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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35) 바람꼬리에 핸들을 묶고 / 이길두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02 조회수711 추천수11 반대(0) 신고

 

 

 

                             바람꼬리에 핸들을 묶고

 

 

                                                                   글쓴이 : 이길두 신부님

 

"아들! 사제가 되기 전에는 신자들이 다 좋아 보여.

 그런데 사제가 되면 신자들이 다 착한 것만은 아니란 걸 알아야 해.

 더 중요한 것은 아들 스스로가 좋은 사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해.

 교만한 신부보다는 부족해도 겸손한 신부가 더 이뻐보여."

 

사제가 되기 전 새끼를 물가에 내 놓는 어미의 심정으로 하신 어머니의 말씀인데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속이는 지혜보다 속아주는 지혜가 더 큰 것이야.

 사제로 살면서 행여 신자들이나 수녀들에게 상처받고 마음 아파하면

 그 상처가 남에게로 옮겨가는 거야. 사제는 아파하는 것도 절제해야 돼.

 때론 부끄러워할 줄도 알아야 하고 ....."

 

조그만 시골본당이라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려고 노력한다.

사목계획을 세우거나 일을 할 때 뜻대로 잘 안 풀리면 자전거를 타고

시골 정취를 느끼며 내 삶 안으로 다가온 사람들과 일을 생각한다.

안개비가 꽃잎 흩날리듯 하얗게 날릴 때 마주 오는 바람을 타고 내 얼굴에

묻는 물방울이 간지럽고 포근하다.

 

사제관 앞에 고추, 호박, 마늘을 놓고 가는 할머니들,

수단자락을 들어올리며 "아이스케키!" 하는 아이,

"내가 침 묻힌 건데 먹을래요?" 하며 초콜릿을 내밀거나, 몸을 비비꼬며 손바닥 위에 뻬뻬로를 놓고 가는 아이들,

강아지 샀다고 안나 할머니가 가져온 3천원, 그 강아지가 새끼를 낳아 팔았다고 가져온 천원, 살 때랑 팔 때랑 값이 다른 이유를 물으니

"파는 것은 아무 때나 팔면 되지만 사는 것은 내 맘에 드는 것이 없응께 그만큼 더 힘들잖여, 그래서 사는 값을 더 많이 쳐주는 겨."

이렇게 나는 많은 안개비의 촉촉함에, 그 사랑에 옷 젖는 것도 모르는 행복한 신부다.

 

햇빛이 싱그러울 때면 먼 산, 긴 강, 가지마다 점점이 박힌 감,

허공에 줄을 긋는 새소리, 바람꼬리에 핸들을 묶어 신밧드가 되어본다.

 

신앙적인 삶을 애타게 이야기해도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 먼 산이다.

샛강이든 여울이든 다 같은 곳으로 가는데 분파를 이루거나 본당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 긴 강이다.

세파와 시련 속에서도 꿋꿋하게 신앙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 풍요로운 노란 점으로 알알이 박혀있는 감이다.

사제의 말 속에 하느님의 생명이 빠져 있다면 허공에 줄을 긋는 새소리일 뿐이다.

 

강이 하늘에서 거꾸로 쏟아지듯 힘겨울 때 소나기를 맞으러 나간다.

사실과 진실이 다를 때 대부분 사람들은 사실을 원한다.

진실이 자리를 잃을 때 서운함, 배신감, 분노로 감정조절이 쉽지 않다.

화를 내면 화가 나를 지배하고 화를 내지 않으면 내 안에서 열불이 난다.

 

안개가 자욱한 아침, 밤잠 설쳐 피곤한 몸을 무작정 자전거에 실었다.

강둑길을 따라 한 시간을 달려가면 옆 큰 마을에서 수영을 하고 올 수 있다.

 

25m를 왕복하고나니 힘이 너무 빠져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근데 웬 아줌마가 물속에서 똥침이라도 놓을 기세로 젊은 오빠 비키란다.

그만 가려다가 은근히 이게 뭔가 싶어 아줌마를 쭉 지켜보았다.

"아니, 프로선수야?" 30분 내내 물에서 쉬지도 않고 나오질 않는다.

이날 그 아줌마가 나의 스승이 될 줄이야!

 

물에서 나는 힘이 너무 들어가 있었다.

'빨리 가야 한다.' 는 생각으로 물과 다투었고, 아둥바둥 빠지지 않으려 거친 숨과 발차기에만 열심이었다.

그러나 힘이 들어갈수록 물에 가라앉는 원리를 몸으로 체득하였다.

 

'그래, 어거지였구나!'

몸에서 힘이 빠지는 순간 숨 고르기며 팔과 다리 몸 전체가 몸과 하나가 된 느낌,

'바로 이것이었구나!'

느낌에 온 몸을 맡기고 힘을 빼면 되는 것인데.

물과 싸우면 내 몸이 이길 리가 없는 것이다.

이런 깊은 뜻이.....  .

가뜩이나 벗은 몸 부끄럽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돌아오는 길에 어제 밤잠 설친 일, 새벽 안개비, 소나기, 수영하는 나를 생각해보았다.

물은 내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과 여러 상황들이었다.

물은 싸우지 않는데 내가 싸우고 있었다.

 

물과 싸우지 않아야 하지만, 행여 싸울 때는 리듬을 타야 물에 빠지지 않는 법이다.

그 리듬은 교만, 우월감, 열등감, 위선에서 힘을 빼는 것이다.

내가 싸워야 할 대상은 나 자신이고, 안개비와 소나기, 먼 산, 긴 강, 허공에 줄을 긋는

새소리가 다 내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나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제가 되는 것이다.

 

부끄러움은 나의 천함과 경거망동과 허풍을 가려준다.

자기 모습에, 행동에, 말에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보다 더 좋은 예의는 없음을 생각해본다.

 

                       ㅡ출처 : 가톨릭 다이제스트ㅡ

 

 

*** 사색적인 글이 좋아 옮겨보았습니다.

     사목하면서 어려움에 처할 때 스스로를 다스리는 신부님의 노력과

     고충이 느껴집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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