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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리석음이 창조의 질서를 어지럽힌다.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13 조회수561 추천수3 반대(0) 신고

 

<어리석음이 창조의 질서를 어지럽힌다.>


제자들이 빵을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려, 그들이 가진 빵이 배 안에는 한 개밖에 없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너희는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그렇게도 완고하냐?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너희는 기억하지 못하느냐?”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마르 8,14-21)



  이 부분은 세 개의 주제가 교묘하게 뒤엉켜 있어서 세밀하게 살펴 보아야할 대목입니다. 누룩의 비유와  빵의 주제입니다. 그리고 몰이해입니다.


  신약성경에서 누룩은 자주 비유의 재료로 언급됩니다. 누룩의 비유는 좋은 의미로도 쓰이고 나쁜 의미로도 쓰였습니다. 그런데 그 용법이 모두 내부에서 비밀스럽게 변화시키고 부풀어 오른다는 데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전체에게 변화를 가져옵니다.


  바리사이와 헤로데는 모두 권력을 쥐고 있는 집권층입니다. 서로 앙숙이기도 하겠지만 권세 지향주의자라는 점은 똑 같습니다. 현실에서 제 힘을 행사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 권세 지향적인 사람들에게 한 가지 뚜렷한 성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남들의 의견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남들도 다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는 줄로 압니다. 그리고 싫은 소리 듣기를 피합니다. 반대를 없애려하고 만장일치를 원합니다. 그러나 독재자들의 특징이 제 체면이 깎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직접 나서기보다  부하를 시킨다거나 제도를 만들어 교묘하게 권력을 휘두릅니다. 바로 누룩의 성질과 비슷합니다. 우리나라 군사 독재시절을 되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해가 됩니다. 그들은 언제나 겉으로는 고고한 척 했습니다. 그러나 반대자들을 두려워했고, 다른 죄목을 뒤집어씌워 가두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비겁하게 숨는 사람보다는 그들 성격대로 그래도 용감한 사람을 존경합니다. 비겁한 사람들에게 더 잔인하게 구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피해 볼 것을 각오하고 과감하게 할 말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더 지혜로운 처신은 그들이 화가 났을 때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격과 뒤끝이 없는 성격을 이용하여 일단 안보이게 피했다가 화가 가라앉은 다음에 정직하게 나서는 것이 좋답니다.


  권력자 헤로데가 잘못을 저지른 것에 대해 과감하게 지적한 세례자 요한을 처음부터 죽이지 못한 것도 다 이런 이유입니다.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마르 6,20)

 그러다가 생일 잔치에서 헤로디아의 딸과 약속한 체면을 지키려고 했기 때문에 요한을 마지못해 참수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권력자들의 성품을 다 아셨습니다. 그들이 비밀스럽게 뿌려 놓은 누룩에는 모르는 체 놔둘 것이 아니라 용감하게 나서서 저항하는 것이 올바른 길입니다. 예수님도 언제나 그렇게 그들에게 맞서서 논쟁했고, 그러면서도 때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숨으셨습니다.(요한 10,29-30)

  그래서 제자들에게 바리사이와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혜롭게 처신하여 그들에게 휘둘리지 말라고 충고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엉뚱하게 빵 문제를 생각하였습니다. 그저 인간은 아는 만큼만 보이고, 뭐 눈에는 뭐만 보이는 법입니다.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마르코저자는 배안에 빵이 “하나” 있다고 씁니다. 그 "하나"는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지금 배안에는 육신에 필요한 빵도 하나뿐이요, 영에 필요한 생명의 빵도 하나뿐입니다. 그러나 영에 필요한 생명의 빵만 있으면 육신에 필요한 빵은 얼마든지 충분히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을 제자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두 번에 걸쳐 일어났던 빵의 기적을 직접 체험하고서도 제자들은 생명의 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미처 생각해 내지 못합니다.


  바리사이와 헤로데와 같이 은밀하고 악의에 찬 몰이해는 아니지만 제자들의 몰이해도 예수님을 안타깝게 만들었습니다.


  “어리석고 지각없는 백성아 제발 이 말을 들어라.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구나.”(예레 5,21)

  “너희의 죄악이 이런 (창조의) 질서를 어지럽혔고 너희의 범죄가 너희 선익을 가로막았다.”(예레 5,25)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현세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죄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참 지혜의 근원이십니다. 인간의 부족함을 꿰뚫어 보시는 분이십니다. 넘치는 것은 깎으시고 모자라는 것은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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