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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양심의 소리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01 조회수745 추천수9 반대(0) 신고

 

말씀: 요나 3,1-10 복음: 루가 11,29-32 요나는 하느님께 소명을 받았으나 반대방향으로 도망쳤다. 예언자들이 흔히 그랬던 것처럼 임무가 막중해서 잠시 두려워졌던 때문일까? 그것이 아니라, 자기 소명이 싫어서였다. 니네베(Nineveh)는 아시리아의 수도. 아시리아는 북 이스라엘 왕국을 초토화시킨 원수의 나라다. 그러니까 그가 도망갔던 이유는 그 원수의 나라를 회개시키기가 싫어서였던 것이다. 그러나 요나는 도망가지 못한다. 거부할 수 없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힘(물고기로 표현된)에 사로잡혀 되돌아온다. 그가 할 수 없이 임무를 수행해야 했을 때, 하느님의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하고 다녔을지 상상이 간다. 아마도 마지못해, 겨우 알아들을 정도의 맥빠지고 미미한 소리로 중얼거렸을 거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잿더미가 된다" (믿던지 말던지...) 요나 자신도 그악한 원수들이 회개할리 없다고 믿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흘걸리는 도시를 겨우 하루 돌아다녔을 뿐인데 이변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성의없고 힘없는 목소리에 온 니네베 사람들은 모두 나와 굵은 베옷을 입고 단식하였다. 임금도 용상에서 일어나 잿더미 위에 앉아 단식하였다.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고 나쁜 행실을 버리고 돌아섰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과연 그들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시게 되었다. 요나는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동산으로 올라가 씩씩대고 있었다. 회개시키고 싶지않은 사람들을 회개시킨 자신의 소명을 저주하고 있었다. .................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기적을 보여달라는 군중에게 ’요나의 기적’ 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탄식하신다. 니네베 사람들의 양심은 요나의 희미한 소리에도 또렷하게 반응을 하고 있는데 반해, 어떤 예언자 보다도 더 큰, 하느님의 직접 계시인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활동을 보고서도 더 큰 기적을 보여달라고 아우성치는 군중들의 양심은 이렇다할 반응도 없었다. 결국 선포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어디까지나 듣는 사람들의 문제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우리 양심의 소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양심의 소리는 아무나 들을 수 있을 만큼 크진 않지만 누구나 들을 수 있을 만큼 또렷하다." ............. 무엇에도 놀라는 일없는, 아니, 놀라운 일이 너무 많은 우리 세대.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 양심의 기능은 어떠할까? 사순절, 우리 양심의 기능을 점검해 볼 좋은 시기가 아닐까?


Beetoven Moonlight sonata o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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