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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제 49회. 이 별. ~♠†/ 오기선[요셉]신부님 이야기 /원작 차 엘리사벳....
작성자양춘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26 조회수541 추천수9 반대(0) 신고

 

 

 

†♠~ 제 49회. 이  별. ~♠†/ 오기선[요셉]신부님 이야기 /원작 차 엘리사벳....   


위가 일찍 찾아와서인지

유월 초여름인데도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힙니다.     

요셉 신부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주일미사 강론 시간에 교우들에게 말했습니다.

“교구에서 이 못난 신부를 서울 대방동성당으로 가라고 발령을 냈습니다.”

요셉 신부의 발령 소식을 들은 교우들은 너무 놀라 소란해졌습니다.

“안 돼요! 안 돼요! 신부님 가지 마세요! 가시면 안 돼요! 우리성당에 좀 더 계셔요.”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대전은 제 고향이나 다름없습니다.”

“신부님, 가시면 안 돼요. 가시더라도 이 늙은이가 죽거든 가세요.”

노인들은 어린애처럼 조르며 울상을 지었습니다.

요셉신부의 사제관을 찾는 교우들의 발길이 갑자기 늘어났습니다.

칠순이 가까운 데레사 할머니는 대전성당을 떠난다는 요셉 신부의 말이 제발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제관을 찾았습니다.

“신부님, 정말 우리 성당을 떠나시게 되나요?”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안 가시면 안 되나요?”

“주교님의 명령인데 순명해야지요.”

“요셉 신부님이 우리성당을 떠나시면 쓸쓸해서 이 늙은이는 어떻게 살아갑니까?”

“데레사 할머니, 그동안 저에게 해주신 모든 것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요, 뭘!”

“없다니요 데레사 할머니가 손수 만드신 도토리묵, 두부, 순댓국 그리고 감자떡 등 맛있는 것들을 제가 얼마나 많이 먹었는데요!”

“맛있기는요, 별것도 아니데요! 이 늙은이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곤 그런 것밖에 없는지라....”

“서울에서 할머니가 해주셨던 음식이 생각날 때는 제가 대전으로 내려올 테니 데레사 할머니 귀찮더라도 만들어주시겠어요?”

“암요, 제가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은 언제든지 오셔도 신부님이 원하시는 것 다 해드릴게요. 암요, 해드리고 말고요!”

오륙 명의 교우들이 사제관을 들어섰습니다.

“아이고! 신부님, 계셨군요.

 청천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를 들어서 긴가민가하여 왔지요.”

“마리아 할머니, 수산나 할머니 어서 들어오세요.”

“아이구, 데레사도 와 있었네!”

“나도 조금 전에 왔어. 신부님이 서울로 가신다고 하니 이제 우리는 낙을 잃었네!”

“신부님, 신부님이 가시면 데레사 말대로 우리는 사는 재미가 없을 거예요.”

“제가 가면 저보다 더 훌륭하고 좋은 신부님이 오실 테니 너무 상심 마세요.”

“아닙니다. 제가 다른 성당에도 가 보았지만 요셉 신부님처럼 훌륭하고 강론도 재미있게 하시는 분은 못 보았습니다.

요셉 신부님은 말씀도 재미있게 해주시고 마음도 즐겁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저는 요셉 신부님이 정말로 좋거든요.“

“아이고, 마리아 할머니! 저를 칭찬해주시니 감사 합니다.”

“칭찬이 아니고 사실입니다.”

“저는 요셉 신부님을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친구를 따라서 성당에 왔다가 신부님 강론을 듣고 신자가 되었지요.

제가 입교한지 이십 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 식구들은 물론이거니와 저의 친정 올케로부터 시작해서 올케네 친정식구들까지 모두 천주교인이 되었고 우리 사돈댁도 모두 천주교인이 되었습니다.”

요셉 신부는 1944년 대전성당 주임으로 부임하였고 그 이듬해의 8월15일에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 후 성당에는 교우들의 수효가 많이 늘어났습니다.

성당이 도심지에서 벗어나 교우들이 다니기에 불편했기 때문에 장래를 생각하여 성당을[현 목동 성당]대전 시내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요셉 신부는 건물과 13,080평의 대지를 함께 임대차 계약[1947년]을 맺었으나 6.25동란이 일어나 성당은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1952년 12월 14일 대전교구가 정식 대목교구로 승격되자 13,080평의 대지에 523평의 주교좌성당을 건립하였습니다.

그 이후에도 소년 직업보도소, 여자 중, 고교 등을 건립하여 그동안 많은 인재를 키워 냈습니다.

대전에서 요셉 신부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수상할 정도로 요셉 신부의 명성은 높았습니다.

요셉 신부는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해서 대전에서 22년간 사목하다가 서울 대방동 주임신부로 떠나게 된 것입니다.

이별을 가장 아파하는 사람은 어른보다 애육원 아이들이었습니다.

“아빠,,..아버지 가시면 안돼요. 가지 마세요.”

“가지 마세요. 아버지 가시려면 저희들도 데리고 가세요.”

“가지 마세요.”.........“가지 마세요.”

“얘들아, 새 아버지가 오시면 나보다도 더 너희들을 예뻐해 주실 것이야.

그리고 너희들 보러 내가 대전에 자주 올게. 알았지?”

“싫어요.”......싫어요.“......”잉~잉~!..ㅠ.ㅠ..가지 마세요.“

아이들은 수단자락에 매달려 울었습니다.

그러는 아이들이 가여워서 요셉 신부도 같이 울었습니다.

요셉 신부가 대전을 떠나는 날,

오기선 요셉 신부를 알고 있는 대전의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눈물로 손수건을 적시며,

“잘 가세요.”

“잘 있어요.” 하며 서로의 이별을 아쉬워했습니다........♣~

...................................[제 50회~51회. 로 이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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