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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월 19일 야곱의 우물- 마르 9, 14-29 묵상/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19 조회수518 추천수3 반대(0) 신고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산에서 내려와) 다른 제자들에게 가서 보니 그 제자들이 군중에게 둘러싸여 율법학자들과 논쟁하고 있었다. 마침 군중이 모두 예수님을 보고는 몹시 놀라며 달려와 인사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저들과 무슨 논쟁을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였다.

 

“스승님, 벙어리 영이 들린 제 아들을 스승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어디에서건 그 영이 아이를 사로잡기만 하면 거꾸러뜨립니다. 그러면 아이는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집니다. 그래서 스승님의 제자들에게 저 영을 쫓아내 달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는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하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그 영은 예수님을 보자 곧바로 아이를 뒤흔들어 댔다. 아이는 땅에 쓰러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다.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에게,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대답하였다.

 

“어릴 적부터입니다. 저 영이 자주 아이를 죽이려고 불속으로도, 물속으로도 내던졌습니다. 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고 말씀하시자 아이 아버지가 곧바로,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떼를 지어 달려드는 것을 보시고 더러운 영을 꾸짖으며 말씀하셨다.

 

“벙어리, 귀머거리 영아, 내가 너에게 명령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마라.” 그러자 그 영이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마구 뒤흔들어 놓고 나가니 아이는 죽은 것처럼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아이가 죽었구나”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아이가 일어났다.

 

그뒤에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그분께 따로,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마르 9,14-­29)

◆한때 기도를 나의 계획과 관심과 욕구를 실현시키기 위하여 하느님을 움직이는 주술처럼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 “‘하실 수 있으면’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하신 성경 말씀은 기도에 대한 나의 그같은 믿음과 신념을 보증해 주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다른 한구석에는 좌절된 기도의 경험들에 대한 설명할 수 없는 의심과 반문이 늘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후에야 기도란 나의 계획과 관심과 욕구의 충족을 위하여 하느님을 움직이고 조정하는 주술이 아니라 내가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고 복종하기 위하여 자신을 비우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비운 그 공간에서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을 위하여 무엇이든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 기도의 응답이 내가 바라는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뜻을 깨닫고, 그 뜻에 내가 순종함으로써 이루지는 것임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문제는 늘 믿음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신다는 믿음, 하느님께서는 우리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더 잘 알고 계시다는 믿음, 하느님께서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깊고 크게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에 대한 믿음. 기도를 통하여 내 마음 안에 그같은 믿음이 자라나고, 그같은 믿음의 기초 위에서 드려지는 기도 속에서 하느님께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생각하면 수많은 기도 제목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가운데서도 내 안에 깊이 잠재되어 내 마음과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더러운 영과의 싸움은 죽는 날까지 안고 가야 하는 기도 제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는 그 무엇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결코 포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김홍일 신부(성공회 · 나눔의 집 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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