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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님의 아름다운 은퇴(?) . . . . . [박동호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28 조회수843 추천수9 반대(0) 신고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꽃이 지는 건 쉬어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 라는 시의 처음과 마지막 대목입니다.

시인이 마음에 둔 '그대'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저에게는 엉뚱하게도(?) 30여 년의 짧은 삶을 사시다가 가신

예수님이 생각나게 하는 시였습니다.

 

그분의 삶은 참 힘들었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잘 곳초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며

근근히 사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구름 같은 군중들을 몰고 다니시기도 한

화려한 삶을 사신 분이기도 했습니다.

 

얼굴만이라도 보고파,

옷자락에 손이라도 대고파,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고독한 분이시기도 했습니다.

 

주님이라고 환호를 받았던 분이었지만

아무도 뒷수습을 해 줄 겨를 없이 순식간에 사라지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가 언제인데,

세월이 흘러도 한참이 흘러 까마득히 옛날 일인데도...

아직도 그분을 잊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있으니

 

잊는 것은 한참,

영영(永永) 한참이라는 시인의 노랫말 그대로입니다.

 

누구도 쳐다볼 틈도 없이 그렇게 쉽게 삶을 마치신 예수님,

그분을 한참 아니 영영 기억하는 이유는...

오늘 우리의 모습이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너 나 할것없이 '돌을 두고 빵이 되라'고

두 손모아 기도하는 세태에 한 몫을 한 것이 죄스러워서입니다.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손에 쥐겠다고 달음질치는

그 경주에 뛰어든 것이 부끄러워서입니다.

 

전지전능한 초인이 되겠다고...

그래서 천사들마저 보호하고 받쳐 줄 것이라고 믿는...

그 교만함을 부러워한 탓입니다.

 

그분의 모습을 닮아가겠다고 다짐한 수많은 그리스도인,

입술로는 회개와 정화를 노래하면서도 몸으로는 빵을 구하고

권세와 영광을 얻겠다며 발버둥을 친다면...

예수님을 유혹한 악마가 되는 것이며,

제 1독서(사순 제 1주일)의 이스라엘의 처지처럼

이집트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젊은 나이에 은퇴(?)하셨던 것은

그분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셨기 때문이며,

하느님의 뜻대로만 사셨기 때문이며,

하느님을 의심치 않고  하느님만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빵을 구하고 권세와 영광을 탐했다면

억울해서라도 그렇게 일찍 시들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영영 기억하고 따르며,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으로,

그리고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 섬기는 이유는,

아무것도 탐하지 않고 때가 되자 주저함 없이 은퇴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사순시기...

그분만큼은 아니어도

흉내는 낼 정도의 아름다운 퇴장을 위해

비우고...

비우자고...

 

다짐 또 다짐합니다.

* 이 글은 지난 사순 제1주일에 저희 본당(성 크리스토퍼)주보에 실린

  서울 신수동성당 주임 박동호(안드레아)신부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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