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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낙상 4주 만에 설날 성당에 가신 어머니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22 조회수502 추천수5 반대(0) 신고
            낙상 4주 만에 설날 성당에 가신 어머니 
                         어머니의 꿈이 부디 상서로운 꿈이기를...
 



<1>

올해로 84세가 되신 노모께서 지난달 며칠 동안 감기를 앓으셨다. 지난해 겨울 초입에서 독감 예방 접종을 하신 데다가 아무 데서도 독감 얘기는 나돌지 않으니 독감에 걸리신 건 아닐 터였다. 그래도 단순한 감기가 노인에게는 치명적인 질병이 될 수 있으므로 노친을 모시고 사는 처지에서는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몇 년 전부터 감기를 앓으실 때는 경기도 안산에서 한의원을 개업하고 있는 외손주사위 덕을 보신다. 한의사 외손주사위가 지어 보내주는 한약으로 감기를 이기시곤 했다. 어머니는 '한방 체질'이라는 말을 들으실 정도로, 유난히 한약이 잘 듣는 것 같다. 그리고 노인의 감기에는 아무래도 한방 치료가 더 적합할 터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염치 불고하고 안산의 생질사위에게 전화로 어머니의 감기 상태를 알리고, 지난달 17일 안산에 가서 한 보따리나 되는 한약을 가져왔다. 외손주사위가 정성껏 지은 그 약 덕분에 어머니는 또 한 번의 감기를 잘 이겨내셨다.

어머니가 감기를 앓으시는 동안 우리 집에서는 전에 없던 재미있는(?) 일 하나가 있었다. 동생이 저녁에 퇴근을 해서 형 집에 올 적마다 어머니 방을 들여다보고 오늘은 좀 어떠시냐고 물으며 어머니의 감기 상태에 관심을 표하곤 했다. 그러는 동생은 적이 긴장을 하고 걱정을 하는 표정이었다.

지지난해 12월 상처를 한 후로는 퇴근과 함께 형 집으로 와서 저녁 식사를 하고 큰집에서 생활하는 아이들도 보고, 밥 바구니를 들고 자기 집에 가서 잔 다음 혼자 아침을 해결하고 일터로 출근하는 동생은 일터의 동료들에게 어머니 사정을 얘기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일터의 동료들에게서 노인에게는 단순한 감기가 치명적일 수도 있다, 감기를 앓다가 돌아가시는 노인도 많다는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동생은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퇴근 후 어머니 방을 들여다보곤 하는 동생의 얼굴은 처음에는 걱정 정도가 아니라 겁을 먹은 기색이기도 했다.


▲ 1967년경에 찍은 사진인 듯한 어머니의 40대 시절 모습. 지금은 본국 콜롬비아에 가 계시는 태안 성당 초대 주임이셨던 고대연 야고버 신부님이 지난해 보내주신 CD속에 들어 있는 사진이다. 함께 찍은 어머니의 대녀 윤선자 말가리다씨도 이제는 손자들을 여럿 둔 할머니가 되어 있다.  
ⓒ 지요하

하루는 아침 식사 자리에서 어머니께서 작은 아들 말씀을 하셨다.

"늙은 에미가 감기를 앓는다구 허니께 규왕아배가 잔뜩 겁이 나는 모앵여. 말수 적구 의견 읎는 사람이 퇴근해 온 저녁마다 에미 방문을 열어보구서 오늘은 좀 어떠시냐는 말을 다 허구…. 전에 읎던 일이라니께. 그런 일은 생전 읎을 것 같었는디, 증말루 별일이여."

그런 말을 하고 가족과 함께 웃으시기도 한 어머니는 다음에는 가슴 아픈 얘기를 하며 또 눈물을 지으셨다.

"예편네 죽은 후 그래두 늙은 에미 살어 있는 큰집에 의지를 허구 이렇게 저렇게 위안을 얻으며 사는 처지인디, 이 판국에 에미가 잘못 되기라두 허면 지 신세가 워떻게 될 겨. 그걸 생각허니께 더 겁이 나는 모앵여. 생각허면 불쌍허구 안쓰럽기만 허지 뭐. 그년이 왜 그렇게 명이 짧어 갖구 젊은 나이게 일찍 디졌나 물러."

나는 아무 말 못하고 속으로 가만히 한숨을 삼키는데, 아내가 한 마디하고 나섰다.

"그러니께 어머님, 가슴 아픈 얘기는 허지 마시구요, 마음 굳게 잡숫구 얼릉 감기두 이기시구요, 어려운 가운데서도 하느님께 의지하구 힘있게 사셔야 해요. 어머님께서 오래 사셔야 해요. 어머님께서 여든이 훨씬 넘으신 연세에두 살림을 도와 주시니께 제가 감당을 허지, 어머님 안 계시면 증말 어려워요. 그러니께 어머님, 우리 온 가족을 위해서 힘 내셔요."

"그려. 우리 집 형편 때문으루두 내가 좀 더 살어야 헐 틴디, 간밤에는 이상헌 꿈을 꾸었어. 그 꿈이 너무 묘허구 이상혀."

그리고 어머니는 간밤에 어렵게 잠이 들어 주무시던 중 꾸었다는 꿈 얘기를 들려주셨다.

<2>

어머니가 어딘지 모를 길을 가시는데 누군지 모를 한 남자가 나타나 반갑게 인사를 하더니 손을 내밀더라는 것이다.

"할머니, 이리 오세요. 내 손을 잡으세요. 그리고 날 따라오세요. 내가 할머니를 저기로 안내해 드릴 게요."
"저기가 어딘디요? 그리구 댁은 누구시오?"
"가보시면 다 알아요. 그냥 내 손을 잡고 날 따라오세요."
"싫어요. 난 안 가요."
"가셔야 해요. 어서 오세요. 내 손은 안 잡아도 좋으니 그냥 따라만 오세요."
"싫어요. 내가 왜 모르는 사람을 따라서 모르는 곳을 가요. 안 가요, 안 가."

그러다가, 그 사람이 내미는 손을 뿌리치며 이리저리 피하다가 잠을 깨었는데, 잠을 깨고 보니 그게 꿈이더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게 꿈이라는 것을 아신 순간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입 속으로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며 성호를 그으셨다고 했다. 그리고 온몸이 땀에 젖어 있는 것을 아시고는 그 밤에 홀로 일어나 내복을 다 갈아입으셨다고 했다.

어머니의 꿈 얘기를 듣는 순간 나도 입 속으로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며 성호를 그었다. 어머니가 어쩌면 황천길에서 아슬아슬하게 비켜나신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머니께서 꿈속에서 본 누군지 모를 그 사람을 그냥 따라갔더라면, 그대로 저승으로 가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잠을 자다가 홀연히 돌아가시는 분들은 대개 그런 연유로 돌아가시는지도 몰라. 돌아가시고 나면 그런 꿈 얘기를 하시지 못할 테니, 아무도 그런 연유를 알 수가 없을 테고…. 그런데 어머니가 꿈속에서 만난 그 사람을 따라가시지 않으셨더라도, 그런 꿈을 꾸셨다는 것 자체가 어떤 불길함을 암시해주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하며 잠시 수심에 잠겼다. 하지만 어머니의 그런 꿈 자체에서 오는 불길함 따위는 마음에 두지 말고, 어머니께서 꿈속에서 만난 사람을 따라가지 않았다는 사실, 그 사람의 권유를 뿌리치는 과정에서 잠이 깨었다는 사실만을 온전히 기꺼워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사람을 따러갔더라면 어머니는 그 길루 돌아가셨을 지두 물러요. 그런디 어머니의 평소 의지가 강허셔서 그 사람을 따러가시지 않은 거예요. 앞으루두 어머니는 건강허게 오래 사실 거예요. 규왕이네를 위헤서라두 더욱 마음 굳게 잡숫구 오래 사셔야 해요."

이렇게 나는 어머니께 위안을 드리면서 나 자신을 격려했다.

<3>

어머니는 감기를 앓으시는 동안 입맛도 잃으신 데다가 틀니가 부분적으로 맞지 않아서 음식을 잘 잡수시지 못했다. 틀니 쪽에 문제가 있는 것을 확인한 날 지체 없이 어머니를 모시고 치과의원엘 갔다. 감기로 잇몸이 전체적으로 부은 상태여서 틀니가 부분적으로 맞지 않게 되었다면서 치과의사는 어머니 틀니의 특별히 맞지 않은 부분들을 교정해 주었다.

틀니가 온전한 상태는 아니지만 어머니는 그런 대로 전보다는 낫게 음식을 잡수셨다. 나는 그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이번에는 어머니를 내과의원으로 모시고 가서 영양제 주사를 맞으시게 했다. 감기를 앓으시는 동안 입맛을 잃으신 데다가 틀니 문제로 음식을 잘 잡숫지 못했으니, 영양제 주사가 필요하리라는 생각이었다.

얼마 전에도 영양제 주사를 놓아 드리려고 내과위원에 모시고 갔다가 혈압 문제로 보류를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다행히 혈압 상태가 정상이어서 어머니는 무난히 영양제 주사를 맞으실 수 있었다.


▲ 친정 어머니의 낙상 소식에 지난 4일 한의사인 맏사위 가족과 함께 친정을 방문한 누님도 지난해 환갑을 넘긴 할머니다. 아직 100일도 되지 않은 외증손자를 안으시고 흐뭇해하시는 어머니.  
ⓒ 지요하

그날은 1월 26일이었다. 어머니에게서 감기 기운이 거의 사라진 시점이었다. 어머니는 감기를 이겨내시고 입맛도 되찾으신 데다가 틀니 교정으로 음식을 비교적 잘 잡숫게 되어 영양제 주사를 사양하셨지만, 아들 부부의 강권으로 영양제 주사를 맞으시면서 적이 즐거운 기분일 수 있었다. 무려 4시간이나 침대에 누워 팔뚝에 주사 바늘을 꽂고 있는 것이 다소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잠도 자며 더없이 편안한 마음이셨다고 했다.

오후부터 눈이 내리리라는 기상 예보에 따라 나는 오전에 어머니를 내과의원에 모시고 갔고, 오후 들어 간간이 눈발 날리는 것을 보며 오전 선택을 다행으로 여겼다. 오후 1시경 내과의원의 전화를 받고 딸아이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러 가면서, 눈발이 비치기는 했지만 아파트 현관 로비 바닥이 미끄러운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얼굴빛이 좋은 혈색이신 것 같은 어머니를 보며 흔쾌한 기분을 안고, 어머니를 모시고 오면서 마누라 부탁으로 잠시 마트에 들러 몇 가지 식료품을 샀다. 그리고 집에 와서 아파트 현관 앞에 어머니와 딸아이를 먼저 내리게 한 다음, 오후에 눈이 내릴 것을 생각하고 차를 지하주차장으로 끌고 갔다.

내 차를 지하주차장에 놓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파트 현관 바로 앞의 널찍한 '장애인주차장'은 내 전용인 셈이었다. 내내 그 자리에다 차를 놓다가 눈발을 보고 처음으로 지하주차장에다 차를 놓은 것인데, 어머니를 먼저 내리시게 하고 양손에 짐을 든 손녀와 함께 먼저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가시게 한 것이 내 큰 불찰이었다.

지하주차장에서 나와 혼자 현관 로비를 지나면서 나는 로비 바닥이 미끄러운 것을 느꼈다. 이 로비 바닥을 어머니께서 아무 일없이 지나셨을까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그것은 확실한 불안감이고 걱정이었다.

<4>

집에 들어가니 마누라가 내게 어머니의 낙상(落傷) 사실을 알렸고, 방에 누우신 어머니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아파트 현관 로비 중간쯤에서 발이 미끄러져 심하게 엉덩방아를 찧으셨다고 했다. 엉덩방아를 찧었다가 등까지 바닥에 대고 넘어지는 순간 몸 속에서 뭔가가 철썩 내려앉는 것 같은 충격을 받으셨다고 했다.

'낙상'이라는 단어는 일찍부터 접해 왔지만, 우리 집에서 일어난 '노인 낙상'의 실체를 처음 접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는 어머니의 낙상 모습을 두 눈으로 보는 순간 며칠 전에 들었던 어머니의 꿈 얘기를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혹 어머니의 그 꿈속에서의 일이 지금 실제 상황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절로 냉큼 떠오르는 괴이한 생각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고 했고, 허리 부위가 몹시 아프다고 했다. 허리를 주물러드리니 시원하다고 하셨다. 스스로 일어날 수는 없지만, 누운 채로 어렵게나마 허리를 돌릴 수 있는 것으로 보아 뼈를 다치신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날 오후 나는 긴한 일로 출타를 한 사이에 일찍 퇴근해 온 동생이 어머니를 모시고 가까운 한의원엘 갔는데, 다행히 뼈를 다치지는 않았다는 진단이었다. 그날부터 어머니는 한의원을 다니면서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받았다. 몸 속 장기 부위의 이상한 통증 때문에 내과의원에 가서 사진도 찍어보았지만 별 이상은 없었다.

처음에는 스스로 상체를 일으키지도 못했고, 가족의 도움으로 일단 상체를 일으킨 다음 한참이나 시간이 걸려서야 간신히 몸을 일으킬 수 있었던 어머니는 차츰 차도를 보였다. 하지만 가장 문제는 입맛을 잃어 음식을 거의 드시지 못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 아내는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썼다. 어머니께서 전복죽을 좋아하신다는 사실을 일찍 기억해내기도 했다. 어머니가 원하시는 호박죽을 끓이는 일에는 나도 협력을 했다. 호박 껍질을 벗기는 일은 아무래도 남자 몫이었다.

어머니가 전혀 일을 못하시는 바람에 아내는 일이 많아졌고, 나도 바빠졌다. 새삼스럽게 어머니의 몫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방학을 맞은 딸아이가 집에 와서 생활하며 큰 도움을 주었다.

동생은 어머니의 낙상과 관련하여 일터에서 동료들로부터 여러 가지 얘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낙상을 한 노인들 중 4분의 1 정도는 낙상이 빌미가 되어 세상을 뜨신다는 말도 들었고, 잘 자고 일어나서 방안에서 이불을 개다가 이불에 걸려 넘어져서 돌아가시는 노인데도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했다. 그런 말을 하는 동생의 얼굴에서 어머니의 낙상 때문에 동생의 심고도 컸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는 한의원 진료 초기부터 어혈을 빼주는 15만원 어치 한약을 구입해준 내게 고마워하시면서 "그냥 침만 맞구 물리치료만 허는 환자들과는 대접이 다른 것 같어. 나헌티는 의사나 간호사들이 유난히 친절허구 싹싹혀"라며 즐겁게 웃으셨고, 어머니를 한의원에 모셔가고 모셔오는 일로 진료 시간을 비켜 오후 걷기 운동을 하는 내게 미안해하시기도 했다.

어머니의 낙상 사실은 온 가족에게 비상 소식이 되어 미국에서 사는 두 누이와 안산에서 사는 누이는 여러 번 전화를 해오고 어머니를 위한 미사를 봉헌했다고 했다. 그리고 안양에서 사시는 누님은 지난 4일 일요일을 이용하여 한의원을 개업하고 있는 맏사위 가족과 함께 친정을 다녀가시기도 했다.

차츰 차도를 보이시는 가운데서도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프고 옆구리가 켕기는 불편 때문에 3주일이나 성당에 가시지 못했던 어머니는 드디어 지난 설날에는 가족과 함께 성당에 가셨다. 무려 4주만이었다. 하느님께 새해 세배를 드리고, 조상들과 모든 영혼들을 위한 '합동위령미사'를 드리는 날이므로 아파도 참아야 한다는 의지를 보이셨다.

설날 오전에 성당에 가셔서 신부님께 청을 하여 고해성사를 보시고 합동위령미사를 지내시는 어머니를 보며 나는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올해 연세 84세이신 어머니께서 미끄러운 아파트 현관 로비, 딱딱한 돌 바닥에서 낙상을 하시고도 뼈를 다치시지 않고, 근 한 달 동안 낙상 후유증을 앓으시고도 거의 쾌차하신 모습으로 설날 성당에 와서 미사를 지내시니 이보다 더 큰 은총이 어디 있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오늘은 목요일, 우리 태안 성당의 여성 레지오 단원들이 오전에 레지오 단원들을 위한 미사를 지내고 주회를 갖는 날이다. 이 글을 거의 마쳐가고 있는 지금 어머니는 역시 4주 만에 레지오 미사와 회합에 참석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계신다. 이 글을 웹상에 올리고 나면 곧바로 어머니를 성당에 모셔다 드릴 참이다.

멕시코에서 큰아드님 신부님과 생활하시던 우리 성당 주임 신부님의 어머님께서 설을 맞아 일시 귀국을 하시고 지금 우리 성당 사제관에 머무신다고 한다. 신부님 어머님의 방문 소식을 들으신 어머니는 그래서 더욱 성당에 가시려고 한다. 어머니는 오늘 성당에서 신부님의 어머님을 처음 만나는 기쁨도 얻으실 것이다.  


 2007-02-22 11:34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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