청거리며 방황하는 한 아이의 마음을 잡아보고자 자신의 손가락까지 내어놓으신 선생님.


   예수님의 침묵과 거부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겸손과 믿음, 신뢰와 끈기로 온 몸과 마음을 바쳐 청한 결과 여인은 기쁨으로 돌아설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부모님들, 자식 때문에 고생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문제아들과 씨름하고 계시는 선생님들 정말 수고들이 많으십니다. 때로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순간도 맞이할 것입니다. 지옥 같은 나날이 계속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때, 간절히 주님께 매달릴 때, 언젠가 반드시 환한 희망의 등불을 만나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http://my.catholic.or.kr/vegabond

 

 

               ▒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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