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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설] 세 개의 고향을 가진 행복한 신앙인(이기양 신부님)
작성자전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17 조회수832 추천수3 반대(0) 신고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신이 나서 노래 부르며 설레는 마음으로 가래떡이 쏟아지는 방앗간을 서성대던 어린 시절 설날이 떠오릅니다. 새벽부터 친척들이 모여들면 떡국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설빔을 차려입고는 어른들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를 드리고 기쁜 마음으로 받았던 세뱃돈도 그립습니다. 천주교 집안인지라 차례는 지내지 않고 성묘만 했던 그 좋은 날이 새삼 그리운 오늘, 축복의 설에 두 가지를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축복받는 법에 대해서입니다. 오늘 독서인 민수기에서는 사제들을 통해 백성들에게 복을 내려주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데, 사실 복이란 그 복을 받을 그릇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주고 싶어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가뭄에 비가 아무리 쏟아져도 그릇을 준비해야 단비를 모아 받을 수 있듯이, 복 받을 준비가 돼야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복 받을 준비란 아주 단순합니다. 새해 첫날 하듯이 남에 관해 좋은 것을 말해주고 빌어주며 부족한 부분은 감싸주는 것입니다. 1년을 이런 마음으로 산다면 설날인 오늘 서로서로 축복해 주고 하느님께 청했던 복이 1년 내내 지속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저는 여러분에게 세 개의 고향(故鄕)을 가지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떻게 고향이 세 개나 되나?”하고 놀라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세 개의 고향이란 이렇습니다.


  첫째는 육신의 고향, 즉 내가 태어난 곳이고, 둘째는 신앙의 고향, 즉 하느님을 알게 된 곳이며, 셋째는 영원한 고향, 즉 우리 조상이 계시고 내가 죽은 후에 가야할 궁극적인 곳입니다. 첫 번째 육신의 고향은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아는 고향입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지요. 오랜만에 찾아가도 어린 시절 추억이 배어 있고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났어도 낯설지 않으며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곳입니다.


  두 번째 고향인 신앙의 고향도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저에게는 육신의 고향보다 더 중요한 신앙의 고향이 있습니다. 바로 사제로 수품 된 성당입니다. 신부 생활이 그저 기쁘고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은 서 있는 길이 안 보일 정도로 화가 나거나 낙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가끔 제가 사제품을 받은 성당에 가서 기도합니다. 나를 그렇게 만든 그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나를 사제로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 드리며 기도합니다. 그러면 순식간에 다시 힘이 살아나지요. 사제로서 첫 마음이 다시 회복됨을 느낍니다. 신앙의 고향이 주는 이 신비한 힘을 알기에 저는 여러분들에게 신앙의 고향을 가지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신앙의 고향을 어떻게 가질 수 있겠습니까? 쉽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은 곳이 신앙의 고향이 될 수가 있습니다. 정말 어렵고 힘들 때 내가 찾아갔던 그 성당, 거기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위로를 받았다면 바로 그 성당이 신앙의 고향이 될 것입니다. 또 내가 결혼했던 성당이 신앙의 고향이 될 수도 있지요. 배우자와 일생을 함께 할 것을 하느님과 많은 친지들 앞에서 서약하고 맹세했던 그 성당, 그리고 부부 사랑의 결실인 아이를 낳아서 유아 세례를 시켰던 그 성당은 신앙의 고향이 돼 큰 힘을 줄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고향을 가진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제일 중요한 고향이 있습니다. 옛날부터 많은 신자들은 하느님 나라를 본 고향, 근본적 고향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느님께로 돌아갑니다. 영원한 하느님이 계신 그 곳, 우리 선조들이 이 세상을 떠나서 돌아간 그 곳, 본 고향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신앙인이 돌아가야 할 곳은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 고향을 믿고 희망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육신의 고향, 신앙의 고향, 본 고향, 이렇게 세 개의 고향을 가지라고 말씀드립니다. 찾아갈 육신의 고향만 있어도 행복할 텐데 나에게 힘을 주는 고향이 세 개씩이나 되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이 중에서도 우리 선조들이 가 계신 영원한 고향, 본 고향이 제일 중요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예외 없이 다 죽습니다. 영원한 고향이 있는 사람은 죽음에서조차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믿기에 이 세상의 삶이 더 행복하고 죽은 뒤 더 큰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세 개의 고향을 다 가진 행복한 여러분 되시기를 바라며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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