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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낙제생의 기도 . . . . . . [배문한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19 조회수839 추천수13 반대(0) 신고

 

 

 

 

 

 

                 - [배문한 신부님전 수원가톨릭대학장 94년 선종 -

 

 

 

", 하느님! 죄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18,13)

 

세리는 가슴을 치며 감히 하늘을 우러러볼 생각도 못한 채 기도했다.

반면에 바리사리파 사람은 이렇게 의기양양하게 기도했다.

 

", 하느님!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욕심이 많거나

 부정직하거나 음탕하지 않으며 또 이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닌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 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하고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칩니다."(루카 18,11-12)

 

하느님 앞에 서 있는 나는 비참하게만 보인다.

아무것도 잘한 것이 없고 자랑할 만한 것도 없다.

의기소침과 불안의 늪에서 헤어나고자 허위적거리며,

죄 많은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외칠 뿐이다.

 

차라리 바리사이파 사람처럼 기도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주님, 나는 성당을 몇 개나 지었습니다.

 유치원도 세우고 학교도 설립하였습니다.

 또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병원도 세웠습니다.

 일 년에 수백 명씩 세례를 주었습니다.

 가난한 이, 불쌍한 환자들을 위해 내 청춘을 불태웠습니다.

 나는 다른사람들 처럼 정욕에 이끌려 죄를 짓지도 않았고

 한 번도 죄의 유혹에 빠지질 않았습니다.

 나는 멋진 설교로써 많은 사람을 회개시키고 하느님께 대한

 뜨거운 사랑과 삶의 의미와 기쁨을 주었습니다.

 또 기도와 안수로써 많은 이들에게 치유의 은사를 내려 주었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시원스레 기도하고 감사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실은 너무도 반대이기 때문이다.

 

비록 얼마 안되는 사제 생활이긴 하지만 그래도...

손꼽을 것이 없다.

 

성당은 커녕, 화장실 하나 짓지 못했다.

혹시나 성당을 하나 지을까 하고 땅을 사고 터를 닦아

공사를 구상했을 때도 있었으나 주님께선

'네까짓 놈이 무슨 집을 짓느냐...'는 듯이 학교로 이동시켜 버리셨다.

 

입만 벌리면 사랑을 외치지만,

나는 막상 누구에게 사랑을 베풀고 있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미명 아래

잘못하면 한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고 죽는 것이 아닐까.

 

사제란 독신으로 사는 것이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함인데...

나는 지금까지 누구를 사랑했는가?

사랑하기 때문에 무엇을 했는가?

 

[언제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었으며,

 감옥에 갇혔을 때 찾아보았는가?] (마태오 25,35-36) 하고 반성해 볼 때

한심하기만 하다.

 

나환자촌에서...

결핵 요양소에서...

또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 틈에서 청춘을 바치는 사제나 수도자들은

얼마나 부러운 존재들인가!

 

강론만 해도 그렇다.

목사들처럼 신나게 소리치고 감동시키지는 못할 망정

좀더 알차고 박력있게 할 수도 있을텐데...

잠꼬대 같은 강론이니 딱하다.

 

눈이 멀어도 내가 주님을 볼 수 있는 한, 나는 행복하고,

귀가 멀어도 주님의 음성은 들을 수 있는 한, 나는 행복하고,

어떠한 괴로움과 슬픔도 평화를 앗아갈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찌하여 지금은 불안과 초조와 열등감에서 방황하고 있을까...

 

사실,

나의 신앙은 깊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눈도 코도 없고, 손도 발도 없는 나병 환자가 점자로 된 성서를,

그것도 혓바닥으로 읽으며 하느님을 만나는 얼굴에는 기쁨과 평화와

용기와 위안을 준다.

 

나는 왜 조그만 병고도 이기지 못하고

다른 이에게 불안과 걱정을 주는 것일까?

 

나이를 먹어도 한 일이 없으니 마치 시험 답안지를 쓰지도 못했는데

시간은 다 되고 생각은 떠오르지 않을 때의 수험생처럼 당황하며,

하느님 앞에 나설 때 무엇을 했다고 말씀 드릴까 하는 생각으로

불안하다.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주님! 이제는 하루 해도 다 가고 저녁이 가까웠으니 우리와 함께

 묵어 가십시오." (루카 24,29)

 

아무튼 사제로서는 낙제생이 아닐 수 없다.

그 위에 아무리 좋은 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고,

아무리 좋은 글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사람들과의 대화가 힘들고 할 말이 떠오르지 않으며,

글을 쓰려고 해도 생각이 안 나니

무슨 병인지는 모르나 지독한 병인 것만 같다.

 

좀더 엄살을 부린다면,

살만 찌고 머리는 멍청해지니 사람이 아니라 돼지가 되는 것 같다.

무관심, 무감각에다 고독까지 엄습하니...

모든 부정적인 것의 쓰레기통 같은 자신을 본다.

 

 

"주여! 이 쓰레기통에서 구해 줄 자가 누구입니까!

 오로지 당신뿐입니다.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죄인은 부르러 오셨고,

 유능한 자를 위해 오시지 않고 무능한 자를 위해 오셨고,

 비천한 이를 들어 올리셨으며 주리는 이를 은혜로 채워주시는 이

 당신뿐입니다.

 

 도와주소서!

 

 나는 자신의 허무함을 압니다.

 '0'이라는 숫자가 혼자서는 아무 힘이 없지만, 그 옆에 다른 숫자가

 붙을 때는 '10, 20, 30...'으로 가치가 발하게 되듯,

 이 무능하고 비참한 인간도 당신이 함께 하시면 쓸모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삐뚤어지고 부서진 그릇이었지만

 그동안 당신의 도구로 쓰셨음을 느낍니다.

 

 주님! 쓸모없다고 버리지 마시옵고 당신 도구로 원하시는 대로

 원하시는 정도로 써 주소서.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소서. 기도드릴 뿐입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이 어둔 밤을 지나면 찬란한 밝은 날이

 올 것이기에 내가 너화 함께 있겠다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일어나 기도하오니...

 

 세리의 기도를 즐겨 들어주시는 주님,

 이 비천한 죄인의 푸념 섞인 기도를 들어 주소서!"

 

 

- [치마입은 남자의 행복]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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