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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들 딸 낳아보지 못한 죄 . . . . . [김병엽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26 조회수780 추천수9 반대(0) 신고

 

 

 

 

 

전화 연락이 있은 뒤,

한참 지난 후의 일이다.

안색이 좋지 않게 보이는 그 교우는 만나자마자 부끄럽다는 말부터...

 

사연인즉,

몇 달 전에 이곳을 다녀 간 처녀의 부모였고

그 처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이다.

 

시집도 안 간 처녀의 몸으로 군에 있는 청년과의 사이에서였다.

그러면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아이를 가졌으니 결혼을 서둘러야겠다는

나의 말에 그들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자식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은 청년의 부모를 만나 상의했지만

결혼이라는 말에 펄쩍 뛰더라는 것이다.

그 청년은 위로 결혼하지 않은 형이 둘이나 있고,

당장 결혼시킬 조건이 되지 않기에 어쩔수가 없다고 한단다.

 

예나 지금이나 결혼하지 않은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가졌다는 것은

비난의 대상이며 그 수근거림을 이겨 내기에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리고 자칫하면 처녀의 장래도 만신창이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있기에

부모로서의 그 불안과 걱정을 이루 다 표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얘기를 듣고 보니 막막할 뿐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제안한 것은 어쩔 수 없이 [미혼모의 집]이었다.

그 부부는 나의 제안을 듣고 깜짝 놀라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고, 신부님, 그러면 쓰겠습니까?

 그건 말도 안돼요. 그러면 딸년의 신세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평생을..., "

 

그러면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불도저식으로 밀어 그집으로 쳐들어가 애를 낳을 수밖에 없잖은가.

결국 그들이 조심스럽게 내놓은 방안은 임신중절이었다.

 

"안돼! 그건 살인이야!"

 

나도 모르게 내 목소리는 평상시의 옥타브를 뛰어 넘는 고음이 되었다.

배 안에 있는 아기는 분명 생명일진대,

그 귀한 생명은 아무도 해칠 권한이 없다.

더구나 햇볕조차 보지 못한 인간은 빛을 본 사람보다 더 세상에 살 권리가

있는 것인데...,

 

교회는 그 동안 인간 생명의 고귀함과 그 존엄성을 일깨우기 위하여

이를 해치는 모든 행위를 규탄하지 않았던가!

낙태는 인간 생명의 근본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

재삼 확인하여 오지 않았던가!

 

우리 사이엔 오랜 침묵이 흐를 수 밖에 없었다.

그건 사제인 나와 자식의 장래를 걱정하는 부모 사이의 침묵이라기보다는

완전을 추구하는 교회법과 부족한 인간 사이의 확연한 거리였던 것이다.

 

"신부님, 그렇다면 입장을 한번 바꿔 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신부님께서 제 꼴이 되었다면 결혼도 안 한 딸이 미혼모 집이라는

 데에 가서 아이를 낳고 평생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아도

 좋겠습니까?"

 

그래,

아들딸 낳아 보지 못한 나!

얼마나 그들(자식)이 소중한지를 육정으로 체험해 보지 못한 내가...

과연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눌 자격이 있는 것인가?

잠시 침묵이 흐르는 사이...

내 머리는 온통 복잡한 상념으로 뒤엉켜 있었다.

 

자식 사랑이란 것이 무엇인가?

부모란 무엇인가?

그래도 인간 생명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아닌가!

 

초로의 부부는 힘없이 일어나 아무 말도 없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사제관을 떠났다.

 

며칠 후,

시외전화가 걸려 왔다.

누구시냐고 물어 볼 틈도 주지않고 울먹이며 말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신부님, 대죄인입니다.

 저는 지옥에나 가야 마땅하겠지요."

 

더 이상 말 붙일 여유도 없이 전화는 딸깍 하고 끊겨져 버렸다.

나는 닭 쫓던 개모양 멀거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

교회와 역대 교황의 가르침도 자녀에 대한 부모의 애정 앞에서는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인가!

 

세상에는 이보다 더 절절한 사연이 많다.

근친상간에 의해 어이없이 임신하게 된 어린 소녀,

폭력에 의해 윤간당하고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임산부...

 

그들에게

난...

또 뭐라고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 [치마입은 남자의 행복]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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