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절실한 마음이 들어야 찾게 된다.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28 조회수788 추천수5 반대(0) 신고

 

<절실한 마음이 들어야 찾게 된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루카 11,29-32)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요구한 표징은 묵시문학에서 표현된 대로 大파국 같은 것이었습니다. 땅이 무너지고 하늘이 열리며 새 예언자가 내려와 이방인들을 물리쳐주고 유대인들을 위한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생각을 꿰뚫어 보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악한 세대라고 부르셨습니다. 자기들은 변하려 노력하지 않고 남들 더러 바뀌라고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남들이 못마땅하니 제 입맛에 맡게 바꾸어 달라고 요청하는 셈이었습니다.


  요즘 TV 프로그램 중에서 떼만 부리고 버르장머리가 없는 아이들을 반듯하게 고쳐주는 내용이 방영됩니다. 부모의 말은 전혀 안 듣고 엉떼를 부리며 갖은 말썽을 다 피우는 아이들을 부모가 인내를 갖고 변하게 만드는 내용입니다. 그 아이들을 보면 하나 같이 자기 위주의 행동을 합니다. 밥 먹는 자세에서 부터  장난감 가지고 노는 것, 가족과 부모나 이웃 아이를 때리는 행동, 대들고 싸우려는 듯 고함치는 것 등등입니다. 모두 제 주장대로 받아 들여져야 만족하고, 조금이라도 맘에 들지 않으면 엉떼부려가며 거절합니다. 아무리 어린아이라고 하지만 봐주기 곤란할 지경입니다. 그 아이들은 모두 자기들이 변하는 것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에서 추천하는 제대로 된 교육방법은 부모가 먼저 지혜 있는  태도로 아이를 대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지 살펴 사랑과 벌을 일관성 있게 베풀어야 합니다. 잘한 것은 칭찬해 주고 잘못한 것은 야단치는 것입니다. 무조건 떼를 부린다고 다 들어주면 잘못된 버릇을 고쳐줄 기회를 잃고 맙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스스로 생각해보고 변하게 만들어 주고,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자기도 무엇인가 얻기 위해서는 조그만 노력을 정당하게 해야 하며, 그동안은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절실하게 원한 것을 어렵사리 얻을 때 더 큰 만족을 얻을 수 있고 더 소중해진다는 체험을 가르쳐야합니다.


  저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구약의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사람을 가르치시는 자세를 우리가 본받는 다면 자식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구약에서 보여주시는 엄부자모(嚴父慈母)의 자세를 일관성 있고 시의에 맞도록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엄하게 꾸짖으십니다. 그들 스스로 회개하라고 요구하십니다. 먼저 자신들이 변해야하지 남들이 변하게 되는 표징은 있을 수 없습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야하고, 그래야 그 물맛을 제대로 느끼게 되는 법입니다. 그래야 그 우물이 소중하게 여겨지게 되는 법입니다.


  남방의 여왕은 자신의 지위를 내세우지 않고 지혜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먼 이웃나라에까지 와서 지혜를 구하였습니다. 니네베 사람들은  이름 모르는 한 예언자가 외치는 소리만 듣고도 자신들이 잘못한 것을 뉘우치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스스로 변한 것입니다. 남이 바뀌기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그리 쉽게 바뀔 수 있었는지요? 우리의 경험으로 볼 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절실하게 원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없습니다. 준비된 자만 깨달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요나를 니네베 사람들에게 파견하신 것도 그들이 회개할 가능성을 읽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유대인처럼 새로운 표징을 구하고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먼저 우리가 준비하고 기다려야한다는 자세는 잊지 말아야하겠습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