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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희망"
작성자이종삼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03 조회수601 추천수6 반대(0) 신고

"희망"

희망에 대하여 묵상하고자 합니다.

희망하면 기쁘게 우리에게 와 닫는 사람도 있고,

허공에 떠도는 소리로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그만 희망이라도 발견하면 누구나 기뻐하며 즐거워합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가난해도 

병들어도 살아갑니다.

명예가 손상되어도 살아갑니다.

슬픔에 빠져도 살아갑니다.

무식해도 살아갑니다.

지울 수 없는 수치를 당해도 살아갑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소중한 어떤 것을 잃는다고 하더라도 살아갑니다.


조그만 희망만 있어도 참아 견뎌냅니다.

그러나 희망을 잃어버리면 죽습니다.

희망이 없이 사는 삶은 이미 죽은 삶입니다.

이렇듯 소중한 것이 희망입니다.

희망이 없다면 참으로 살기 힘듭니다.

자살하는 사람의 전부가 아마 희망을 잃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희망은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피조물도 희망을 생각하며 살지는 않습니다.

단지 주어진 고통에 대하여 이겨내려고 몸부림칠 뿐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희망이 있기에 고통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희망은 무엇이고, 희망을 잃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희망

희망은 세상에 살아가는 필수품입니다.

집을 갖길 원하는 것도 희망이고,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도 희망이며,

자녀가 잘되길 바라는 것도 희망입니다.

깨달음을 얻고자 갈망하는 것도 희망입니다.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 또한 희망일 것입니다.

시련이 지나가면 희망이 보일 것이라 믿는 것도 희망입니다.

 

희망을 잃는다는 것은

현재 처한 불행에 대하여 스스로 이겨낼 수 없는 무능함입니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함입니다. 다른 이와의 상대평가입니다.

자신에 대하여 과대평가와 현실의 차이로 좌절에 빠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무능을 깨닫고,

자신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능력을 부정하고,

자신을 미워하고,

자신을 저주하며,

희망을 잃는다는 것은 자신을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희망을 잃어버림으로써 자신을 파괴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 사회를 비난하고,

부자를 저주하며, 기득권자와 권력자, 사업가와 정치인....

자신의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을 저주합니다.

결국, 극단적으로는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죽이기도 하고,

하느님의 정의만 부르짖다 끝내 하느님을 부정하고

스스로 죽음의 길로 가기도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철저히 자기중심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인간 또한 동, 식물들처럼 단순하게 살 수없을까? 란 생각도 합니다.

이렇듯 인간에게 있어서 희망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은 항상 기쁨에 넘쳐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목을 놓고 울부짖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 저에게 희망을 주십시오.

주님, 주님이 계심을 저에게 드러내소서.....”>


희망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희망은 두 가지의 모습을 띈다고 생각합니다.

사탄의 유혹에 의한 희망과 성령하느님의 희망.


참으로 놀라운 것은

하느님의 진리를 조금만 바꾸면 사탄의 것이 됩니다.

그래서 사탄은 대단한 거짓말쟁이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1)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와 있다고 주님이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그러니 세상의 것이 전부이다. 세상의 것에 완전한 희망을 두어라.

지금 행복한 사람은 천당에 사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은 하느님이 만들어 놓으신 지옥에 사는 것이므로 동정할 가치가 없다. 세상의 지옥에 사는 사람을 동정하는 것은 하느님의 정의에 대하여 반대하는 사람이다.


2) 희망이란 것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에 희망을 두지 말고 하늘에 희망을 두고 세상의 것을 추구하는 것은 모두가 사탄의 짓이니 성서 만 읽고 기도하고 봉사만하고 세상이 어떻게 되던지 그냥 하늘에만 희망을 두고 살아라, 집이 뭐가 필요하며, 자녀가 뭐가 필요하냐? 다 하느님이 해 주실 것이다.


거짓 희망은 이렇게 교묘하게 인간을 속입니다.

거짓 희망은 돈이 희망이라고 합니다.

거짓 희망은 세상이 전부이며 사후는 없다는 것입니다.

거짓 희망은 세상의 행복이 완전한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거짓 희망은 반대로 세상의 것은 전혀 가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거짓 희망은 실패한 인간은 쓸모없는 물질이라고 가르칩니다.

거짓 희망은 버림받은 사람과 소외된 사람이나 장애인 등

                 공동체에서 이탈된 사람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거짓 희망은 희망이란 말은 허공에 떠도는 구름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단지 현실만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어떤 희망을 두고 사십니까?


우리가 하느님을 들먹이며 말하는 희망과

세상의 희망은 무엇이 다른 것입니까?


부동산 가격이 올라갈 대로 올라간 현실을 보면서

집 없는 빈민들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행복지수는 떨어집니다.

신부님도 빈부격차가 심한 곳의 사목활동은 참으로 힘들다는 말씀도 하십니다.


그러면 신앙인으로서의 희망은 무엇입니까?

궁극적인 희망은 죽어서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일 것입니다.

물론 맞는 말씀입니다만 그러기에는 삶이 너무 많이 남아있습니다.

또한 삶이 무가치한 것도 아니고 그냥 흘러가는 것 또한 아닙니다.

그러면 삶 속에서의 희망은 무엇입니까?

부귀, 영화, 건강, 장수, 명예, 지식, 지혜, 다산.....등등입니까?

물론 이러한 것을 추구하는 것 또한 희망일 것입니다.


저는 신앙인으로서 희망은 무엇인가? 에 대하여

젖 먹는 아기를 생각합니다.

아기에게 있어서 희망은 바로 엄마입니다.

어떤 아기도 부귀, 영화, 건강, 장수, 명예......등등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배가 고프면 희망인 엄마가 젖을 줄 것이란 사실만 압니다.

그래서 아기에게 희망은 엄마 한분이면 충분합니다.

엄마가 눈 밖에서 벗어나면 불안해합니다. 슬퍼집니다.

희망이 눈앞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절망하여 웁니다.

희망인 엄마가 빨리 와 주길 진정 바라며 더 크게 웁니다.


우리 또한 그러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희망은 바로 주님입니다.

그저 주님만 바라보는 것이 희망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버릴 수 있으나 하느님은 결코 버리지 않는다.” 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는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희망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아기는 엄마를 볼 수 있으나,

우리는 하느님을 바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볼 수만 있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바로 볼 수 없음으로 불안하고 초조하고 절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믿음이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의 성숙은

“내가 하느님을 외면할 수 있으나, 하느님은 결코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각자에게 “너만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믿어야합니다.

그리고 희망으로 하느님만 바라보아야합니다.

그리고 배고프면 우십시오. 슬프거나, 아프면 우십시오. 즐거우면 웃으십시오.

주님께서는 이러한 굳건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요청은

분명히 들어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희망 또한 정직하고 순수해야합니다.

엄마가 아기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 해가 되는 것은 주지 않듯이

하느님 또한 하느님의 방식으로 해결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신앙인의 희망은 철저히 믿음을 근거하여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어떤 자녀의 모습을 보고 기뻐하실까요.

절망에 빠진 형제, 자매에게

한 가닥의 희망을 나누어 주는 하느님의 자녀를 보고 기뻐하십니다.

희망은 무에서 유를 창조합니다.

즉, 절망에서 희망이라는 사랑을 창조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과 우리들이 받은 은총의 나눔으로 희망을 만듭니다.

무는 절망이고 유는 희망입니다. 그것은 철저히 사랑안에서 만들어집니다.

사랑이 없으면 희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희망을 심어주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도구는 희망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절망에 빠진 사람 한사람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사람은

그 사람에게 새 생명을 주는 은인입니다.

즉,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는 새 보다도 들꽃보다도 더 귀하지 않느냐?>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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