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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론] 여보세요?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10 조회수814 추천수11 반대(0) 신고

                 


                           여보세요?

                              

   복음에 예수님께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미리 걱정하지 마라. 성령께서 너희가 해야 할 말을 바로 그 자리에서 일러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참된 말을 하는 이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이심을 알려주십니다.


   우리는 많은 말을 하며 살아갑니다.


   좋은 충고, 격려, 질책, 심지어는 노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쉴 새 없이 입을 움직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중요하고 필요한 말을 한다 하더라도 이 말이 나의 말인지..판단인지... 아니면,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는 말이요, 판단인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사제로서 저도 많은 말을 하면서도 정작 중요하고 필요할 때, 적절한 말을 하지 못해 답답하고 무능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남의 고민과 아픔을 들을 때, 상대방은 ‘인간 이찬홍이 아니라, 사제 이찬홍’에게 아픔과 고민을 털어 놓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적인 감정이 앞섭니다.


   또한 적절한 말을 해주지 못한 때, 나태해지고 그릇된 삶에 대한 반성이 밀려옵니다.


  목요일 오후에 한 아리따운 목소리를 지닌 자매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밝고 상큼한 느낌을 주는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자매의 말은 부정적인 말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불치병을 앓고 있습니다. 처지가 이렇다보니, 세상을 떠나고 싶어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라는 말이었습니다.


   말 모범적인 답안이라 할 수 있는 미사여구의 표현으로 자매에게 ‘그런 선택, 결정을 하면 안 됩니다.’며 이런 저런 말을 해 주었습니다.


  자매는 저의 말이 잘 안 들린다며 답답해하자, 저는 ‘오늘따라 이놈의 전화가 왜 이래...’라는 생각에 짜증과 미안함이 앞섰습니다.


   여보세요?...를 몇 번하다가, 자매의 전화가 끊겠습니다.


   처음 받아보는 전화라 많은 감정이 교차되었습니다.


   남의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마음으로 사제가 되었는데....


   전날 동기 신부와 늦게까지 술 마시고 빌빌대는 제 모습이 무척 싫게 느껴졌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으로 성령의 말씀으로 이야기를 해 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답답한 심정으로 저녁 미사를 마치고 밤에 동기 신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오늘, 낮에 한 자매로부터 자살하겠다는 말을 들었다. 옳게 이야기 해주지 못한 내 모습에 화가 나고 답답하게 느껴진다...’등 저의 감정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말을 듣던 동기 신부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더니, ‘전주를 휩쓴 공포의 전화가 드디어 제주에 상륙했고만..’하며 웃는 것입니다.


   저는 ‘그게 무슨 말이냐?’며 묻자,


  ‘형, 그 자매가 지금, 불치병으로 병원에 있다. 세상을 떠나고만 싶다. 어떻게 해야 하냐는 말을 하지’ ‘응’하고 대답하면서도 놀랐습니다.


   전화 받은 것은 분명 저인데, 광태 신부가 전화 받고 제게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목소리가 앳되고 고등학생 같지?’ ‘응’ ‘근데, 고등학생이 아니고 아가씨야! 전주 동기들이 그 전화 땜에 얼마나 고생했다고.. 끊지도 못하고 말이야. 꼭 보좌 신부만 골라서 전화하는 자매야!....’


   순간, 머리에 강한 망치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어이없는 경우가 나에게도 생기는 구나... 라는 생각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물론 저에게 전화한 자매가 전주를 휩쓴 공포의 그 자매라고 단정 짓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모래뿐 만아니라, 어제 세 번에 걸쳐 걸려온 자매의 전화를 받고 내린 결론은 장난 전화라는 것입니다.


   먼저 자살하고 싶다는 자매의 말과는 달리 목소리가 너무 생기 있고, 밝았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허무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쁨을 느끼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난처한 질문에 ‘저를 못 믿으시는 거죠? 제가 죽어도 신부님은 아무 상관이 없죠?’ 라고 화를 내며 전화를 먼저 끊었음에도 다시 전화를 걸어오는 자매의 행동을 보니, 거의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전화 사건으로 얻은 교훈이 있다면, 상대방의 아픔과 고민을 함께 해야 하지만,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격려해주어야 하지만, 결코 ‘왜 좀더, 잘 이야기해주지 못했을까?.... 왜 나의 판단이 먼저 앞섰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렵니다.


   복음에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듯이, 말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적절히, 필요할 때마다 저의 입을 열어주시고, 또한 닫혀주실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분명 적어도 한 번 더 전화가 걸려올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때, 단호하게 ‘정말 당신 아프냐고... 어느 병원이냐고... 이름과 세례명은 뭡니까?’ 물으려 합니다.


   비록 다시 한번 자매로부터 ‘신부님은 저 하나 죽은 것은 아무렇지도 않죠?’ 라는 비난의 말을 하며 전화를 끊는다 하더라도.... 정말 아팠다 하더라도, 그렇게 사람 목숨 같고 장난치지 말라고 이야기하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께서 이끌어주시는 말이요, 판단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혹 저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면..., 그리하여 그 자매에게 큰 상처와 아픔을 주게 된다면... 저 역시 하느님께 똑같은 판단과 책망을 듣게 될 것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http://my.catholic.or.kr/vegabond

 

 

             ▒ 제주교구 표선성당  이찬홍 야고보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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