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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복음묵상] 우리가 외곽만 맴도는 이유 l 양승국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09 조회수728 추천수12 반대(0) 신고

   2007년 2월 9일 연중 제5주간 금요일


 

 사람들이 귀먹은 반벙어리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주시기를 청하였다.

예수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쉰 다음

“에파타”하고 말씀하셨다. “열려라.”라는 뜻이었다.

그러자 그는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마르 7,32-35)

 

  People brought to him a deaf man

who had a speech impediment
and begged him to lay his hand on him.
He took him off by himself away from the crowd.
He put his finger into the man’s ears
and, spitting, touched his tongue;
then he looked up to heaven and groaned,

and said to him,
“Ephphatha!” (that is, “Be opened!”)
And immediately the man’s ears were opened,
his speech impediment was removed,
and he spoke plainly.

 

 

 주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깨끗이 고쳐 주신다. 이 권능은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것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예수님께서는 바로 하느님의 권능을 행사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

 

 

우리가 외곽만 맴도는 이유


“열려라!” 


   수도자나 사제로 살다보면 기본적, 의무적으로 바쳐야만 되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이런 저런 이유로 기도를 빼먹기 일쑤지요. 안 그래야 되는 줄 잘 알면서도 제 경험상 빠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지독한 유행성 감기몸살에 걸릴 때, 계속해서 손님이 찾아올 때, 일이 한꺼번에 몰려올 때, 장거리 여행을 할 때, 때로 수도생활에 회의감을 느낄 때, 우울증이 빠질 때, 뭔가에 몰두할 때 당연히 바쳐야 할 기본적인 기도마저 소홀히 하게 됩니다.


   그런데 수도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단 한 번도 기도를 빼먹지 않은 수도자가 있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렇게 정확하게, 또 열심히 기도를 바침에도 불구하고 그 수도자의 얼굴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생동감이 없습니다. 하루하루가 재미없습니다.


   또한 그 수도자는 자신의 직무상 일상적으로 거룩하고 경건한 일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자신은 전혀 거룩하지도 않습니다. 경건하지도 않습니다. 그 수도자는 언제나 영적으로 살고 싶어 영적인 일, 하느님의 일을 하지만 자신은 전혀 영적인 삶을 살아내지 못합니다. 마치도 속이 텅 빈 강정 같은 자신의 삶이 허탈해 어쩔 줄 모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수없이 많은 기도를 정해진 시간에 ‘칼같이’ 정확히 잘 바치고 있지만 얼굴은 불안 초조합니다. 삶이 피곤할 뿐입니다.


   그 수도자를 생각하면서 드는 생각입니다. 최선을 다해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안테나가 하느님이란 주파수에 맞춰있지 못하다면, 우리의 귀가 하느님이란 대상을 향해 열려있지 않는다면 실제적으로는 하느님과 관계를 맺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신앙생활 역시 행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 고민해봅니다. 아무래도 그 수도자는 늘 완벽한 자신을 꿈꾸었기 때문에 늘 그렇게 자유롭지 못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는 늘 결핍된 자신의 모습을 견딜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때문에 그는 늘 뭔가 허전했을 것입니다. 그는 언제나 나약한 자신의 내면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때문에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결핍으로 인해 스스로를 강박관념에로 몰고 갔을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내면의 결핍으로 인해, 허한 영혼의 공간을 견디지 못해 영성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주 하느님께 청합니다. 빈 공간을 채워달라고, 두려움에서 해방시켜달라고,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우울증을 걷어가 달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늘 허전합니다.


   결국 해답은 인간 존재의 깊숙한 내면 안에 존재합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향해 우리의 귀가 뚫려야만 그제야 제대로 된 영성생활이 가능해지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외곽만 뱅뱅 맴도는 이유, 우리가 하느님의 심연 안으로 침잠하지 못하는 이유, 하느님을 위해 살지만 참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내 안의 참 나’이신 하느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만나시고, 막혔던 그의 귀를 열어주시고, 오그라들었던 그의 혀를 풀어주십니다.


   “열려라!”


   영성생활에서 정녕 중요한 일이 귀가 열리는 것입니다.


   외국어를 배울 때 그런 체험하지 않습니까? 지긋지긋하던 어학연수 기간을 지내다가 ‘이제야 조금 숨통이 트인다, 이제야 조금 살 맛 난다’고 느끼는 순간이 어느 때이겠습니까?


   어렴풋이나마 들리기 시작할 때일 것입니다. 말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면서 지옥 같던 순간이 지나가고 슬슬 외국어에 재미가 붙습니다. 들리기 시작하면서, 이해도 되고, 또 조금씩 말도 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대화다운 대화도 시작되고, 의사소통이 시작되면서 제대로 된 외국인친구도 사귀게 됩니다. 점차 그 나라 문화도 이해하고 되고, 여행도 재미있어 집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영성생활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께로 향한 우리의 귀가 열려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분의 뜻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인간의 의지인지 식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신앙생활, 영성생활이 시작됩니다. 하느님과의 제대로 된 대화도 가능합니다. 그제야 신앙생활의 참 맛도 알게 됩니다. 신앙도 성장하게 됩니다.


   어떻게 해서든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귀가 활짝 열리길 기대합니다. 그래서 보다 명료하게 하느님의 음성을 듣게 되길 바랍니다.

http://my.catholic.or.kr/vegabond

 

 

               ▒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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