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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월 2일 야곱의 우물- 마태 5, 20-26 묵상/ 이웃, 또 다른 나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02 조회수583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웃, 또 다른 나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 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마태 5,20­-26)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나름대로 열심한 신앙인이었다. 수백 개나 되는 실천조항을 만들어 놓고 철저히 지키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가?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에는 2퍼센트 부족하다고 하신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율법 정신이었다. 예수님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뿐 아니라 속마음까지도 챙기신다. 살인하지 않는 것뿐 아니라 살인의 원인이 되는 미움과 성냄, 무시하는 말까지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우리가 성을 내고, 미워하고 무시하는 대상을 두고 ‘남’이 아니라 ‘자기 형제’라고 하신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성을 내고 화를 내고 무시하는 대상은 ‘남’이 아니라 같은 피를 나누어 가진 형제라는 것이다. 나의 일부라는 말이다. 그래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19,19)고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리라.

 

자본을 최고의 우상으로 삼고 있는 무한경쟁 사회에서 이웃은 더 이상 형제가 아니다. 딛고 일어서야 할 대상, 적인 것이다. 나의 생존을 위해서는 미워하고 화를 내고 무시하고, 심지어는 살인까지 저지르면서 살아가는 무서운 세상이다. 자녀들에게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무기를 안겨주기 위해 고액과외를 하고 조기유학을 보내 파행적 가정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자기만의 생존법을 배워가는 자녀들이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는 것은 고사하고 부모를 제 몸처럼 사랑하며 공경할 수 있을까?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나 할까? 만일 우리가 계속 그렇게 살아간다면 우리는 결코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을 나무랄 수 없을 것이다.

이동훈 신부(원주교구 살레시오의 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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