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22 조회수815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7년 2월 22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Who do people say that the Son of Man is?”
“You are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Mt.16.13,16)
 
제1독서 베드로 1서 5,1-4
복음 마태오 16,13-19
 
며칠 전, 미사를 끝내고 신자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서 성당 입구에 섰습니다. 그런데 어떤 자매님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혹시 보좌신부님이세요?”

“아뇨. 저 여기 주임신부인데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너무나 젊어 보이셔서 보좌신부님인 줄 알았어요.”

‘늙어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저로써는 얼마나 기분 좋은 소리였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제야 동안(童顔) 소리를 듣는구나. 역시 주임신부가 되니까 좋기는 좋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지요. 그런데 어제는 또 다른 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신학교에 들어가는 신입생이 있어서, 제가 축구화를 선물로 사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가게에서 축구화를 사고서는 계산을 하는데, 그곳 주인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네요.

“아드님이시죠?”

충격이었습니다. 요즘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스스로 젊어 보인다고 자부하고 있었던 저였는데, 제 아들이냐고 묻다니요. 하긴 몇 년 전에, 군대도 다녀온 신학생과 함께 어느 가게에 들어갔다가 ‘아드님이세요?’라는 이야기 들은 것을 생각한다면, 이제 막 신학교에 들어가는 신학생을 두고서 ‘아드님이냐?’고 하는 어제의 일은 아무 것도 아니지요. 하지만 그렇게 썩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네요.

말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상대방을 기분 좋게도, 또 반대로 기분 나쁘게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말을 하는 사람은 어떨까요? 분명히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려고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 말을 듣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특히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이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정말로 듣고 싶어 했던 말이었지요. 왜냐하면 당신의 신원을 알고,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을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 바로 당신의 사명이었으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시몬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까지 주는 영광을 주십니다.

사실 성경을 보면 베드로의 부족한 면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배반한 사실, 성격이 급하고 배운 것도 별로 없는 부족함 투성 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는다는 것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은 것을 가지고 크게 만드시는 분이 주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때, 바로 베드로의 제대로 된 말 한 마디로 인해서도 그렇게 큰 은총을 주실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리고 그 큰 은총을 받은 베드로는 자신의 부족함을 모두 극복하고 예수님을 가장 잘 따르는 교회의 반석이 됩니다.

나는 주님께 과연 어떤 말을 하고 있었을까요? 또한 주님을 이 세상에 얼마나 잘 증거하고 있었을까요? 혹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아무런 증거활동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한심한 제 모습에 주님께서 혀를 차시지는 않을까요?


상대방이 좋아하는 말을 하도록 합시다.



다른 문은 반드시 열린다('행복한 동행' 중에서)

AD 79년 8월 24일, 이탈리아 나폴리의 연안에서 활화산 베수비오가 폭발했다. 비옥한 캄파니아 평야의 길목에 위치한 폼페이는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로 번성했고 많은 이가 살고 있어 인명 피해가 컸다.

영국의 소설가 에드워드 리턴은 당시 상황을 실감나게 그린 '폼페이 최후의 날'이란 작품ㅇ르 내놓았다. 소설 속 주인공 니디아는 꽃 파는 눈먼 소녀다. 비록 앞을 보지 못하지만 이런 처지를 비관하거나 슬픔에 빠지지 않았고,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자신의 힘으로 생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더니 순식간에 폼페이가 짙은 연기와 먼지로 가득 뒤덮이게 되었다. 대낮임에도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컴컴했고, 사람들이 놀라 허둥대며 출구를 찾아 헤매느라 도시 전체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하지만 니디아는 원래 앞을 보지 못하는 데다 지난 몇 년 동안 골목골목을 누비며 꽃을 팔았기 때문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촉감과 청각에 의지해 통로를 찾아냈고 수천 명이 사망하는 대재앙 속에서도 많은 이를 도와 그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불행이 행운으로 뒤바뀐 것이다.

에드워드 리턴은 이 작품을 통해 말한다.

"운명은 공평하다. 니디아의 한쪽 문을 닫아 버린 대신에 또 다른 한쪽 문을 열어 주었으니까. 그리고 이것은 비단 니디아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Blessed are you, Simon son of Jonah.
For flesh and blood has not revealed this to you, but my heavenly Father.
And so I say to you, you are Peter,
and upon this rock I will build my Church,
and the gates of the netherworld shall not prevail against it.
I will give you the keys to the Kingdom of heaven.
Whatever you bind on earth shall be bound in heaven;
and whatever you loose on earth shall be loosed in heaven.”
(Mt.16,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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