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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자와 라자로 예화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08 조회수774 추천수1 반대(0) 신고

<부자와 라자로의 예화>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루카 16,19-31)



  학자들은 이 부분을 딱히 비유라는 말을 쓰지 않고 '이야기'라고 부릅니다. 빗대어 말한 것이 아니고 구수한 옛날이야기와 같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에서 이런 예화(example story)는 루가복음서에만 네 편이 실려 있습니다. 10장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12장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 16장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 18장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이야기입니다.

  굳이 이야기 속의 뜻을 찾을 필요가 없이 평이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내용 대로 올바른 처신은 본받고, 그른 처신은 내치면 됩니다.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는 두 개의 주제가 담긴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 이야기(19-26절)는 비슷한 이야기가 이집트와 유대 민담에서도 나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그것들과 달리 아주 독특한 뉘앙스가 흐릅니다. 극히 사실적인 점만 묘사합니다.  여기에 권선징악의 내용이 전혀 없어 읽는 사람이 오히려 의아할 정도입니다.

 

  부자와 라자로 사이에 어떤 감정적 교류가 전혀 없습니다. 부자는 라자로에게 해를 끼치지도 도움을 주지도 않았습니다. 같은 민족의 사람이 아니라 마치 별개의 우주에서 온 외계인처럼 대했습니다. 부자의 개마저 라자로를 우숩게 보았습니다. 부자는 호의호식하였고, 라자로는 부자의 문 앞에 누워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웠습니다. 그런데도 죽음 이후에 부자는 저승에 가서 고통을 겪었고, 라자로는 아브라함 곁에서 위로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죽은 다음에 사람의 운명이 뒤바뀐다는 내용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치와 판단 기준이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말할 뿐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부유가 하느님께서 주신 축복이며, 의로움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실제로 그 부자도 자신의 부유함을 즐기기만 했을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신명기 15,4절 “너희 가운데에는 가난한 이가 없을 것이다.”라는 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부자에게 라자로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이점은 현대인들에게 示唆하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는 가난을 인생에서 실패한 대가로 여기고 있습니다. 어쩌면 당연히 겪어야할 보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니 정부나 사회단체가 맡아서 처리해야할 문제로만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난과 소외의 문제를 머리 아프고 귀찮은 일로 여기고 살았습니다. 각종 투기를 통해 부를 축적하는데 만 골몰하였습니다. 그들의 문제를 내 문제로 삼아 함께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다면 그런 어리석은 짓은 못했을 것입니다.


  또 부자는 저승에서조차 아브라함에게 부탁을 가장한 명령을 합니다. 라자로를 시켜 물을 찍어 타는 혀를 식혀 달라고 말합니다. 그는 아직도 제 마음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교만한 마음을 없애지 못했습니다. 상황 인식을 전혀 못하고 있습니다. 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골이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부분 이야기(27-31절)는 죽은 사람들이 使者로 와서 아무리 가르쳐주어도 완고한 자들에겐 변하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부분은 초기 공동체나 루카저자의 첨가문이라 여겨집니다. 부활사건의 조망 아래 부활사건을 불신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내용은 하느님나라는 반드시 존재하며, 누구나 들어갈 수 있고  율법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말하려 하였습니다. 더럽고 가난한 거지인 라자로도 하늘나라에 들어갔으며, 가난한 자를 무시하지 말고 잘 대해 주라는 모세의 율법이 파기되지 않고 여전히 지켜야할 것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루카복음 16,16-17절 내용을 ‘예를 든 이야기(예화)’가 되는 것입니다.

“율법과 예언자들의 시대는 요한까지다. 그 뒤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데, 모두 이 나라에 들어가려고 힘을 쓴다. 율법에서 한 획이 빠지는 것보다 하늘과 땅이 사라지는 것이 더 쉽다.”


  J. 예레미아스는 이 부분을 “위기의 비유”로 해석하여, 두 번째 부분에 예수님의 강조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부자의 다섯 형제들과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임박한 위기를 강조하기 위하여 예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즉 유대 백성과 같은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고 하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죽으면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는 내세가 없으며 다 끝장날 것으로 알고서, 살아서라도 제 멋대로 지내자는 사람들을 향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루카저자는 15장, 16장에 ‘돌아온 탕자를 받아들인 아버지의 비유’, ‘불의한 청지기 비유’, ‘부자와 라자로 예화’를 연속으로 배치하여 “부의 사용에 대한 교훈”을 말하려고 하였습니다.

  재물의 적정한 사용은 탕자처럼 남용하거나 악용해서도 안 되고, 부자처럼 자기만을 위해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도리어 불의한 청지기처럼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실질적으로 나서야하는 것입니다.



"La campan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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