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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는 분.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19 조회수559 추천수6 반대(0) 신고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는 분>


제자들이 군중에게 둘러싸여 율법 학자들과 논쟁하고 있었다.

“아, 믿음이 없는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에게,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어릴 적부터입니다. 저 영이 자주 아이를 죽이려고 불 속으로도, 물속으로도 내던졌습니다. 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아이는 죽은 것처럼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아이가 일어났다.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마르 9,14-29)


  

  이 대목은 세 공관복음서에 모두 나옵니다. 그러나 마르코복음서는 특별히 내용이 길고 복잡합니다. 아마도 마르코 저자가 염두에 두고 강조하고 싶은 점이 있었나 봅니다. 단순히 구마치유에다 의미 부여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거룩한 변모를 세 제자들에게 보여주시고 땅으로 내려오시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그새를 참지 못하고 뒤 엉켜버린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잠시 자리를 비우니 생겨난 문제입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믿음이 부족한 세태를 탄식하십니다. 이는 마르코 공동체가 경험했던 문제를 빗대어 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눈에 보이시지 않자 발생한 문제입니다. 현세의 우리에게도 示唆하는 것이 많습니다. 목자를 잃은 양떼처럼 우왕좌왕하는 모습입니다.

  이 대목에서 마르코 저자는 다른 복음서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아주 특별한 시각을 보여줍니다. 바로 아이의 아버지와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아이가 악령 든 것을 단순히 아이 문제만으로 보시지 않고 그 아버지와 관계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셨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서 왔는지 대번에 알아채셨습니다. 그래서 그 아버지를 믿음의 길로 이끄십니다.


  사실 대부분의 갈등은 밀접한 사이에서 주로 일어납니다. 서로 가까운 사이에서 더 많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부부 사이에, 부자부녀, 모자모녀, 그리고 시댁, 처가부모, 친지 친구, 교우 등등 서로 잘 안다고 하는 관계일수록 상처를 입히고 받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가까울수록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까운 사이이니까 말하지 않아도 어련히 이해하려니 여깁니다. 용서하겠지 하고 상처를 더 깊게 주고받습니다.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간섭을 더하게 되고 자유를 억압합니다.

  아마도 이 악령 든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를 믿지 못했을 겁니다. 한 두 번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구박했을 겁니다. 아이에게 실망한 것을 야단치는 것으로 표시했을 겁니다. 그래서 아이는 주눅이 들어 말도 제대로 못하게 되었고, 자기의 정신적 고통을 발작으로 나타내었습니다. 모두  자기를 사랑해달라고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요즘 부모들은 더 하죠. 우리들은 사회에서 경험한 것을 자녀들에게 과정을 무시한 채 결과만 강요하려고 듭니다. 고생을 덜하게 하고, 남보다 앞서 나가라는 미명 아래 자녀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자유의지를 억압합니다. 자신이 사회에서 받았던 수모를 자녀를 통해 대신 갚으려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이 아버지와 대화를 통해 아버지를 먼저 믿음으로 회복해 주십니다. 그러고 나서 아이에게서 악령을 쫓아내 주십니다. 자신이 용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남도 용서해주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아이 아버지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를 회복시켜주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올바른 관계 회복에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인간관계 안에 주님께서 자리를 잡고 계시면 그 관계는 병들지 않습니다. 악령이 들 여지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시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자신과 주님의 관계를 회복시키면, 타인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집니다. 더 이상 애착과 간섭이 아니라 진정한 용서와 사랑이 흐르게 됩니다.


  전체 내용을 보면, 초기 공동체에서도 구마가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모두 믿음과 기도가 부족해서 그리 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통찰력을 본받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인간관계에 기도와 믿음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오늘 복음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작은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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