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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똑똑한 바보' 가 필요한 시대 . . . . . [안상철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08 조회수923 추천수12 반대(0) 신고

 

 

 

 

 

"신부님, 자살을 하면 어떻게 되나요?"

 

가을이 깊어 가고 있던 어느 날 오후,

문득 낯선 청년이 찾아와 괴롭고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요청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세상이 험악하여 사람의 생명을 도무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시대인지라 생명의 고귀함을 외치고 강조하는 신부노릇 하기가 힘든 때

이런 질문을 받고 보니 퍽이나 반갑고 고마웠다.

 

하나의 생명이라도 잃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일념에...

마른 입에 침을 바르고 바르며 생명의 고귀함을 이야기했다.

 

"왜 자살을 생각했습니까?"

 

"저는 어릴 때 부모님을 잃고 혼자서 자랐습니다.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내고 군 복무를 마친 뒤 직장에 들어가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이제 돈을 모아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밀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어느 날 머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악성 뇌종양이라 했습니다.

 

 수술비를 마련할 수도 없고,

 또 수술을 해도 희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모은 약간의 돈을 가지고 산골로 들어가 죽기 전까지

 쉬며 살고 있습니다."

 

"누가 밥이나 빨래를 해 주고 병 간호를 해주나요?"

 

"그 동네에 살고 계신 열심한 장로님이 도와 주셨습니다.

 의사가 6개월을 산다고 했는데 이제 3개월을 지냈습니다.

 그래서...

 기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부모님 산소나 찾아 뵙고 죽으려고

 부모님 산소가 있는 온양에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이쯤 이야기가 진행되면,

신부들이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있다.

 

'이 사람 혹시 사기꾼이 아닌가?'

 

신부로서 해서는 안 될 의심이지만,

오랜 신부생활을 하는 동안에 여러 사기꾼들이 훈련을 시켜 놓은 덕분에

어쩔 수 없이 습관화되어 버렸다.

 

"만일 당신이 원한다면 임종할 때까지 돌봐 줄테니 지금 올라가서

 짐을 싸가지고 오시오."

 

그 청년은 뛸듯이 기뻐했다.

지금 올라가서 정리하고 당장이라도 내려오겠다는 것이다.

 

'이제 돈을 요청할 때가 되었는데...,'

 

그러나 그는 그냥 사제관 문을 나서서 인사를 하고는 돌아섰다.

그가 서너 발짝을 갔을 때,

내가 소리를 질렀다.

 

"차비 있어요?"

 

몇만 원을 그에게 주면서 내려올 때 경비로 쓰라고 당부했다.

며칠 동안 방을 준비하고 그를 맞이할 마음의 각오까지 하고 있었는데,

한 달, 두 달, 석 달이 지나도 그 청년은 나타나지를 않았다.

 

그리고 6 개월이 지난 어느 날,

그 청년이 말끔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니?  당신, 아직 살아 있었어?"

 

그가 해준 이야기는 대충 이러했다.

자기를 돌보아 주셨던 장로님이 추천해 주셔서 어느 기도원에 갔는데,

그곳에서 병이 나았다는 것이다.

이제 그 청년은 일자리를 요구했다.

 

나는 기가 막혀서 '에이, 이 사기꾼아!'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청년은 다시 짐을 싸가지고 올 테니 여비를 달라고 했다.

요걸 어떻게 처리할까를 궁리하고 있을 때...

불란서의 유명한 성인 요한 비안네 신부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 개중에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저 사람은 내가 준 것을 나쁘게 사용하고 있구나!

     그러나 쓰고 싶은대로 쓰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그 가난한 사람은 여러분에게서 동냥을 받은 것을

     어떻게 사용했는가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지만,

     여러분은 동냥을 해 줄수 있었는대도 하지 않았다는

     그 사실로 인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

 

 

이 세상이 이처럼 각박하고 메마른 것은

온통 똑똑하다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 이상의 약아빠진 사람이 아니라

'똑똑한 바보'들일 것이다.

 

남의 밥이 되어주는 사람,

알면서도 속아주는 사람,

상대방의 지식을 인정해 주고 부러워해 주는 사람,

내 의견을 포기할 줄 아는 사람,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는 마음을 비운 사람,

나보다 남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 주는 사람같은 바보들이 필요한

세상인 것이다.

 

내가 준 몇 만원을 손에 쥐고 돌아가는 그 청년에게

다시 찾아오면 일자리를 마련해 주도록 노력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몇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아직도 나는 그를 기다리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그에게 속은 것이 아니라...

 

그가

내게 속았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가르쳐 주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 [치마입은 남자의 행복]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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