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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죄악의 사슬을, 윤회의 사슬을 끊는 길" ----- 2007.2.12 연중 제6주간 월요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12 조회수564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7.2.12 연중 제6주간 월요일             

창세4,1-15.25 마르8.11-13

 

 

 

 

 

 

 

 

"죄악의 사슬을, 윤회의 사슬을 끊는 길"

 

 

 

수녀님들이나 저는 하느님의 기적이며 축복입니다.


우리나라의 고난과 시련으로 점철된 역사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합니다.

끊임없는 내우외환으로 얼마나 무고한 아벨들이 죽었으며,

한 맺힌 삶들은 얼마나 많았는지요?

 

또 낙태로 인해 죽은 생명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이래서 연미사, 생미사들을 많이 봉헌하는 가 봅니다.

어느 분들은 조상들의 죄를 용서 받고

후손들이 구원 받고자 하는 애절한 마음에

생각나는 조상들의 이름을 모두 적어 가계 치유 미사를 청하기도 합니다.


어느 자매의 고백도 잊지 못합니다.


“시집을 와보니 남편의 생활이 문란했고,

  거슬러 올라가니 시아버지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저 역시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 죄의 사슬을 내 대에서 끊고

  자식 대까지 가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에

  세례를 받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덕분에 자식들은 반듯하게 자라나

  영세 받고 신앙생활에 충실하며 제 몫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와 흡사한 장한 믿음의 어머니들의 고백을 들을 때마다,

죄의 악순환의 사슬을 끊는 길은

회개와 기도를 통한 하느님의 은총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한 사람의 수도자로 인해

전 가족이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다면

죄의 사슬은 완전히 끊어진 것입니다.


죄악의 악순환, 보복과 폭력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는 얼마나 힘든지요!


이래서 죄의 유전에 대해,

불가에서의 업보에 따른 윤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아담의 원죄도 이런 죄의 유전성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의 죄는

큰 자식 카인에게 유전되어 살인의 대죄를 짓지 않습니까?

 

졸지에 카인과 아벨, 두 자식을 잃어버린 아담, 하와 부부입니다.


“이제 너는 저주를 받아...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다....

  너는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될 것이다.”


부전자전이라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에 이어,

아벨 동생을 죽인 카인도 땅에서 쫓겨나

정처 없는 유랑 길에 오릅니다.

 

우리의 방랑벽, 아마 여기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릅니다.

고맙게도 자비로우신 하느님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복원된 에덴동산, 교회공동체에 우리를 모아 주셨습니다.


죄인들에 대한 놀랍고도 고마운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의 희망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 입혀주신 하느님은

카인에게 표를 찍어 주셔서 아무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 내심의 아픔과 고통, 실망은 얼마나 컸겠는 지요!

무한한 인내와 연민의 하느님임을 깨닫습니다.


죄보다 강한 하느님 자비의 은총입니다.


우리 자신의 죄를 보면 절망이지만

하느님의 자비를 보면 희망이 샘솟습니다.

 

사실 우리가 죄 없어, 잘 살아서 구원 받는 게 아니라,

하느님 자비의 은총으로 구원 받습니다.


죄의 악순환의 고리 사슬을,

윤회의 고리 사슬을,

보복과 폭력의 악순환의 고리 사슬을 끊는 길은,

벗어나는 길은,

하느님의 은총뿐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에 의한 회심과 깨달음뿐입니다.

 

이래서 매일 수없이 간절한 마음으로 바치는 주님의 기도를 바칩니다.


믿음의 눈, 깨달음의 눈에는 모두가 기적이요,

표징들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지금 여기에 살아있음이 기적이요 구원이요 축복이요 행복입니다.

 

죄의 사슬에 매여 눈먼 이들은

절대로 이런 축복의 현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믿음의 눈 없으면 아무리 표징 보여줘도 보지 못합니다.

 

끊임없는 논쟁의 악순환만이 있을 뿐입니다.

 

바로 예수님과 논쟁하는 바리사이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더 이상 바리사이들을 상대하지 않고 버려둔 채

미련 없이 떠나시는 주님이십니다.

 

사실 예수님의 세대뿐 아니라,

합리적 사고에 눈먼 오늘 날의 불신의 세대에도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바리사이들에게 화급한 것은

하늘에서 오는 표징이 아니라, 회심과 믿음입니다.


오늘도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의 회심을, 깨달음을 심화하면서,

우리를 참으로 자유롭게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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