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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27) 사순절에 드리는 선물 하나 / 전 원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22 조회수1,213 추천수13 반대(0) 신고

 

 

 

                   사순절에 드리는 선물 하나

 

 

                                     글쓴이 : 전 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말씀지기 주간)

 

 

혜화동에 있는 가톨릭 신학대학 대성당 안에는 큼지막한 십자고상이 걸려 있습니다.

사제들이 양성되는 신학교 성당의 십자가는 특별히 처절히 고통받는 예수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거나,

아니면 십자가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하면서 작가의 예술성을 한껏 드러낸 모양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신학교 성당에 있는 십자가상은 그런 기대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성당 벽에 단단하게 고정시키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퉁하고 소리를 내며 떨어질 것 같은 두툼하고 묵직한 정형화된 십자가와,

그 위에 열십자로 팔을 벌리고 있는 무표정한 예수님의 하얀 석고상이 마치 접착제로 고정시켜 놓은 듯 모양새 없이 붙어 있습니다.

 

누군가 십자가 앞에 다가와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쳐도, 당신이 도대체 누구시냐고 악다구니를 쓰며 달려들어도 굳게 입을 다물고 꿈쩍도 않는 벽창호 같은 예수님 모습입니다.

그렇게 볼품없는 십자가상이 아직도 저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수도생활을 하거나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교 생활을 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금방 알아채듯, 저 역시 신학생 시절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관계 안에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경험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살아오면서 인간관계 때문에 별로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했기에

처음으로 동료에게서 받은 상처는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으로 다가왔습니다.

 

'미움' 이란 느낌이 가슴살을 긁어내는 아픔이라는 것도 그때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듣고 살던 '사랑' 과 '용서' 라는 단어가 밀폐된 공간에 갇힌 것처럼 그렇게 갑갑하게 느껴지던 것도 그때였습니다.

 

돌아보면 이런 단어들이 생생하게 다가온 것은 어쩌면 제 삶에 있어서 신학교 시절이 가장 순수한 시기였기 때문이지도 모릅니다.

 

나에게 상처를 주는 친구를 위해 기도를 한 것도,

웬일인지 그 친구가 방에서 나오지 않는 날에는 대신 밥을 타서 밀어 넣어 주곤 한 것도,

대침묵 시간을 어겨가며 그 친구의 방을 방문하여 이야기를 들어 준 것도

순수했던 신학교 시절에나 가능했던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마치 신학교 생활의 승패를 가름하는 숙제라도 되는 듯 한 친구와 씨름을 하며 지내야 했습니다.

미워하는 사람일수록 끊임없이 사랑을 표현해 주면 언젠가 변화된다는 순진한 믿음 하나 안고 그 친구에게 다가갔지만,

그 친구는 기대와는 달리 결국 깊은 화해를 하지 못한 채 신학교를 떠났습니다.

 

차라리 무관심했으면 더 나았을 것 같은 후회감이 밀려왔습니다.

내가 그에게 바쳤던 관심과 정성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

허탈감이 저를 당혹하게 했습니다.

 

어느 날 성당 한가운데 붙박혀 있는 그 커다랗고 볼품없는 십자가를 허탈하게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두툼한 십자가에 온통 팔을 벌리고 사지가 그 위에 고정되어 있는 무방비 상태의 모습...,

누군가가 갈대를 꺾어 톡톡 치며 조롱을 해도,

왼뺨과 오른뺨을 번갈아 때리며 욕설을 해도,

아무런 저항도 반항도 할 수 없는 저 무기력한 상태....  .

문득 하느님의 무한한 용서와 사랑의 힘은 바로 저런 모습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십자가란 2천 년 전 한 청년이 당신이 만난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랑하다가,

힘없이 끌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지구상의 한 점 한 사건을 표현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저 볼품없는 십자가가 우리에게 용서가 되고 구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온갖 모욕과 상처를 받으면서도 그분이 남긴 사랑의 흔적 때문입니다.

 

그날 십자가를 바라보며 앉아 있던 저에게 신학교의 십자가는 떠난 친구와의 만남에 담긴 의미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비록 신학교를 떠났지만, 그 친구에게 바친 사랑의 흔적은 그의 인생 어딘가에 축복이 되었을 거라는 ....  .

 

사람들에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용서가 어렵다고들 말합니다.

다른 말로, 관계 속에 사는 인간이기에 그만큼 사람들이 삶 속에서 주고받는 상처가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 함께 살기에는 고슴도치처럼 상대방의 가시가 너무 아프고,

      혼자 살기에는 기나긴 겨울이 너무나 춥고 외롭습니다. ****

 

서로 다른 배경과 성격들이 만나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하여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도,

세대차를 경험하며 자녀들과 한 가정 공동체를 이루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수도원이나 신학교처럼 서로 남남이 만나 하나의  이상(理想)만을 향해 공동체를 이루며 한평생 살아가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바라보며 깨달은, 공동체를 잘 살아가는 작은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내 존재가 내가 만난 그 누구에겐가 <선물> 이 되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아내에게

자녀에게

부모에게

그 밖에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

내 존재를 선물로 이해하면 사람들로부터 받는 상처가 훨씬 작아집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전 존재를 세상에 <구원의 선물>로 내어놓으셨습니다.

당신을 향해 조롱하는 사람들도,

당신의 손발에 못을 박고 창검으로 찌른 사람들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신 자신을 세상을 향한 <온전한 선물>로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내 존재를 통해 누군가에게 건네 준 선물이 그들 인생에 축복이 되고 구원이 된다면,

오히려 나 자신이 가장 축복받은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이 나를 인간 생명으로 이 땅에 보내신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벽창호처럼 고개를 숙인 채 입을 꾹 다물고 아무런 대답도 대꾸도 하지 않던 신학교의 침묵의 예수님상이 보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상처를 받으면서도 한 친구에게 미련스럽게 다가갔던 그 순진했던 시절이 사제가 된 지금 더욱 아쉬워집니다.

 

신학교 시절 내내 저에게 선물이 되었던 그 볼품없던 십자가의 이야기를 사순절의 선물로 독자들과 함께 나눕니다.

아울러 이번 사순절 때 듣게 될 예수님 수난의 이야기가 여러분들의 삶의 이야기로 녹아들길 바랍니다.

 

그분의 십자가가 <구원의 선물>이 되었듯, 여러분의 온갖 상처와 아픔들이 또한 그분의 십자가의 이야기가 되길 바랍니다.

마침내 여러분의 삶이 그 누군가의 인생을 축복하는 <선물>이 되길 빕니다.

 

                         ㅡ 말씀지기 편집자 레터 전문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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