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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80대 노인이 20대 청년에게 지혜 하나를 배우다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22 조회수530 추천수5 반대(0) 신고

     80대 노인이 20대 청년에게 지혜 하나를 배우다

     





▲ 지난해 10월 13일, 초등학교 3학년 손녀 규빈이로부터 83회 생신 축하 꽃다발을 받으시는 어머니.  
ⓒ 지요하

어제(21일) 우리 집의 아침 식탁에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었다. 어머니의 얘기를 들으며 가족 모두 재미있게 웃을 수 있었다.

지난달 26일 아파트 현관 로비에서 낙상(落傷)을 하신 탓에 올해 연세 84세이신 어머니는 요즘도 한의원을 다니신다. 처음 한동안은 매일 다니셨는데, 얼마 전부터는 하루걸러 다니신다.

우리 집에서 한의원까지는 내 걸음으로 6∼7분, 어머니 걸음으로는 10분 정도의 거리다. 일단 내 차로 모셔다 드린 다음 40분 정도 걸리는 치료가 끝나면(앞에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이 많으면 더 오래 걸리고), 한의원의 전화를 받고 다시 가서 모시고 오곤 한다.

그런데 설 연휴가 끝난 지난 20일에는 내가 집에 없었다. 올해 대학 2학년이 되는 딸아이가 기숙사 생활을 하지 않게 되어서, 서울에서 사시는 처형이 남는 방 하나를 주겠다고 해서 미리 방을 보러 서울을 갔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몸도 많이 좋아졌고, 날씨도 살갑고 포근하니 얼마든지 운동 삼아서 걸어가고 걸어올 수 있다며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며 어머니는 '운동'의 필요성도 강조하셨다.

어머니는 그날 오후 걸어서 한의원을 가셨다. 중간에 한번 잠시 앉아 쉬시고 무난히 걸어가셨다고 했다. 그런데 치료를 받고 나니 온몸이 땀에 젖은 상태가 되었고, 밖에 나오니 추위가 느껴져서 걸어갈 자신이 생기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택시를 타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한의원은 버스터미널의 대합실을 끼고 있는 건물 안에 있었고, 그 건물 바로 앞에는 택시 주차장이 있었다. 어머니는 택시 주차장으로 가서 쭉 대기하고 있는 여러 대의 택시들 중 '당연히' 맨 앞의 택시로 가서 차문을 열었다.

여러 명 택시 기사들과 함께 바둑판인가 장기판인가를 구경하던 젊은 택시 기사가 발딱 일어서더니 민첩한 동작으로 택시 운전석에 오르며 호쾌한 소리로 "감사합니다, 할머니. 어디로 모실까요?"라고 인사를 했다.

어머니는 인사성 밝고 붙임성 있어 보이는 젊은 택시 기사에게 호감을 느끼며 "진흥아파트로 가 줘요"라고 했다. 그러자 택시 기사는 갑자기 한숨을 푹 내쉬더니, "아이구나, 지가 손님 하나를 잡을라구 40분을 기다렸는디, 40분을 기다려갖구 갱신히 모시게 된 손님이 겨우 2천원짜리 손님이니, 이 노릇을 워떡헌대유"라면서 또 한숨을 쉬는 것이었다.

"아니, 뭔 소리여? 2천원짜리 손님이라니?"
"진흥아파트는 시내라서 2천원 규정 요금이예유. 2천원밲이 뭇 받거든요. 그러니께 할머니는 2천원짜리 손님이지유."
"그래두 워쩐디야. 이왕 이렇게 탔으니께 날 데려다 줘야지."
"그럼유, 당연히 모셔다 드리야지유."

그리고 택시 기사는 차를 움직였다. 차를 몰면서 택시 기사는 어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할머니는 워디, 몸이 편찮으신 감유? 여기서 진흥 아파트는 몇 발짝밲이 안되는디, 택시를 타시게유."
"아파트 현관 엘리베이터 앞이서 낙상을 헤가지구 벌써 한 달 가까이 한의원을 댕겨. 그동안은 아들이 태워오구 태워가구 혔는디, 오늘은 아들이 집에 읎어갖구 이렇게 택시 덕을 보는 겨."
"그러시구먼유. 워쩌다가 낙상을 허셨대유? 그만허기 다행이시네유."
"다행이나마나 말년에 몸 아픈 고생이다가 맨날 이렇게 돈 들이구 사니, 내 팔자두 좋은 팔자는 아니지, 뭐."
"에이, 그런 말씀 마세유, 할머니. 팔자루 말하면 지가 더 딱허지유. 저는 워떻게 된 팔자길래 이렇게 택시 기사를 허며 산대유. 40분을 기다려 갖구 겨우 2천원짜리 손님을 모시니, 지 팔자가 더 우습지 않겄슈?"

"우습긴 헌디, 팔자타령 허는 그 말이 더 우습네. 그러나저러나 그 말을 들으니께 내가 이응 미안헤져서 안 되겄어. 이따 내가 3천원을 줄께."
"에이, 그런 말씀 마세유, 할머니. 지가 워떻게 2천원 거리를 모셔다 드리구 3천원을 받는대유. 지금은 2천원짜리 손님을 모셨지먼 이따가는 2만원짜리 손님을 모시게 될지두 물르니께유, 할머니가 미안허게 생각허실 필요는 읎슈."
"그래두 내가 뭔가를 잘못헌 거 같구, 이응 맴이 불편헌디…."

"정 그러시면유, 할머니. 다음부터는 택시를 타실 때유, 맨 앞에 있는 차를 타지 마시구, 맨 뒤에 있는 차를 타세유. 맨 뒤차를 타시구 진흥아파트 가자구 허면 기사가 좋아헐 거유. 얼릉 잽싸게 2천원 벌구 와서 대기허는 택시들 뒤에 다시 붙을 수가 있으니께유. 그럼 손님이나 택시 기사나, 누이 좋구 매부 좋은 거 아니래유?"
"오, 그렇구먼. 오늘 내가 좋은 걸 하나 알었네. 내가 팔십두 흠씬 넘은 나이를 먹도록 여태 그걸 물르구 살었는디, 오늘에서야 그걸 알었어. 다음부터는 또 택시를 타게 될거들랑 꼭 그렇게 헐 티어. 사람은 늙어 죽을 때까지 배우며 산다는 말이 꼭 맞어. 오늘 내가 새파랗게 젊은 사람헌티서 좋은 걸 하나 배운 심이여."

그러는 사이에 택시는 진흥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103동의 가운데 현관 앞에 멈춘 택시에서 내리며 어머니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택시 기사는 동작 빠르게 먼저 내린 다음 뒤로 돌아와서 차문을 열어주기까지 했다.

"내가 오늘 젊은 기사 양반헌티 미안두 허구, 좋은 것두 하나 배우구 헤서, 2천원 거리를 왔지먼 3천원을 줄 테니께 아무 말 말구 받어유."

그리고 어머니가 3천원을 내밀자 택시 기사는 손을 저으며 2천원만 받았다고 한다.

"안돼유, 할머니. 아까두 말헸지먼, 지가 워떻게 2천원 거리를 모시구 와서 3천원을 받아간대유. 더구나 젊은 눔이 노인네헌티서 그럴 수는 읎는 벱유. 그러니께 조금두 미안허게 생각지 마시구, 얼릉 들어가세유."

택시 기사는 끝내 천원 한 장을 더 받지 않고 2천원만 받아 넣고 재빨리 택시에 올랐다. 그리고 고갯짓으로 인사를 하며 떠나갔다. 어머니는 택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고 하셨다.

"내가 어제 그런 사람을 다 보았다니께. 나이 서른이 안되어 보이는 젊으나 젊은 사람인디 워쩌면 그렇게 싹싹허구 구수허게 말두 잘허구 정스러운지 물러."

어머니는 그 젊은 택시 기사 덕분에 미안한 마음 가운데서도 계속적으로 기분이 좋으신 것 같았다. 어머니는 그 젊은 택시 기사에게서 들은 얘기 한 가지를 한 번 더 되새겼다.

"증말루 그 사람헌티서 좋은 거 하나 배웠어. 앞으로 또 택시를 타게 되면, 그때는 꼭 맨 뒤에 있는 택시를 탈 겨. 80대 노인이 20대 젊은 사람헌티서 좋은 지혜를 하나 배운 심이여."

"덕분에 저두 그동안 몰랐던 거 하나를 알게 되었네요. 증말 좋은 정보예요."

내가 어머니께 동감을 표시하니 아내도, 딸아이와 아들 녀석도 맞장구를 쳤다. 낙상을 하신 어머니의 몸 상태도 많이 좋아지셨겠다, 우리 가족은 아침 식사 자리를 좀 더 즐겁게 만들 수 있었다. 작고 소박한 화제 하나로….  


 2007-02-22 14:58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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