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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왜 그런 마음을 갖고 살까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26 조회수624 추천수5 반대(0) 신고

                나는 왜 그런 마음을 갖고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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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기 운동을 하며 거의 매일 찾는 '장명수'는 태안 읍내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다. 시오리 지점인 해변에서 북쪽을 보면 백화산이 훤히 보이고, 내가 사는 진흥아파트도 보인다.  
ⓒ 지요하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온 지도 1년이 넘었다(지난해 1월 15일 이주). 고장의 명산 백화산 기슭 동네에서 시내 너머 반대쪽 끄트머리쯤의 새 아파트로 이사를 온 후로는 백화산 등산 대신 주로 들길과 해변길 걷기 운동을 한다.

지난 1년 동안 참으로 많은 길을 걸었다. 고장(충남 태안읍)의 모든 길을 걸어보았다. 이제는 처음 걷는 길에 대한 호기심을 안고 걸어볼 수 있는 길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고장에서 살면서 이제야 우리 고을의 모든 길을 걸어보았다는 일종의 다행스러움과 자부심도 지닐 수 있게 된 성싶다.

호기심뿐만 아니라 일종의 의무감마저 지닌 채 고장의 모든 길을 걸어본 다음부터는 천수만 들판길과 장명수 해변길을 번갈아 걷다가 요즘엔 주로 장명수 길을 걷는다. 이쪽 길을 걸으면 저쪽 길이 궁금해지고, 저쪽 길을 걸으면 이쪽 길에게 미안해지는 이상한 마음, 모호한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이제는 거의 장명수 길로 정착이 되었다.

'장명수(長命水)'는 태안 읍내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의 이름이다. 근흥면 안기리와 두야리, 남면의 진산리를 양편에 거느리고 태안읍 남산리로 깊숙이 파고 들어온 마치 호수 같은 모양의 아늑하고도 평화로운 바다다.

태안군청 바로 옆의 내 사는 아파트에서 5분 정도 산길을 걷고, 옛날에는 장명수 바닷물이 들어왔었던 아늑하고 호젓한 남산리 들길을 30분 정도 걸으면 장명수 바다에 닿는다. 거기에서 가끔 왼편으로 방향을 잡아 남면 진산리 해변을 걷기도 하는데, 대개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근흥면 두야리와 안기리 해변을 걷는다.

두야리와 안기리 해변이 훨씬 걷기도 좋고 길의 모양새도 아기자기하다. 5분 정도 제방 길을 걸으면 곧바로 해변으로 내려가서 부드러우면서도 발이 빠지지 않는 모래톱 길과 조약돌 길을 걸을 수 있다. 그 길을 30분 정도 걸으면 까마득하게 보이던 지점에까지 이를 수 있다.


▲ 장명수 해변은 썰물 때는 자동차도 다닐 수 있는 길이 생긴다. 멀리 왼쪽 산모롱이 앞이 내 목표 지점이다.  
ⓒ 지요하

그렇게 나는 남산리 들길과 장명수 해변길을 1시간 정도 걸어갔다가 돌아오니 거의 매일 2시간씩 걷는 셈이다. 이미 두어 번 한 얘기지만, 나는 매일같이 2시간씩 걷는 일이 참으로 즐겁다. 일단은 당뇨와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내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나는 거의 매일같이 2시간씩 걸으며 '산다는' (즉 기도를 한다는) 것이 더없이 행복하다. 왕복 40단 이상의 묵주기도 덕분에 조금도 피로와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매일같이 2시간씩 즐거운 마음으로 걷기 운동을 지속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장명수는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뿍 어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홀로 자주 대합을 캐거나 망둥이 낚시를 하러 다닌 곳이기도 하고, 누이와 함께 아버지를 따라 말미잘을 찾으려고 무려 한 나절이나 갯바닥을 걸었던 전설 같은 풍경이 아련히 얼비쳐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근흥면 두야리 출신이신 선친의 소년 시절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남산리 제방에서 까마득히 보이는 안기리 해변 산모롱이까지 걸어간 다음 잠시 조약돌 위에 앉아서 저녁놀에 취하며(가끔은 집에서 가져간 캔 맥주 하나를 마시며) 상념에 젖어보는 것은, 그리고 돌아오면서 가끔씩 몸을 돌려 뒷걸음을 하며 조금 전에 내가 잠시 머물렀던 지점이 점점 멀어지고 아슴해지는 당연한 현상에 '내가 과연 조금 전에 저곳에 있었나?'하는 모호한 의문에 젖어보는 것은 얼마나 즐겁고도 슬픈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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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명수 바다의 썰물 때의 저녁 풍경이다. 사리 때 물이 차면 호수와 같은 풍경이 더욱 아늑함과 평화로움을 안겨준다.  
ⓒ 지요하

장명수 바다를 갈 때는 거의 매번 호주머니에 건빵이나 전병 따위를 넣는다. 목표 지점 해변에 앉아 잠시 쉴 때 먹기도 하지만, 남산리 들길 초입머리에서 만나게 되는 개들 때문에 과자를 챙기지 않을 수 없다.

장명수 해변을 가려면 세 군데에서 몇 마리씩의 개들을 만나게 된다. 해변 근처에서 두 번 만나게 되는 개들은 줄에 목이 매이거나 작은 닭장 안에 갇혀 사는 개들이 아니다. 그 개들은 자유롭게 움직인다. 그리고 나를 볼 때마다 매번 짖어대곤 한다. 엊그제 강아지였던 놈들도 점점 두 귀가 펴지면서 나를 보고 짖는 때가 있다.

엊그제 강아지였던 놈들에게는 가끔 과자를 주는 때가 있지만, 오래 전부터 매일같이 나를 보면서도 계속 짖어대는 머리 나쁜 놈들에게는 일절 과자를 주지 않는다. 그 우둔한 놈들에게도 나누어 줄만큼 내 호주머니 과자가 넉넉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남산리 들길 초입머리에서 만나는, 자유를 박탈당하고 사는 개들에게는 거의 매번 과자를 준다. 갈 때도 주고 돌아올 때도 준다. 내 승합차 안에는 늘 건빵이나 전병 따위 과자가 있다. 장거리 운전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남산리 들길 초입머리 개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걷기 운동을 하기 위해 차 안에서 운동화를 꺼내 신을 때마다 차 안의 과자도 일부를 덜어 주머니에 넣곤 한다.


▲ 건빵을 받아먹는 어미 개 뒤에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강아지들  
ⓒ 지요하

남산리 초입머리 개들은 원래 두 마리였다. 체구가 작은 놈들인데, 한 놈은 마당에 늘 목이 맨 채로 살고 있고, 한 놈은 비좁은 닭장 안에 갇혀 산다. 닭장 안에 갇혀 사는 놈은 최근 새끼 두 마리를 낳았다. 새끼 두 마리는 점점 자라면서 닭장 안의 개집 밖으로 스스로 나올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으로 그만이다. 그놈들에게는 개집 밖의 닭장 안이 바깥세상인 셈이다.

특히 닭장 안에 갇혀 사는 놈이 처음에는 나를 볼 때마다 유난스레 짖어대었는데 내 과자 선물에 맛을 들인 후로는 나를 반기며 꼬리까지 친다. 며칠 전에 새로 닭장 안으로 들어온 놈이 있는데, 그놈은 현재 나를 볼 때마다 사납게 짖어대지만 점차 내 과자 선물을 접하게 되면 꼬리를 치며 나를 반기게 될 것이다.

나를 볼 때마다 짖어대던 놈들, 거의 매일같이 만나는 놈들과 친해지고 싶은 심정 탓이기도 하겠지만, 노상 목줄에 매여 있거나 비좁은 닭장 안에 갇혀 사는 그놈들의 신세가 가엾고 불쌍해서 더 열심히 과자를 챙기게 되는 것 같다.

더욱이 그놈들이 먹는 밥이란 건 사람들이 먹다 남은 음식 같은 것도 아니다. 작고 동글동글한 알갱이로 되어 있는 사료다. 노상 사료 한 가지만 주는데, 매번 밥그릇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놈들에게는 내가 주는 건빵이나 전병, 이런저런 과자들이 꿈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색다른 음식일 것 같다. 닭장 안에 갇혀 사는 놈은 전병을 받게 되면 닭장 안의 개집 안으로 물고 들어가서 맛있게 먹는다.

대개는 장명수를 갈 때와 올 때 모두 그놈들에게 과자를 주지만, 갈 때만 주는 때도 있고, 깜빡 잊거나 미처 차 안에다 과자를 준비해놓지 못해 그냥 가는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다른 길로 돌아서 간다. 빈손으로 그놈들 앞을 그냥 지나갈 수가 없다. 그냥 지나치면서 그놈들의 실망한 표정을 읽은 후로는, 과자를 지니지 못한 날은 길을 바꾸지 않을 수 없다.


▲ 노상 줄에 매여 사는 개에게는 하루 잠시 나를 만나 과자를 얻어먹는 것이 유일한 낙일 듯...  
ⓒ 지요하


과자를 지니지 못했을 때는 미안한 마음 때문에 길을 바꾸곤 하는 나를 느끼며 공연히 웃음을 짓는 때도 있다. 내가 참 우습다는 생각이 절로 들고, 내가 왜 이런 마음을 지니고 사는지 의아한 마음으로 괜히 한숨을 짓는 때도 있다. 정말 생각할수록 내가 우습고 기이하다(조금은 한심하기도 하다).

<3>

지난 설날에는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음복을 하고, 세배 행사를 갖고, 성당에 가서 '합동위령미사'를 지내고, 제대 앞에 진설했던 음식을 형제자매들과 나누고, 성묘를 하고,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알뜰하고 아기자기하게 설을 쇠었다. 그리고 대전에서 사는 막내 동생 가족을 떠나보낸 다음 오후 3시쯤 우리 가족은 장명수로 함께 걷기 운동을 했다.

설날 오후의 장명수 걷기 운동에는 아내와 딸아이, 그리고 혼자 된 동생이 함께 했다. 동생과 나는 장명수 해변에서 술 한 잔 하기로 하고, 대전 막내 동생이 가져온 청양 구기자술 한 병과 전과 과일을 준비했다.


▲ 닭장 안의 개집을 나온 강아지들. 어린 시절부터 부자유를 체득하는 것 같아 안쓰럽다.  
ⓒ 지요하

그런데 남산리 들길 초입머리로 들어설 즈음에서야 나는 개들에게 줄 과자를 준비하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 그런 나머지 "이 길로 가지 말고 다른 길로 가야겄는디…"하니, 모두를 의문을 표했다. 내가 그 이유를 설명하니 모두들 재미있는지 웃음을 지었다. "그게 뭐 그리 미안한 일이냐"는 말도 누구에게선가 나왔다.

"술 안주헐 전을 좀 나누어줄까?"하니, 아내가 "전을 많이 준비하지 못했어요. 그랬다가 안주가 부족하면 어쩌려구요"라는 말로 걱정을 했다. 그러자 딸아이가 "저는 안 먹을래요"라는 말로 아빠의 뜻에 찬동을 표했다.

"그래도 사람이 먹기도 전에, 사람 먹을라고 준비헌 음식을 어떻게 개헌티 먼저 준다니?"라는 말로 아내가 완곡하게 반대를 표하자 동생이 한마디했다. "그래두 오늘이 설이니께요."

"오늘이 설이니께?"라고 내가 의문을 표하자 동생은 거듭 말했다. "설이니께 개들헌티두 설음식을 좀 나눠줘야지요. 우리 집 개들은 아니지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이니께"라는 동생의 말에 무한히 감동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려. 설이니께…. 좋아. 길을 바꾸지 말자. 오늘이 설이니께 개들헌티두 설음식을 좀 줘야지."

나는 앞장을 섰고, 잠시 후 개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개들은 낯선 사람들의 출현에 몹시 집어대었지만 내가 다가가서 가방 안에서 음식 그릇을 꺼낼 때부터는 태도를 바꾸고 꼬리를 쳤다. 나는 놈들에게 전을 두 개씩 나누어주었다. 놈들은 이게 웬 떡이냐 하는 표정이었다. 닭장 안에 갇혀 사는 놈은 전 하나를 물고 개집 안으로 들어갔다.

닭장 안 개집 안의 두 마리 강아지들에게 관심을 보였던 딸아이가 "쟤들도 설을 쇠는 셈이 되었네요"라는 말을 했다. "그려. 오늘이 설이니께." 나는 좀 전에 동생이 했던 말을 반복하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장명수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데 유난히 발걸음이 가벼운 것 같았다.  


  2007-02-26 10:32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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