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24 조회수700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7년 2월 24일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Those who are healthy do not need a physician, but the sick do.
I have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to repentance but sinners.”
(Lk.5.31-32)
 
제1독서 이사야 58,9ㄷ-14
복음 루카 5,27-32
 
어떤 그룹의 회장님이 사원들에게 새 비전을 선언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회장님께서는 개그맨 이경규씨의 얼굴이 그려진 가면을 쓰고 나타났다고 합니다. 항상 근엄한 모습만을 보았던 사원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지요. 이렇게 놀라워하는 사원들에게 회장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이경규 가면을 쓴다고 이경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의 미션과 비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만들어 놓고 벽을 장식한다고 해서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에 새기고 복습하고 실천할 때 비로소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 회장의 행동과 말을 통해서, 우리 신앙인들도 이렇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즉, 우리 역시 단순히 예수님 가면을 쓴다고 해서 예수님이 되는 것이 아니지요.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우리의 가슴에 새기고 실천해 나갈 때, 예수님처럼 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단순히 예수님의 가면만 쓰고서는 예수님처럼 산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난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렇지요. 우리들은 실제로 가면을 쓰고 다니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성당에 나왔을 때에만 신앙인답게 생활하고, 세상 안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살아간다면 그것은 가면 쓴 것이 아닐까요? 사람들 앞에서만 예수님처럼 거룩한 척 하고, 속으로는 다른 생각만 하고 있다면 이것 역시 가면 쓴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면을 쓰고서는 그것으로 모든 의무를 다했다는 듯이 생각합니다. 이는 현재의 사람들만 그랬던 것이 아니지요. 과거의 이스라엘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들을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가면을 쓰고 있지 않은, 즉 스스로를 죄인으로 생각하면서 하느님 앞에서 겸손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사람들을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분명히 나오지요. 레위라는 세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세금을 받아다가 당시의 지배자인 로마인들에게 갖다 바치는 역할을, 어떻게 보면 매국노의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입니다. 따라서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았던 것은 너무나 당연했지요. 사람들은 이렇게 동족들을 배신하고 적국에게 충성을 다하는 레위가 큰 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위선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주님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레위가 주님의 선택을 받게 된다는 것을 성서는 말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가면만을 쓰고서 생활하는 모습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의 모습을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내가 예수님의 가면을 쓰고 있다면 정말로 예수님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제일 싫어하는 위선을 가면 속에 숨기고서 살아가는 모습은 이제는 벗어던져야 합니다. 그때 우리들은 영원한 생명이 보장되는 하느님 나라에 더욱 더 가까이 가게 될 것입니다.




겉으로만 거룩한 척 하지 맙시다.



내가 머문 자리는 아름답게('마음의 등불' 중에서)

새가 나무 가지에 잠시 앉았다가 날아간 다음에는 그 나뭇가지는 한동안 흔들리며 날아간 새를 한동안 기억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이와 같이 저마다 지나간 자리에는 남기고 간 흔적들이 남게 됩니다.

세월이 지나간 자리에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을 남기고, 봄이 지나간 자리에는 새로운 열매가 맺기 시작하고, 가을이 지나간 자리에는 알차고 풍성한 열매가 남게 됩니다.

또 역사가 지나간 자리에는 인물과 유적이 남아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은 위인으로 남고, 부정한 일을 한 사람은 악인으로 남게 되듯이 이렇듯 인간이 지나간 자리에도 분명한 자취가 남게 마련입니다.

여러분께서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과연 어떤 모습으로 어떤 흔적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나려 하십니까?

모든 자취의 흔적들은 정직하고 진실한 기록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서 때로는 자랑스런 모습으로 때로는 역겨운 모습으로 남게 됩니다.

위대한 작곡가는 오선지에 아름다운 명곡을 남기고, 철학가는 인생의 의미를 남기고, 성인은 사랑과 자비와 은혜를 또 위대한 스승은 훌륭한 제자를 남기고, 훌륭한 부모는 자녀들을 가정에 사회에 국가에 인류에 든든한 대들보로 길러낼 때. 그들은 죽어간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 숨쉬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잠시 왔다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존재가 결코 아닙니다. 모름지기 만물의 영장으로서 나는 과연 어떤 자취를 남겨 왔고, 어떤 자취를 남기고 있으며, 어떤 자취를 남길 것인가 조용히 눈을 감고 깊이 고찰해 봅시다.

내가 가지고 떠날 것은 많은 재산도 아니요 빈손도 아니요 이승에서 내가 지은 죄와 복의 단 두 가지만 가지고 떠나나니 많은 재산을 자손들에 물려주는 것보다 거룩하고 훌륭한 흔적을 자손들에게 물려주고 떠나는 아름다운 인간이 됩시다.

 

Jesus saw a tax collector named Levi sitting at the customs post.
He said to him, “Follow me.”
And leaving everything behind, he got up and followed him.
(Lk.5.27-28)

 

 

Now And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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