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23 조회수714 추천수9 반대(0) 신고
2007년 2월 23일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Why do we and the Pharisees fast much,
but your disciples do not fast?”
(Mt.9,14)
제1독서 이사야 58,1-9ㄴ
복음 마태오 9,14-15
 
이번 사순시기에 스스로 결심한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그런 결심을 하자마자 그 결심을 지키지 못할 유혹들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하긴 지난 재의 수요일에도 그랬지요. 단식과 금육을 해야 하는 날인데, 그날따라 왜 이렇게 배가 고프고 또한 고기 먹을 일이 생기던 지요. 생각해보니 유혹은 우리들 곁에서 결심을 잘 지킬 수 없도록 항상 우리를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도 생긴 것이 아닐까요?

사실 유혹을 이기는 것만큼 기분 좋은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유혹을 이기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저는 요즘 새벽에 수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수영장 가기가 정말로 싫습니다. 우선 추운 새벽에 차가운 물속에 들어간다는 것이 싫습니다. 또한 새벽부터 힘들게 수영하는 것도 반갑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이미 돈을 지불했으니 어떻게 합니까? 그냥 가야지요. 수영장으로 가면서 이러한 다짐을 합니다.

‘다음 달에는 절대로 안 한다. 이렇게 힘든 운동을 왜 하는 거야? 그냥 자전거나 열심히 타자.’

그런데 그 유혹을 이기고 수영장에서 아침 운동을 하고 나면, 기분이 너무나 좋아집니다. 그리고는 이러한 마음이 생기지요.

‘이렇게 상쾌한데, 한 달만 더 해볼까?’

화장실도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하지요? 마찬가지로 저에게는 수영장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기분이 이렇게 다르더군요. 그런데 유혹을 이기기 전과 이긴 후의 기분도 이런 것이 아닐까요?

오늘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질문을 던집니다.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을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자기 죄의 회개를 위해서, 그리고 이로써 메시아이신 구세주를 준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올바른 행동이었습니다. 희생과 극기를 통해서 오실 분을 준비하는 것. 그러나 그들은 유혹에 빠졌습니다. 즉,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음식을 먹지 않아서 쇠약하게 되면서까지 회개와 기다림의 표시로 단식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하느님은 우리의 삶 안에서 흥을 깨는 분이고, 힘든 일만 부과하는 분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떠하셨습니까? 가난한 사람들과 먹을 것을 함께 나누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잔치를 벌이시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바로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사랑의 실천을 더욱 더 원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당신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만일 단식과 금육을 하면서도 굶주리는 이웃을 모른 체 하고 가진 것을 움켜쥐고 나누지 않으려고 한다면, 우리들 역시 하느님을 잘못 이해하는 유혹에 빠진 것입니다. 그 유혹을 극복하고, 사랑의 실천을 제대로 했을 때의 마음은 과연 어떠할까요? 하늘을 날듯이 기쁠 것입니다.


아침 운동을 해보세요. 기분이 끝내줘요~~~



사랑은 인생의 흐뭇한 향기 ('좋은 글' 중에서)

사랑은 인생의 흐뭇한 향기이자 우리의 인생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인생의 따뜻한 햇볕입니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이웃간에 흐뭇하고
아름다운 정을 나누고 삽니다.
그 고운 정속에는 아름다운 사랑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을 희망과
용기와 기대를 가지고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정의 아름다움과
흐뭇함이 있기 때문에 괴로운 인생도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하여
따뜻한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의 주체가 되어
누구를 사랑하는 동시에 내가 사랑의 객체가 되어
누구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사랑할 사람도 없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도
없을 때 나의 존재와 생활은 무의미와 무가치로
전락하고 맙니다.

사랑이 없는 인생은 풀 한포기 없는
사막과 같고 샘물이 말라버린 샘터와 같습니다.
생에 빛을 주고, 향기를 주고, 기쁨을 주고,
서로 믿기 때문에 같이 잘 살 수 있고 같이 일할 수
있고 같이 친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 협동, 화목, 대화, 희생,
봉사등 인간의 아름다운 덕이 모두 다 믿음과 신의의
토대 위에서 비로소 가능합니다.

신의와 믿음의 질서가 무너질 때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맙니다.
사랑과 믿음 그리고 행복은 하나의 가치임과 동시에 삶의
기초입니다.

사랑과 믿음과 창조의 토대 위에 행복의 탑을 쌓고
즐거운 생활의 요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우리일때 인생은 아름다워 집니다.
 
 
“Can the wedding guests mourn
as long as the bridegroom is with them?
The days will come when the bridegroom is taken away from them,
and then they will fast.”
(Mt.9,15)
 
 True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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