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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론]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 ㅣ이찬홍 야고보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08 조회수982 추천수14 반대(0) 신고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

                         

   전에 본당 수녀님하고 아주 사소한 문제로 다툰 적이 있습니다.  서로 자존심을 꺾지 않는 모습을 보며 ‘과연 자존심이란 무엇인가?’ 생각하다가 수녀님께 ‘자존심이 뭘까요?’ 물었습니다. 수녀님께서는 웃으시며 ‘자존심요? 사는 힘이죠!!’ 라고 말한 것이 생각나 잠시 웃어보았습니다.


   오늘 복음은 어머니의 사랑을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단순히 자녀를 낳아 기르는 사랑뿐만 아니라, 자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자존심까지 다 내어주는 그러한 사랑입니다.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이 이방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의 딸에게서 마귀를 쫒아내 달라고 청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청을 거절합니다. 단순히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여인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까지 무너지게 하는 그런 심한 말씀을 해버리십니다.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데, 여인은 이런 말씀을 듣고도 화는 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더러운 영에 들린 딸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개라고 표현하는 것은 겸손함을 넘어 위대한 사랑입니다. 삶의 의미와 모든 것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녀에게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진정 용기 있는 행동입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딸을 위해 스스로의 자존심을 버리는…  겸손함을 넘어 위대한 사랑을 보여주는 한 ‘탈북여성의 수기’를 보았는데, 진한 감동과 함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초췌한 꼴의 여인이 서 있었는데 그의 목엔 다음과 같은 종이장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

   그 여인 옆에는 정말 6살쯤 돼 보이는 처녀애가 죄진 것처럼 머리 숙이고 앉아 있었다. 순간 나는 등골이 오싹했다. 자식을 버리거나 남에게 주는 실례들은 많이 듣고 보아 왔어도 이런 거짓말 같은 상황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자식을, 그것도 빵 한 봉지 값에 팔다니, 모여선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으로 너나없이 저주를 퍼부어댔다.


   “저 년 완전히 미쳤구먼.”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자식을 어떻게 팔어?”

   “생긴 건 바람둥이처럼 매끈한데 속은 흉물스럽기 짝이 없군.”

   “요즘 별의별 놈들을 다 보겠구먼.”

   어떤 사람이 애 엄마가 맞긴 맞아? 하자 한 노인이 처녀애에게 묻기까지 했다.


   “애야, 저 여자 정말 네 엄마냐?”


   그 목소리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 아이의 얼굴을 주시했다. 아이가 선뜻 대답을 않자 엄마가 아니라는 대답을 듣고 싶었던지 여러 사람들이 꼬집듯 다시 물었다.


   “야, 네 엄마 맞아?”

   “네 엄마 아니면 아니라고 말해”

   “우리가 있으니깐 일없어, 어서 말해”


   쭈그리고 앉아있던 아이가 마침내 비실비실 일어섰다. 삽시에 주위는 조용해졌다. 내 옆에서 자꾸 온 몸을 굵던 사람도 그 때만은 손을 까딱 안했다.  처녀애는 어른들의 시선보다 갑작스런 정숙이 더 옹색했던지 엄마 옆에 꼭 붙어서며 중얼거렸다.


   “맞아요. 울 엄마예요”


   울 엄마, 그렇게 말하는 딸애를 돈 백 원에 파는 에미라니… 사람들의 분노는 한 충 더해졌다.


   “저런, 저런, 애가 불쌍하구나.”

   “야 쌍년아 아이를 팔겠으면 제대로 팔아라. 백 원이 뭐냐”

   “개도 삼천 원인데 딸이 개 값도 안 되냐!”

   “제 입도 풀칠하기 힘든 세상에 누가 돈 주고 아이를 갖다 기를 사람이       있겠다고 저 지랄이야”

   “그러게나 말이지. 차라리 아이를 키워달라고 사정하면 동정이라도 받       겠다.”

   “ 백 원으로 부자 되겠냐 미친년아!”


   그 소리들은 고함에 가까웠지만 여인은 두 눈을 내리 깔고 미동도 없었다.  그게 더 미웠는지 사람들의 욕은 더 거세져 돌덩이처럼 날아들었다. 누군가 “야 할 말 있으면 어디 변명이라도 해봐. 저거 벙어리 아니야”라고 하자 이번엔 욕질보다도 벙어리라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내 보기에도 그 여인은 정말 듣지도 말도 못하는 벙어리 같았다.


   그때부터 다른 사람들도 저 여자, 저 여자라는 말 대신 저 벙어리라고 손가락질 하면서 서로 수군들 거렸다. 벙어리에게 아무리 욕을 해봤자 소용없겠다 싶었는지 누군가 이번엔 큰 소리로 아이에게 아버지가 없냐고 물었다. 또다시 시장 안은 조용해졌다.


   아버지라도 있었으면 하는 하나같은 기대감에 어찌 보면 모두들 긴장한 듯싶었다.  아이는 좀 전보다 더 가냘픈 목소리로 말했다.


   “아부진 없어요. 먹지 못해서…”


   여기까지 맥없이 중얼거리던 아이가 갑자기 머리 들며 또릿또릿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우리 엄마 욕하지 마세요. 울 엄마 지금 암에 걸려서 죽으려고 해요.”


   비명처럼 들리는 아이의 그 소리는 사람들의 심장을 찌르는 창 같았다.

그 창 앞에선 어느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죽음보다 이제 곧 죽어야 할 삶을 볼 때가 더 침통한 법이다.

   그 여인을 보니 이 세상 마지막 시간을 보는 것 같았다.  목소리라도 가지고 있다면 모든 사연을 쏟아 놓으며 통곡이라도 해보겠는데 그렇지도 못하는 것이 오죽하랴싶어 사람들은 더더욱 처량하게 벙어리 여인을 지켜보았다.


   왜, 이때껏 그를 한 번도 동정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중략…


  “이보시오. 내가 아이를 데리고 가겠소. 나에게 돈 백 원이 있소”


  “이 백 원으로 당신 딸을 산다기보다 당신 모성애를 사는 것이니 그렇게 아십시오.”


   그리고 그 말을 시각적으로 확인시키기 위해 딸애의 여린 손목을 확신 있게 잡았다.  내가 당장 데려 가려는 줄 알았는지 여인이 반사적으로 내 팔을 성큼 잡고 안절부절 못하다가 갑자기 사람들을 밀어내며 어디론가 급히 갈려고 하였다.


   처음 그의 행동을 이해 못하던 사람들이 이내 그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나도 벙어리 여인의 돌발적인 행동이 몹시 의문스러웠다. 내가 마음을 다시 고쳐 먹을까봐 아이를 버리고 서둘러 달아나는 것인가. 정말 그렇다면 그 여인은 너무 어리석다. 혹시 어리석어서 제 아이를 정말로 백 원에 팔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같은 혈육의 생각을 읽어보기 위해서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이도 당황한 듯싶었다. 그러자 내가 너무도 큰 결심을 쉽게 한 게 아닌가 싶어 조금 긴장이 되었다.


   이때 사람들이 갑자기 술렁거리며 혀 차는 소리까지 들렸다.  머리를 들던 나도 아연해졌다. 펑 펑 울면서 다시 나타난 여인, 숨차게 달려오기 바쁘게 아이 앞에 무너져 앉으며 뻗치는 저 손의 것이 과연 무엇인가… 나는 흐려지는 눈을 껌뻑이며 다시 보고 또 보았다.


   그것은 바로 아이를 판 백 원으로 사 온 밀가루 빵 한 봉지였다. 나와 모든 사람들을 더 울리게 한 것은 벙어리라고 생각했던 그 여인이 빵을 아이의 입으로 가져가며 왕왕 통곡할 때였다.


   “아이고, 내 팔자야… 백 원도 없어 딸을 팔아 빵을 사는 내 신세야! 아이고, 아이고”


   탈북자수기 에서 퍼온 글입니다.(이글이 사실이 아니길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수기를 읽는 내내… 어머니는 자신이 죽고 나면 홀로 남게 되는 딸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구나.…  많은 사람에게 딸을 판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수많은 멸시를 받음에도 아랑곳 않고, 오히려 스스로 개가 되는 선택을… 행동을 했구나…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의 이방여인과 북한 여성은 딸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자존심을 버리고, 개가 되었습니다만, 어쩌면 이 모습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그렇게 개가 되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 자신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 바라는 것은 딸의 건강과 홀로 남겨진 딸의 미래이기에… 그것이 두 여인에게 있어 구원이요, 가장 기쁜 소식이기에 이를 이루기 위해 그렇게 개가 되었던 것입니다.


   두 여인의 모습을 묵상하며 ‘나는 날라리이지만, 주님의 사랑받는 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 보다는 주님이 원하고 바라는 것과 신자 분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개가 될 수 있는가? 개가 될 마음은 있는가? 생각해 봅니다.


   주님께 ‘이런 사제가 되게 해주십시오.’ 하고 청하려다가, 이를 청하는 것 자체가 교만이요, 스스로를 속이는 일인 것 같아 그만두고, ‘잃어버린 첫 마음만을…  순수했던 첫 다짐만을 다시금 간직하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드려봅니다. 아멘.

http://my.catholic.or.kr/vegabond

 

 

             ▒ 제주교구 표선성당  이찬홍 야고보 주임신부.▒

 

     

 

  

I Will Run To You(주 말씀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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