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있는가? 현대 사회는 ‘소유’와 ‘소비’와 ‘향락’에 삶의 의미를 두는 것 같다. 더 많이 소유해 풍족한 삶을 누리는 것을 ‘발전’ 또는 ‘진보’라고 말하며 이것을 사회의 기본 가치로 생각하는 것이다. 소유와 소비를 삶의 목표로 삼는 개인과 사회는 타인과 사회에 대하여 적대적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더 많이 소유하고 소비하기 위하여 다른 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힘을 키워야 한다. 다른 이들보다 더 큰 힘을 소유할 때 더 많이 소유할 수 있고, 더 많이 소비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포도원 소작인들은 도조를 받으러 온 종들과 그 아들마저 죽였다. 제 것도 아닌 포도원을 가로채기 위한 욕심으로 끔찍한 살인마저 서슴지 않은 것이다. 소작인들의 끔찍한 행동은 오늘날에도 발전과 진보라는 미명하에 인간 상호간의 경쟁뿐 아니라 자연 세계에 대한 착취와 파괴로 자행되고 있다. 포도원 주인이 소작인에게 포도원을 도지로 주었듯이 하느님은 인간에게 이 세상을 맡겨주셨다(창세 1,2628 참조). 그런데 인간은 제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고 만물의 주인인 양 마음대로 자원을 고갈시키고, 동식물을 멸종시키고 환경을 오염시키며 세상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진정한 발전이란 경제적 성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발전에서 어느 누구도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고 천명하고 있다(회칙 「민족들의 발전」 14항,`17항 등). 이 사순절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삶의 의미로 두고 있는지, 그것을 획득하기 위한 우리의 수단과 방법은 적절한지 우리 삶을 진지하게 성찰해 보아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오늘 복음의 소작인들, 또는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동훈 신부(원주교구 살레시오의 집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