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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종교적 인간. Homo religiosus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21 조회수605 추천수4 반대(0) 신고

 

<종교적 인간. Homo religiosus>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마태 6,1-8. 16-18)


  사회학자들은 인간을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이라고 정의합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반성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 반성을 통해 자신을 초월하는 무엇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거룩함, 즉 성(聖)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집단으로 종교예식을 거행하는데, 인간의 종교적 행위에는 정의실현, 자선, 기도, 단식 등으로 대표되는 예식이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어느 종교에서나 공통적으로 통용됩니다. 인간의 종교역사를 보면 초기에 두려움에서 비롯하여 비본질적인 요소가 곁들여 있다고 합니다. 토템이니 터부니 하는 것들이 종교의 비본질적인 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도 여태껏 알아오던 종교가 순수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정의실현, 자선, 기도, 단식 등등을 남들이 알아주도록 겉으로 드러내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자기과시에 지나지 않으며, “힘의 숭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힘을 숭배하여 자기세력을 확장하려는 것입니다. 결국 우상숭배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신의 이름을 빌어 한 집단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입니다. 이때 나오는 힘은 인간의 힘입니다.  죽을 운명의 인간에게서 놔왔으므로 돌과 같이 굳고 죽은 힘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힘이 아닙니다.

“나는 그들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그들의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워 버리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에제 11,19)


  예수님께서는 인간들이 빠지기 쉬운 이런 가식적인 종교심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개인이나 한 세력이 타인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려는 것은 순수종교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순수한 종교심을 가리켜 보이셨습니다. 그 전까지 오해했던 순수한 신앙심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랑을 통한 자기비움(卑虛,sortie de soi)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32)

  예수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선물로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 자유는 인간이 스스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고백할 때 깨닫게 되는 진리를 통해서 얻어집니다. 영원한 수수께끼인 죽음의 심연이 인간 앞에 드리워져 있고 그것을 확연히 알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죽음이 삶과 얽혀있다는 고백을 솔직히 드러낼 때, 그것은 진리입니다.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창세 3,19)

  오늘은 재의 수요일입니다. 인간이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것을 고백할 때, 현세에서 죽음을 실천하는 의미가 절실하게 다가 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더러 삶 속에서 죽음의 행위를 실천하라고 초대 하십니다. 삶 속에서 자유로이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실제 죽음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삶 속에서 자신을 죽이는 행위는 바로 비움과 섬김입니다. 정의를 실천하고, 자선을 베풀며, 기도와 단식을 자신의 영광으로 삼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봉헌하는 삶이 바로 비움이며 섬김입니다.

  인간들의 삶이 모두 하느님께 봉헌될 때 지상에서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신앙에 비본질적인 것이 담겨있지나 않은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그 판단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종교 세력화, 집단 죄의식의 강요는 자칫 새로운 바리사이에 빠지는 결과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교묘하게 다가오는 무신론의 함정도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인간의 능력으로 하느님의 영역을 침범하려는데 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한낱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고백할 때  우리는 참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순례자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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