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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월 9일 야곱의 우물- 마태 21, 33-43. 45-46 묵상/ 진정한 발전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09 조회수705 추천수4 반대(0) 신고

진정한 발전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없이 없애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이 비유들을 듣고서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군중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마태 21,33-43.45-46)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있는가? 현대 사회는 ‘소유’와 ‘소비’와 ‘향락’에 삶의 의미를 두는 것 같다. 더 많이 소유해 풍족한 삶을 누리는 것을 ‘발전’ 또는 ‘진보’라고 말하며 이것을 사회의 기본 가치로 생각하는 것이다.
소유와 소비를 삶의 목표로 삼는 개인과 사회는 타인과 사회에 대하여 적대적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더 많이 소유하고 소비하기 위하여 다른 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힘을 키워야 한다. 다른 이들보다 더 큰 힘을 소유할 때 더 많이 소유할 수 있고, 더 많이 소비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포도원 소작인들은 도조를 받으러 온 종들과 그 아들마저 죽였다. 제 것도 아닌 포도원을 가로채기 위한 욕심으로 끔찍한 살인마저 서슴지 않은 것이다. 소작인들의 끔찍한 행동은 오늘날에도 발전과 진보라는 미명하에 인간 상호간의 경쟁뿐 아니라 자연 세계에 대한 착취와 파괴로 자행되고 있다. 포도원 주인이 소작인에게 포도원을 도지로 주었듯이 하느님은 인간에게 이 세상을 맡겨주셨다(창세 1,26­28 참조). 그런데 인간은 제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고 만물의 주인인 양 마음대로 자원을 고갈시키고, 동식물을 멸종시키고 환경을 오염시키며 세상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진정한 발전이란 경제적 성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발전에서 어느 누구도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고 천명하고 있다(회칙 「민족들의 발전」 14항,`17항 등). 이 사순절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삶의 의미로 두고 있는지, 그것을 획득하기 위한 우리의 수단과 방법은 적절한지 우리 삶을 진지하게 성찰해 보아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오늘 복음의 소작인들, 또는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동훈 신부(원주교구 살레시오의 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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