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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월 8일 야곱의 우물- 루카 16, 19-31 묵상/ 무관심이라는 죄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08 조회수604 추천수1 반대(0) 신고

무관심이라는 죄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주십시오.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루카 16,19-­31)

◆필자가 사목하는 ‘살레시오의 집’은 정신지체장애우 시설이다. 장애우 50명에 그들을 돌보는 직원이 34명이다. 직원 수가 다른 시설에 비해 많은 편이긴 하지만 직원들이 장애우 한 사람 한 사람을 돌보며 세세하게 마음을 쓰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큰 사고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장애우들이 서로서로 돕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은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다. 부자가 생전에 악하게 살았다거나 거지인 라자로가 착한 일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도 없는데 부자는 지옥, 거지는 천국이라는 도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여기서 부자의 죄는 헐벗고 굶주리는 라자로에게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다. 라자로의 모습을 보면서 ‘거지니까 해어진 옷을 입고, 병들고, 땅에 떨어진 것이나 주워 먹고 사는 것이지’라는 생각으로 그가 겪는 어려움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았다는 사실, 이 무관심이 부자를 지옥에 떨어지게 한 죄다.

 

똑같은 유리지만 창문에 달린 유리는 밖을 볼 수 있고, 거울은 자신만을 비춘다. 창문에 달린 유리는 투명하기 때문이고, 거울은 뒷면에 아말감을 바르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도 맑지 못하고 무언가 끼어 있으면 자신만을 바라보게 된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돕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마음속 때부터 닦아야 한다.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시기는 그 어느 때보다 이웃의 어려운 이들을 찾아가는 사랑을 실천할 때다. 우리의 도움으로 그들이 부활의 삶을 살고, 우리 또한 그러한 선행으로 말미암아 부활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동훈 신부(원주교구 살레시오의 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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