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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흙 속에 묻혀 지내던 날들 . . . . [이천수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27 조회수818 추천수12 반대(0) 신고

 

 

 

 

 

나는 농촌 출신의 사제다.

어려서부터 소 꼴 베기니 하는 농사일을 익혔으며,

신학생 시절에도 방학 때에는 꼭 집에 가서 농사일을 거들고

학교로 돌아오곤 했다.

 

'게을러서 땅을 묵히면 삼대가 배곯는다'는 말을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며 자랐다.

 

오래 된 이야기이다.

본당에 부임하고 보니 성당 부지가 건물과 길을 빼놓고는 대부분

모두가 묵어 있었다.

 

잡초. 잡목 등 별로 값어치 없는 나무들이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이것들을 적어도 씨앗을 뿌릴 수 있는 땅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시간 나는 대로 일을 했다.

 

아침기도를 끝내고 공소를 다녀와서도,

평소 등산을 자주 가는 나는 등산을 다녀와서도 시간만 나면 연장을

들고 나가 잡히는 대로 일궈 나갔다.

 

혼자서도 했고, 청년들하고도, 그리고 교우들과도 했다.

그리하여 한 평씩 두 평씩 옥답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땅에 직접 씨를 뿌리기도 하고 다른 교우에게 내 주기도 했다.

쓸모없는 나무들을 모두 베어 버리고 나니 대왕송 한 그루가 덩그러니

홀고 서 있게 되었다.

 

어느 날 무심코 대왕송을 바라보니 말라가고 있는게 아닌가.

교우들에게 물어보니 바람을 맞아서 그런다고 했다.

나는 이 귀하고 소중한 나무를 살리기 위해 여러사람과 의논해 보았다.

 

어떤 사람은 막걸리를 주라고도 했고,

퇴비를 주라고도 했다.

어느 날, 나무 주위를 파서 퇴비를 쌓고 합수를 주고 있는데

한 젊은이가 여비를 얻으러 왔다.

 

"바쁘십니까?

 그렇게 바쁘지 않으면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이것을 부려 놓고 합시다."

 

그 때, 나는 합수통을 메고 있었는데,

나를 도와 주고 있는 아주머니가 그 젊은이에게 다가가 몇 마디를

건네니까 그냥 가 버리는 것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전에는 성당에 구호물자라도 있어서 운영을 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없고 교우들이 가난해서 교무금을 잘 내지 못하여

 신부님이 일을 직접 하는데

 젊은 사람이 할 일이 없어서 성당에 돈을 얻으려 왔느냐고 했더니

 미안하다면서 가 버렸어요."

 

나는 이 일이 큰 교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사건을 이야기 하기로 했다.

5천 평 경지에 목장을 만들고 낙농 사업을 하여 전 교우들과

성당 신축의 꿈을 키웠다.

 

'억척신부' '일꾼신부'로 불려지며 우사를 건립하고 젖소 인공수정을

하거나 소가 해산을 할 때 조수 노릇을 하기도 했다.

사료를 만들기 위하여 아침부터 다음 난 새벽 4시까지 닭죽을 쑤어 먹으

면서 교우들과 작업을 하였다.

 

그 후, 다른 본당으로 옮겨 가게 되었지만,

7년 후에 다른 신부님에 의하여 새 성당이 세워져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게 되었다.

 

사제는 목자다.

목자는 항상 양 떼와 함께 있어야 한다.

나에게는 도시 본당보다는 시골 본당이 사목하기에 더 맞는 것 같다.

 

농군들과 함께 일하며 신앙을 나누는 생활을 원해 본다.

농촌 본당에서의 양 떼는 농군이다.

성가와 복음 선포만을 위한 신부가 아니라 신자들과 생활을 함께 나누는

신부이기를 원한다.

 

이제는 농촌 본당을 떠나 있지만,

그 때의 사제 생활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 [치마입은 남자의 행복]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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