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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적과 신비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12 조회수515 추천수5 반대(0) 신고

 

<기적과 신비>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마르 8,11-13)



  바리사이들은 자기들이 성경에 관해서는 한 눈에 꿰차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명기 18장 22절과 기타 예언서를 들어가며 예수께 표징을 요구했습니다. 그 증거는 하늘로부터 오는 어마어마한 것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주적 재난이나 종말과 같은 어마어마한 사건이 아니면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하실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자만했습니다. 이 같은 표징이 아니고 다른 것을 보여준다면 거짓 예언자로 몰아갈 속셈이었습니다. 만약 그들 요구대로 표징을 보여준다면 그들을 인정하는 셈이 됩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이 모두 옳고, 그들의 생활방식과 가치관이 옳으니 그들처럼 살면 된다고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 등 적대자들과 사사건건 맞서 대립하셨는데 이제 와서 그들의 생활을 옳다고 손들어 주실 리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여러 가지 말씀과 표징들로 하느님나라의 도래를 알려 주셨습니다. 씨앗은 이미 뿌려졌습니다. 이제 그 씨앗이 자라고 말라죽는 것은 밭에 달렸습니다. 좋은 밭이라면 서른 배 백 배의 소출을 낼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당신이 이 세상에 들어오신 것이 바로 표징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보여 주실 사건들 모두가 표징이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이룩하신 일과 수난과 십자가 처형 그리고 부활사건이 모두 표징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제가 요사이 자동차 운전하다가 가끔씩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주로 차선 변경할 때 뒤차가 느닷없이 나타나 경적을 울릴 때입니다. 백미러에는 분명 옆에 다가오는 차가 없었는데, 막상 차선 변경을 하다보면 상대도 놀래고 저도 놀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요즘 자주 범하는 실수입니다. 다행히 뒤차가 양보해 주어서 사고가 나지 않았지 그럴 때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제가 눈으로 못 봐서 차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지 실제 다가오는 차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시야의 사각지대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무사고 경력만 믿고서 습관적으로 아무 주의도 기울이지 않고, 사고 날 가능성마저 잊은 채 운전하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시는 동안 여러 가지 가르침과 표징을 직접 삶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성경이라는 기록물과 성사라는 표지를 남겨 주셨습니다. 그 외에 우리에게 선조들의 증언이 남아 있습니다.


  어느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기적과 신비는 많이 다르답니다. 기적은 가끔 실제로 일어나며 확인이 가능한 것이나 신비는 확인 불가능한 것이랍니다. 가끔 암 환자가 기적으로 치유되는 경우가 있고, 엄청난 사고에서 살아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적은 믿는 사람이나 아닌 사람이나 관계없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도 기적을 볼 수 있답니다. 그러나 신비는 언제나 순수하게 믿음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사는 신비이라고 하십니다.


  신비는 언제까지나 믿음이 요구되며 우리가 혹시 기적을 체험하더라도 그것은 기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기적을 바라는 것과 신비를 믿는 것은 번지수가 다르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야말로 기적은 기적일 뿐이랍니다. 아무리 기적이라도 믿음을 통해서만 신비로 나갈 수 있습니다.


  어느 성인 생전에 근처 성당에서 미사 전례 중에 성체가 실제로 예수님의 모습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나자 사람들이 와서 보라는 말을 전하자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합니다. 밀떡이 성변화를 일으켜 예수님의 몸이 되는 것이 당연한데 무슨 기적이라고 새삼스럽게 가서 보느냐고 호통을 쳤답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믿음이라면 처음부터 기적을 바랄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보다 특별하고 개인적인 체험을 원하는 것은 저의 못난 성격과 부족한 신앙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주님 용서하소서.

 

 

 



 


 이해인 수녀님 시, "친구야 너는 아니" 에 붙인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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