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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직도 못다 갚은 빚 . . . . . . . [천신기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23 조회수760 추천수10 반대(0) 신고

 

 

 

 

 

어느 날,

급한 일로 교구청을 다녀서 늦게 본당에 돌아오니

회장님 말씀이 종부가 났다고 했다.

 

한 사십 리 되는 곳에 사는 교우인데

오래 전부터 폐결핵을 앓아 왔다고 한다.

 

이곳 본당에 부임한 지 아직 한 달도 안되었으니

아직 관내 실정을 다 파악하지 못했고 지리도 잘 모른지라

그 곳이 어디쯤인지 짐작이 안 갔다.

 

차편을 물어보니 버스로 한 시간 거리이며

버스는 매일 오전, 오후 한 번씩 운행하는데,

오늘 오후 버스는 이미 떠났다고 한다.

그러니 천상 내일 아침 버스편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환자는 아직 젊고 병도 오래 앓고 있으니

설마 그리 쉽게 죽겠느냐는 회장님의 설명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교구청에 다녀오느라 아침 일찍 집을 떠나

왕복 6시간을 버스에 시달렸더니 몹씨 피곤하기도 하여

회장님의 말씀대로 내일 아침으로 미루었다.

 

다음 날 회장님과 함께 버스를 탔다.

협곡을 굽이쳐 흐르는 강 줄기를 타고 산허리를 깎아낸 길은 좁기도

하려니와 온통 돌투성이 길이라 차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달구지를 타고 가는 기분이 들었다.

 

한 시간도 넘게 걸려 그 곳에 도착하니 길가에 집이 3 채뿐이다.

산판에서 벌목한 나무를 운반하는 트럭 운전사들이 쉬어가는 주막집인

것 같았다.

회장님은 산 쪽으로 한 20분쯤 걸어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늦가을 서늘한 날씨인데도 숨이 턱에 차고

등줄기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종부성사를 받아야 하는 환자를 생각하니 쉴 틈이 없었다.

 

한참만에야 좀 경사진 넓다란 밭이 나타나고 오두막집 한 채가 서있다.

아니, 이런 외딴 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니...

절간이나 암자의 수도승도 아닌데 외로워 어찌 살았을까?

 

가진 것 없으니 빼앗길 걱정이야 없었겠지만

험준한 산줄기이니 때로는 사나운 산 짐승도 나타날 것 아닌가...

담도 울타리도 없는 집 가까이 가보니 말이 초가집이지

초라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밖에서 인기척이 나니 삼십 대로 보이는 그의 아내가 아기를 등에 업고

밖으로 나왔다.

눈이 붉게 충혈된 것을 보니 많이 울었나보다.

 

나를 보자 본당신부라는 것을 알아차린 그녀는

왜 이제야 왔느냐는 원망의 기색도 없이 공손히 인사를 하며

남편은 오늘 새벽에 운명하였다고 했다.

 

아뿔싸!

내가 잘못했구나.

이럴 줄 알았다면 아무리 밤중이라도 요금이야 얼마를 달라든지

택시를 타고라도 왔어야 할 것을.

이를 어쩌나...

죽으면서 얼마나 신부 오기를 기다렸을까...

기다리다 끝내 오지 않는 신부를 원망하며 죽은 것은 아닐까?

 

그이 아내는 울먹이는 소리로

남편이 운명 직전에 신부님을 그렇게도 찾았다고 말했다.

가슴이 미어지는 듯 마음이 무겁게 짓눌러 왔다.

그녀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주님, 용서하소서.

 저에게 맡겨진 한 영혼을 돌보지 못한 저의 잘못을 용서 하소서!"

 

서품 후 보좌신부 생활도 변변히 못해 보고 군종으로 입대하여

꽤 오랜 세월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제대 후 처음 맡은 본당인데,

이렇게 한 임종자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고통을 주게 되다니...

 

부임하던 날,

감실 앞에서 본당신부가 된 감격으로

맡겨진 양 떼를 열심히 돌보겠다고 주님께 굳게 다짐하지 않았던가?

그 다짐이 초장부터 산산조각 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종부성사는 못 주었지만 연도나마 드릴려고

회장님과 낮은 문을 허리를 구부리고 방에 들어갔다.

방이라야 손바닥만하고, 바닥은 멍석 같은 것으로 깔려있었고,

시신은 방 웃목에 홋 이불 자락도 없이 가마니로 덮여 있었다.

 

이 세상 마지막 떠나는 길,

수의 한 벌 못 입혀 보내는 가난한 형편이었다.

이런 처지에 치료나 제대로 받았겠으며 약 한첩 써보았겠는가...

 

연도를 바치는데 가엾은 생각에 자꾸만 목이 메었다.

상가집인데도 외딴 곳이니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친척도 없습니까?"

 

"형님이 여기서 한 십여 리 떨어진 곳에서 사시고 있긴 하지만...,"

 

"그럼 연락은 했습니까?"

 

"집을 비울 수가 없어서 어찌해야 할지 망설이던 참이예요."

 

"그럼, 우리가 지켜 드릴테니 얼른 다녀오세요."

 

그녀는 몹씨 반가워하면서도 신부님께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미안해 하며 주저했다.

길이 멀다는 핑계로 자기 남편에게 종부도 주지 못한 게으른 신부를

끔찍이도 존경하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미안한 것은 내 편이었다.

 

부인을 보낸 뒤,

방 안을 둘러보니 조그마한 괴짝 두 개와 낡은 이부자리,

그리고 추수한 밭 곡식 몇 가마니뿐...

눈도 많고 추위도 모질다는 이 곳에서 겨울을 어떻게 지내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살이였다.

 

나 자신이 그의 시신 앞에 앉아있기가 부끄러워졌다.

아무리 부임한 지 얼마 안 된다고 핑계를 대보지만 내 본당 신자가

이런 오지에서 고통 가운데 살고 있는데도 여태껏 모르고 있었다니,

나도 [새벽종]과 같은 공범자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라.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마태오 6,31-32)

 

이 사람이야말로 이 말씀을 믿고 산 사람이 아닐까?

죄란 많이 배운 사람, 많이 가진 사람이 짓는 것이지 배우지도 못하고

가진 것도 없는 이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겠는가.

더구나 임종 때,

그렇게 간절히 신부를 찾았다니 상등통회는 있었을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종부성사를 못 받았어도 천국으로 갔을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나의 죄책감을 합리화시키려고 애를 썼다.

몇 시간을 기다리다보니 그의 아내와 형님이 도착했다.

찾아 올 사람도 없으니 격식차릴 필요없이 당장 장사를 지내자는데

합의를 했다.

 

몸부림치며 통곡하는 그이 아내를 달래 가며

수의도 못입히고 관도 없는 그의 시신을

경사진 화전 맨 꼭대기 양지바른 곳에 고이 묻었다.

그의 형님도 회장님도 나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 . . .

 

이 날 이후 오늘까지

비교적 교통이 편리한 본당에서 사목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종부라는 말만 들으면 하던 일 다 제쳐놓고 어디든지 달려가게 된다.

 

아마도 그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한다는 잠재의식 때문이리라...

그에게 진 빚은 죽을 때까지 갚아도 못 다 갚을 것만 같다.

 

 

                                                                                      얘야,

             너는 살아 있을 동안에 온갖 복을 다 누렸지만

                     라자로는 불행이란 불행은

                         다 겪지 않았느냐?

              그래서 지금 그는 여기에서 위안을 받고 있다

 

 

 

- [치마입은 남자의 행복]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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