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광야에서 바라다 본 하늘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25 조회수668 추천수10 반대(0) 신고


복음: 루카 4,1-13 하늘이 노랗던 날이다. 온 세상이 돈으로 보이던 그 날. 우리 집을 산 여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가 받았던 융자금을 그대로 넘겨받으려고 했지만 이자가 비싸서 자기네가 따로 융자를 받기로 했단다. 우리가 내는 이자는 얼마이고, 그쪽은 얼마로 받으려는 지를 알아보려고 몇 마디 묻다가 세상에 믿기지 않는 소리를 주워듣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액수의 두 배도 넘는 돈을 우리가 융자받았다는 것이다. ‘뭐가 잘못되었겠지.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러나 그녀가 옳았고, 나만 여태 모르고 있었던 거다. 다리가 떨리고 브레이크가 밟아지지 않아 길가로 차를 세워두고 한참 그대로 있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벌써 새로 살 집을 계약하고 났으니, 그 차액을 어떻게 마련할까? 가슴이 쿵쿵~ 내려앉고, 하늘은 노랗게 변했다. .............. 사십일 동안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않아 온 세상의 돌이 다 빵으로 보였을 예수님처럼 나도 온 세상에 널려있는 것이 다 돈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 돈은 나와 무관한 것들이었을 뿐. 예수님은 악마의 유혹에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단호히 거절하셨으나 그때, 만일 악마가 나에게 돌을 돈으로 만들어주겠다 하면 두말 않고 선뜻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줄 알고 주님은 내게 악마를 보내지 않으시고 친정어머니의 비상금을 풀게 하셨다. ............... 하늘이 까맣던 순간이다. 15층 베란다에서 까마득한 아래층을 내려다보며 천사가 받혀줄지도 모른다는 만화를 꿈꾸던 잠시 동안. 한 톨의 여분도 없이 탈탈 털어 계산을 짜맞추고 잔금을 받으러 부동산 중개소로 내려갔다. 생각지도 못한 차질이 거기서도 생겼다. 융자금 외에 또 신용대출 한 건도 있었단다. 이거 떼고, 저거 떼고.... 이것의 수수료, 저것의 수수료...하며 명세서를 들이민다. 팔이 떨리고, 가슴이 떨리고, 대답할 기운도 없어 가져갈 거 다 가져가고, 거기 한쪽에 써놓으라고 했다. 받는 그대로 고스란히 새 집으로 들고 가야할 돈다발에서 다 제하고 난 후, 나머지를 들고 길로 나왔다. 눈앞에는 이삿짐을 거의 다 차에 싣고 마지막 탑 사다리마저 접고 있는 인부들이 보였다. 도망갈 곳도 없었고, 이 작은 몸, 숨길 데도 없었다. 우선은 주차장에 놓인 차 속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하지? 어디로 가지?” 눈앞은 점점 더 깜깜하고, 머리 속은 점점 더 하얘졌다. .................... 한참을 울다가 한 사람의 이름이 생각났다. 어젯밤, “혹시 돈 모자라지 않냐?”고 물어봐주던 자매. 집을 사고 팔고 할 때의 복잡한 과정들, 그런 일엔 문외한인 나에게 세심하게 조언을 해주고는, 가끔씩 “이사는 잘 진행되어가냐?”는 안부를 묻곤 하던 자매다. “우리 집에 들어올 사람들이 융자를 못받아서 애쓰는가 보더라”고 스쳐가는 말을 한 것이 일주일 전이었다. 그날, 내 손을 꼭 잡고 밖으로 나오더니, 만일 무슨 일이 있으면 자기에게 말해달라고 하였다. 말만 들어도 천군만마를 얻은 듯 고마웠는데 이사 전날 밤에 잊지 않고 다시 확인 차 전화를 걸어주었다. 다행히 신세를 지지는 않아도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면서도 너무나 고마워 감격했었다.
그.런.데.
..............

“왜? 들어오는 사람이 돈을 못해가지고 왔어요?”
“아니, 내 계산착오가 있었어요.”

자매는 더 이상 묻지도 않고 통장에 송금을 해주었다.
그리고 이삿짐을 풀고 나서도, 여러 날이 지나서도,
자꾸 만나자는 나에게 
“더 있다 하세요. 더 있다 천천히 하세요.” 라는 소리만 했다.

천천히 하자는 그 한 달 동안, 
정말 나는 마음을 가라앉힐 여유를 갖게 되었고,  
빌린 돈을 갚을 방도를 마련하게 되었다.

또한 그동안 이야기도 못하고 끙끙대고 있었던 
남편의 사정도 듣게 되었고
과거보다는 앞으로의 일에 온 가족이 힘을 모으고 
지혜를 모으는 단합된 모습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노랗던 하늘이, 까맣던 하늘이 다시 쾌청해지던 날이었다.
.................


예수님은 밑으로 몸을 던져 보라는 악마의 유혹에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하신 말씀이 성경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지만,

나는 일생에 처음 겪는 그 엄청난 격랑 속에서
머리가 하얘진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하느님을 시험하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가슴에 
일생 빠지지 않을 대못을 박을 뻔한 아찔한 생각을 했다.

아니, 그럴 줄 알고, 그분께서는 악마를 보내지 않고, 미리 미리 인간 천사들을 보내어 
추락하는 나를 사방에서 떠받치고 보호하였는지도 모른다.

..............

그러니 이렇게 용의주도한 하느님, 그분을 두고
누구를 따로 섬기려하겠는가?

돈일까?
명예일까?
권력일까?

하느님 없이 단 하루도,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으니
어찌 그분을 떠날 생각을 할까?
어찌 그런 분을 놓아두고 두 마음을 품을까?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Beetoven Moonlight sonata o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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