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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37) 황홀하고 쓸쓸했던 날 / 김충수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04 조회수1,064 추천수15 반대(0) 신고

 

3월 첫째주 사순 제2주일

"스승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좋겠습니다."(루카 9,28-36)

 

 

             황홀하고 쓸쓸했던 날

 

                                                글쓴이 : 서울 여의도성당 김충수 신부님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토록 황홀하고 쓸쓸했던 날은 다시없었다.

태어나서 27년 동안 일편단심 달려온 길이었고, 수많은 유혹과 고통과 위기와 싸워서 기어이 승리하여 사제가 되던 날, 나는 왜 그렇게 행복하고 동시에 그처럼 처절했을까?

한없이 웃고 즐겨야 할 그날 밤 나는 한없이 주저앉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이제 무엇을 바라보며, 어디를 향해, 언제까지 걸어가야 하는가....  하는 과제가 내 앞을 가로막고 우뚝 서있었다.

 

오늘 예수님의 타볼산에서의 거룩한 변모사건도 바로 이러한 나의 심정과 같은 것일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갑자기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만들 수 없는 새하얗게 눈부시고 황홀한 의상으로 빛났다.

그분의 얼굴은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해처럼 빛났다.

 

이 광경을 보고 너무나 황홀했던 베드로는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을 내놨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누구나 행복한 때에는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고 영원히 그대로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묵묵부답하며 당신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의연하게 걸어 내려가신다.

 

이렇게 차갑고 싸늘한 고통의 바다로 발걸음을 옮기시는 예수님은 도대체 누구신가?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우렁차게 울려 퍼진 하느님의 말씀 그대로 하느님의 아들이 아닌가?

 

그러나 그 영광스럽고 찬란한 모습을 감추고 처참하고 굴욕적인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예루살렘으로 가셔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느님의 권능과 위엄으로 못하실 일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비참한 죽음의 길을 택하셨는가.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사제수품 기념상본 뒷면에 나는 "이 생명 다하도록 십자길 따라!" 라고 썼었다.

황홀했던 사제수품 그날, 이제 남은 것은 십자가의 길뿐이라는 사실이 나를 그토록 허전하고 쓸쓸한 감정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그 후 나는 십자가의 길을 걷는다고 열심히 걸어왔다.

그러면서도 나는 인기와 명예심에 도취되어 십자가의 길을 외면한 적도 많다.

이제는 정말 십자가가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야 할 것 같다.

 

                      ㅡ출처: 가톨릭 다이제스트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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