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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18) 대야물에 비친 예수님 얼굴 / 이현철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13 조회수702 추천수8 반대(0) 신고

 

출처 : 우리들의 묵상

게시번호 : 10084

게시일자 : 2005년 3월 24일

 

                                                                    글쓴이 : 이현철 신부님

 

 

대야에 비친 예수님 얼굴

 

  십자가를 안테나로!
  얼마 전에 지거 괴더신부님의 성화중 세족례에 관한 성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의 얼굴이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는 대야의 물에 비쳐보였습니다. 마더 데레사수녀님도 죽어가는 환자들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한다고 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봉사하는 대상자들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성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성목요일에 관한 저의 글을 다시 퍼드립니다. 가브리엘통신

                              <족발 세례식?>

  성주간이 시작이 되자 로마의 신학대학들과 영성학교들은 전례실습등으로 모두 방학이 시작되었습니다. 각자 자기나라에 있었으면 신학생들을 데리고 성주간 전례실습을 가르쳤을 학생신부들이 여기에서는 십자가잡이, 향지기, 촛대잡이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원장 신부님은 좀 불만스러워하는 저희들에게, 신학교 전례학 교수님처럼 하나하나 로마전례에 대해 설명을 해주시면서 이번에 저희들이 하는 전례봉사도 우리 각자의 삶에 있어 특별한 의미가 있을거라면서, 전례봉사 역할을 각자가 정하라고 하셔서 저는 촛대잡이를 자원했습니다. 왜냐하면 초는 자신을 태우고 녹이는 아픔이 있지만 빛을 발하지 않습니까? 저는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해 기꺼이 촛대잡이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수년전 어느 지방에서 후원미사를 마치고 회원들과 조촐한 식사를 같이 할 때였습니다. 아마 그때도 사순시기였나봅니다. 곧 영세를 받는다는 어느 자매님이 조심스럽게 제게, "신부님예, 와 성당에는 남자들만 족발 세례식합니꺼?" 그바람에 저희는 먹던 음식이 다튀어나오도록 웃고 말았습니다. 아마 그 자매님은 세족례라는 용어를 아직 제대로 익히지 못해 아주 재미있는 교회용어를 발명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그 족발 세례식이란 용어가 아주 의미 용어였답니다. 왜냐하면 제가 59년 돼지띠거든요.^^*

   80년대초, 대구대교구 청년연합회(젊은이 협의회) 총무를 맡아볼 때의 일입니다. 회의를 하다가 성목요일 미사가 있다고 해서 청년회 지도신부님께서 청년간부들은 다 만찬미사에 참석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대주교님께서 그날 세족례를 해주신다는데, 그 세족례에 참석하기로 한 계산성당 사목위원 2명이 퇴근 시간이라 차가 막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지도신부님께서 청년회장과 총무인 저에게 대신 그 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너무나 당황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마침 그날 학교에서 교련을 하는 바람에 운동화를 신고 왔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신은 바꾸어 신었지만 발을 씻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날 황송하게도 대주교님께서는 그 꼬랑내가 진동하는 저의 족발을 정성껏 씻어주셨습니다. 너무나 황송해서 저는 그때 고개를 들 수가 없었고, 또 너무나 영광스러워 며칠간 집에서 발을 씻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대주교님을 통하여 그냥 저의 발을 씻어주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보고 열심히 뛰라고 발을 씻어주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후 저는 가톨릭 아마추어무선사회 창립등으로 저의 교구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뛰어야 했고, 이제는 매스컴 선교사도직을 통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꼬랑내나는? 발을 씻어주기위해 전세계적으로 뛰어야, 아니 날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목요일 만찬미사에 하는 세족례의 의미에 대하여 주님께서는 아주 명확하게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저희들에게 가르쳐주십니다.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들의 발을 씻어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4)  <로마에서 가브리엘 통신>

추신: 성목요일 만찬미사에서 십자가잡이를 하겠다던 폴란드 신부님이 갑자기 배가 아파 만찬미사에 참석할 수 없게 되자, 원장님께서 제게 하시는 말씀,"가브리엘신부님이 십자가를 안테나로! 살고 있으니, 당연히 십자가잡이를 해야하지 않겠어용?"^^*

                          <빌라도의 대야에 비친 얼굴>

   주님 수난 성지주일을 맞이하여 영화피정을 할겸해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그리스도의 수난)을 보고 왔습니다. 이 영화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골고다언덕까지 가는 마지막 12시간동안의 수난과정을 극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예수님의 십자가형이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에 의한 것으로 비춰져 ’반유대주의’논쟁을 일으키며 제작초기부터 엄청난 수난(?)을 겪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티칸 교황청에서 영화를 직접 보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이 영화는 성서에 있는 사실을 그대로 표현한 작품이다"라고 평을 하셔서 논란의 대상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작품입니다.

   영화내용과 감상소감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들이 글을 올리셨기 때문에 생략하고 저는 다만 로마인 총독 빌라도가 ’예수의 죽음에 대하여 자신은 상관없다’라며 손을 씻는 대야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빌라도의 보고서’와 성서에 의하면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알고 석방하고 싶었지만 유대인들의 폭동에 대한 우려와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사람들의 협박(예수님을 살려주면 로마 황제에 대한 불충이라고...)에 굴복하여 결국 예수님의 사형을 집행하게 합니다.

    독일출신의 화가이자 사제인 지거 괴더는 특별한 성화를 많이 그리셨습니다. 그중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예수님의 얼굴이 대야에 비치게 한 성화와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청하신 예수님의 얼굴이 우물 속에 비치게 한 성화가 이 영화 특히 빌라도가 손을 씻는 장면에서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어떻게 보면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이 장면을 지거 괴더가 그의 영감으로 그린다면 빌라도의 대야에 예수님의 얼굴을 비치게 그리지 않을까요?

  아마 지거 괴더는 우리가 직접 예수님의 얼굴을 보는 것보다 물에 비친 모습을 통해 그분의 진실을 더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왜냐하면 진리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바로 눈 앞에 두고도 세속적인 또 정략적인 목적에 눈이 먼 빌라도는 예수님께 오히려 "진리는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죽어가는 환자들을 간호하고 환부를 씻어주는 대야에서 그분의 얼굴을 발견한 마더 데레사의 기도를 퍼드리면서, 우리도 형제들의 발을 씻어주는 대야에서 그분의 얼굴을 발견하도록 노력합시다.

   <당신을 알아뵙게 하소서>

주님,

언제나 병자들 안에서

당신 모습 뵙게 하시고

당신을 섬기는 마음으로

그들을 치료하게 하소서.

매혹적이지도 가당치도 않으며

성낸 얼굴 뒤에 숨어 계실지라도

당신을 알아뵙게 하시고

"오, 나의 환자이신 예수님,

당신께 드리는 봉사의 감미로움이여!"

라고 말할 수 있게 하소서.

         -마더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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