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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묵상모음 [사순제 2주 금요일]
작성자원근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09 조회수519 추천수1 반대(0) 신고
♡ 3월9일 사순 제2주간 금요일 복음 묵상 ♡

    ◇ 저기 저 꿈 쟁이 가 오는구나. 저 녀석을 죽여 버리자.> ☆ 창세기 37,3-4.12-13ㄱ.17ㄹ-28 ☆ 3 이스라엘은 요셉을 늘그막에 얻었으므로, 다른 어느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긴 저고리를 지어 입혔다. 4 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어느 형제보다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 게 정답게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12 그의 형들이 아버지의 양 떼에게 풀을 뜯기러 스켐 근처로 갔을 때,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네 형들이 스켐 근처에서 양 떼 에게 풀을 뜯기고 있지 않느냐? 자, 내가 너를 형들에게 보내야겠 다.” 17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뒤따라가 도탄에서 그들을 찾아냈다. 18 그런데 그의 형들은 멀리서 그를 알아보고, 그가 자기들에게 가 까이 오기 전에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 19 그들은 서로 말 하였다. “저기 저 꿈 쟁이가 오는구나. 20 자, 이제 저 녀석을 죽 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이 야기하자. 그리고 저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21 그러나 르우벤은 이 말을 듣고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 낼 속 셈으로,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 하고 말하였다. 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다시 말하였다. “피만은 흘리지 마라. 그 아 이를 여기 광야에 있는 이 구덩이에 던져 버리고, 그 아이에게 손 을 대지는 마라.” 르우벤은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 내어 아버 지에게 되돌려 보낼 생각이었다. 23 이윽고 요셉이 형들에게 다다르자, 그들은 그의 저고리, 곧 그가 입고 있던 긴 저고리를 벗기고,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졌다. 그것은 물이 없는 빈 구덩이였다. 25 그들이 앉아 빵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보니, 길앗에서 오는 이스마 엘인들의 대상이 보였다. 그들은 여러 낙타에 향 고무와 유향과 반일향을 싣고, 이집트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26 그 때 유다가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동생을 죽이고 그 아이의 피를 덮는다고 해서,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27 자, 그 아이를 이스마엘인 들에게 팔아 버리고, 우리는 그 아이 에게 손을 대지 말자. 그래도 그 아이는 우리 아우고 우리 살붙이 가 아니냐?” 그러자 형제들은 그의 말을 듣기로 하였다. 28 그때에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가다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내었다. 그들은 요셉을 이스마엘 인들에게 은전 스무 닢에 팔아 넘겼다. 이들이 요셉을 이집트로 데리고 갔다. ...................................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 마태오 21,33-43.45-46 ☆ 그 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 어떤 밭 임자가 ‘포도 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 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34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 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35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36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 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37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 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38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39 그를 붙잡아 포도 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40 그러니 포도 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 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 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 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45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이 비유들을 듣고서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아차리고, 46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군중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 ◇ 복음 묵상 ◇ 유광수 신부 오늘 복음에서 "어떤 밭 주인이 포도 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 고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라고 하셨다. 마치 창조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다. 창조 때에 모든 것을 다 만드시고 마지막 날에 인간을 만드시어 인간에게 그것을 주 시며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 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 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 고 하셨듯이 포도 밭 주인이 정성껏 만들어서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포도 밭 주인은 소작인들이 잘 가꾸기만 하면 될 수 있도록 모든 것 을 다 만들어 주셨다. 주인은 소작인들에게 맡기기 전에 먼저 포도 밭을 일구었고, 포도나무를 심었고, 도둑이나 짐승들이 들어오지 못 하도록 울타리를 둘러쳐서 보호하였고 또 망을 볼 수 있도록 탑을 세워 두었다. 소작인들은 다만 열심히 가꾸기만 하면 된다. 소작인들은 주인의 몫만 내 놓고 나머지는 자기들 몫이니까 자기들 이 필요한 대로 사용하면 된다. 그러면 자기들도 행복하고 주인 또 한 기쁜 일이다. 주인의 기쁨은 소작인들이 열심히 일해서 그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주인은 그런 의도로 포도 밭을 만들어서 소 작인들에게 맡기었다. 처음에 소작인들은 자기들에게 포도 밭을 맡 긴 주인에게 감사하고 고마워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자기들을 그 포도 밭의 일꾼으로 뽑아 준 것에 대해 감사했을 것이고 또 자기들이 먹고사는 것에 대해 걱정 하지 않아도 되니까 정말로 감사했을 것이다. 이러한 본래의 의도를 잊지 않고 살아갔다면 포도 밭은 더욱 많은 소출을 내고 주인과 소 작인들과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지고 가족처럼 지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소작인들은 포도 밭 주인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자기들이 소작인들이라는 것을 잊어 버렸다. 자기들의 것이 아닌데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였다. 그래서 포도 밭 주인이 보낸 종들을 매질하고 죽였다. 마침내는 주인의 아들마저 붙잡아 포 도 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벌어졌다. 소작인들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소작인들은 넘지 말아 야할 선을 넘어 버렸다. 그렇다고 포도 밭 주인이 소작인들에 섭섭 하게 한일도 없었고 잘못한 일도 없었다. 주인은 포도 밭을 정성껏 만들어서 소작인들이 잘 먹고 행복하게 살도록 해준 것 밖에 없다. 그런데 결과는 너무나 엉뚱하였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원인 이 무엇인가? 그 원인을 복음은 이렇게 적었다.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포도 밭이 자기들의 것이 아닌데 자기들의 것으로 갖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본래 자기들 것이 아닌데 자기들의 것으로 만 들려고 하니까 불법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다.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폭력이 동원되고 결과는 살인까지 저지 른 것이다. 자기 것이 아닌데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그 욕심이 결과적으로 화를 자초했다. 주인은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물었다.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없이 없애 버리고, 제 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 들에게 포도 밭을 내줄 것입니다."라고 대답한 대로 그들을 내 쫓으 시고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 밭을 내 맡기셨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에와의 불행도 "따먹지 말라"는 선과 악을 알 게 하는 과일 나무를 따먹음으로 해서 시작되었다. 하느님은 분명히 따먹지 말라고 했는데 그들이 왜 따먹었는가? "여자가 그 나무를 쳐 다보니 과연 먹음직하고 보기에 탐스러울뿐더러 사람을 영리하게 해 줄 것 같아서 그 열매를 따 먹고 같이 사는 남편에게도 따 주었다." 즉 "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될 것" 같은 욕심에서 따먹었다. 인간의 불행은 항상 욕심에서 시작된다. 하느님은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창조 사업을 계속하신다.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게 하시고 밤과 낮을 갈라 새 날을 시작하시고 포도 밭에서 일할 수 있는 건강과 함께 일할 동료들을 보내 주신다. 잘 자랄 수 있도록 비를 내려 주시고 빛을 비춰 주신다. 울타리를 쳐서 보호해주시고 양심이라는 망대를 세워 주시며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만들어 나에게 맡기신다. 양심에 따라 열심히 일 하면 얼마든지 내가 먹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축복해주신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 드리며 양심이라는 잣대에 따라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생활한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신다. 오늘날 우리가 불행한 것은 내 것이 아닌데 내 것 으로 만들려고 양심에 어긋나는 불법을 저지르고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을 부리기 때문이다. "야훼님 것이로다, 땅이며 그 안에 가득 찬 것이, 온 누리와 거기 있 는 그 모든 것이"(시편 23,1)라고 노래하였듯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야훼 하느님의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리고 모든 것은 다시 하느님 께 돌려 드려야 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욕심부릴 것도 없고 폭력 과 살인을 저지르지 않아도 될 것인데 자기의 분수를 모르고 모든 것을 독차지하려는 욕심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산다. "숨쉬는 것 모두 다 주님을 찬미하라"고 하였듯이 주님을 찬미하는 삶이 우리 본래의 모습인 것을 알고 주님을 찬미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 묵 상 ☆
    의형제를 맺은 도둑 세 명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서로 협동하여 부잣집을 털어 큰 재물을 얻었습니다. 도둑 한 명이 자신들의 성공 을 자축하고자 술을 사러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그러자 남은 두 명 은 좋은 기회라고 여기고 공모하였습니다. “우리 합심하여 저놈이 올라오면 즉시 죽여 버리자. 그러면 우리 몫이 더 커지지 않겠느냐?” 두 도둑은 술을 사러 간 그 하나가 올라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한편 술을 사러 간 도둑도 한참을 걸으며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 저 두 놈을 죽이면 그 많은 재물이 다 내 차지가 될 수 있을 터이니 저놈들을 죽여 버리자.’ 이윽고 마을로 내려간 도둑이 돌아오 자 남은 두 명이 그를 죽여 버렸습니다. 뜻을 이룬 둘은 서로 축하 하며 마음껏 술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이 둘도 그만 죽고 말았 습니 다. 자신들이 마신 술에는 이미 독약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탐욕은 결국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고 맙니다. 오늘 복음에 서는, 포도 밭 소작인들이 주인의 종들과 그 아들까지 죽이고 자신 들이 포도 밭을 차지하려고 하자, 주인은 그 악한 소작인들을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다른 소작인들에게 그 포도 밭을 맡깁니다. 우리 는 주어진 역할과 책임에 최선을 다할 뿐, 그 이상의 욕심으로 그나 마 우리에게 허락하신 주님의 은총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노력 해야 하겠습니다. ................................ ◇ 옛날에 아주 용한 의원이 있었습니다. 그의 의술은 온 나라가 알아줄 정도였지요. 죽어가는 사람들도 모두 건강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방에서 그에게 이 의술을 배우려고 엄청난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의원은 제자들을 받아 들이기는 했지만, 제자들에게 결정적인 자신의 노하우는 전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죽은 사람도 살려 낼 수 있는 명약을 만들었거든요. 자신의 이 기술을 가지고 자기보다 더 유 명해질 것을 염려한 의원은 제자들에게 죽은 사람도 살려낼 수 있는 명약에 대한 기술은 절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의원 역시 나이가 들었고, 죽을 때가 되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는 자신이 가장 믿을만한 제자에게 이러한 유언을 남깁니다. “내가 죽거든 당황 해하지 말고 이 약을 발라 다오.” 그리고 의원이 죽고 말았습니다. 제자는 스승의 유언을 기억해서 스 승이 남긴 약을 몸에 바르기 시작했습니다. 반쯤 바르자 바른 부분에 온기가 돕니다. 죽었던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지요. 바로 그 순간, 이 제자는 약에 욕심이 생겼습니다. “나도 언젠가 죽을 테지. 하지만 이 약을 바른다면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약 바르던 것을 중단하였습니다. 제자의 중단된 행위로 결 국 의원은 죽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 제자 역시 죽을 때가 되 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불러 이렇게 유언을 남깁니다. “내가 죽거든 당황해 하지 말고 이 약을 발라 다오.” 아들은 이 말을 명심하고 아버지가 죽자 몸에 약을 바르기 시작했습 니다. 약을 바르는 부분에 온기가 돌았지만, 반쯤 바르자 약이 떨어 지고 말았습니다. 맞습니다. 애초에 스승이 만든 약은 딱 1인분 밖에 안되었던 것이지요. 스승과 제자는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명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기는 살릴 수 없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욕심 때문이 었습니다. 욕심만 없었다면 아마 스승이나 제자 모두 살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만 살겠다는 욕심, 나만 잘 되면 그만 이라는 욕 심 때문에 결국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소작인들도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자기들만 살면 그만 이라는 생각, 그래서 포도 밭 주인의 아들까지도 죽여 버 리는 극단적인 욕심의 표현을 해 버립니다. 그런데 이들의 생각대로 포도 밭을 차지게 되었을까요? 다른 사람에게 포도 밭이 넘겨지는 것은 물론 자신의 생명까지도 위험하게 되지요. 우리도 이러한 욕심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나만 잘되면 그만 이라는 생각, 누구만 없으면 내가 잘 될 것이라는 생각 들……. 바로 나를 주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게 하는 아주 위험한 생각 들입니다.
    ◇ 욕심 부리지 맙시다. ............................... ◇ 희망을 위하여(배한봉) 아침이라서 해 뜨는 것이 아니라 해 뜨니까 아침이다 희망을 가진 사람은 해를 가진 사람 삶이 빛나서 희망도 빛나는 것은 아니다 마음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 주저앉아 흙탕에 젖고 황혼에 젖고 혹한에 떨며 벼랑 아래로 한없이 무너지던 만신창이 영혼 그 시간 너머에서 해는 뜬다 오늘 아침은 오늘 <나>의 아침 구름도 바람도 오늘 <나>의 노래 희망도 있으니까 삶은 빛난다 눈보라 끝에 꽃봉오리 터트린 저 눈부신 홍 매처럼! ........................... ◇ 복음 묵상 ◇ 양승국 신부 제게 남아있는 유일한 소망 한 가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가난한 청소년들의 참 목자이셨던 돈보스코 성인의 어록을 읽다가 이런 구절들을 발견했습니다. “사랑하는 청소년 여러분, 여러분은 제 마음의 주인입니다.” “낮이건 밤이건 그 어떤 순간에도 저는 여러분을 위해 존재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과 함께 있으면 저는 편안합니 다. 여러분들 사이에 있는 것이 제게는 가장 큰 기쁨입니다.” “친구들이여, 이 세상에서 나처럼 여러분들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제게 남아있는 유일한 소망 한 가지는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나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돈보스코는 청소년들과 자신의 관계를 ‘연인관계’ 이상으로 설정하셨습니다. 마치도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의 관계처럼 말입니다. 돈보스코 성인께서 청소년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연인처럼 생각하시며, 끊임없이 우리를 당신과의 행복한 영적 결혼생활에로 초대하십니다. 하느님과의 결혼생활이란 다름 아닌 양심과 계명에 합당한 올곧은 삶, 우상숭배에서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삶, 결국 회개의 삶, 구원의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유일한 소망 한 가지는 인류전체가 구원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하느님께 대한 끊임없는 도전의 역사요, 반역의 역사요, 배신의 역사였습니다. 우리 인간들(성서 상 이스라엘과 유다로 지칭되는), 어찌 그리도 하느님께서 싫어하는 미운 짓만 골라 했는지 모릅니다. 배신, 우상 숭배, 반역, 위선, 약탈, 대량학살, 배은망덕...행동 하나 하나가 하느님 마음에 안 들었을 것입니다. 너무도 안타까웠던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아끼는 종들(예언자들) 을 파견하십니다. 그러나 잔악한 백성들은 예언자들이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막습니다. 그리고는 예언자들을 처형합니다. 보내시는 족족. 하느님께서 바라보셨을 때 정말 안타까우셨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한번 쓸어버리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시 인내하시고 또 다른 예언자들을 계속 파견하셨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배신의 역사가 여러 예언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속이 새까맣게 타 들어가셨던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를 시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배반자 이스라엘아, 돌아오너라. 네가 나일 강물을 마시러 이집트로 내려가다니 웬 말이냐? 유프라테스 강 물을 마시러 아시리아로 올라가다니 웬 말이냐? 네 젊은 시절의 순정과 신부 시절의 사랑을 내가 기억한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아라. 단지 네 죄를 시인하기만 해 다오.” 예언자들이 간절한 마음과 절절한 사랑이 담긴 하느님의 메시지 를 백성들에게 열심히 전하지만 전혀 먹혀 들지 않았습니다. 기운이 하나도 없이 하느님께 돌아온 예언자들은 기가 막혀 이렇게 하소연합니다. “슬픔이 나를 덮쳐 오고 내 마음은 병들었습니다. 이제 주님의 말씀은 그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고 그들은 그 말씀을 달가워 하지 않습니다.” 그 정도 상황이면 포기하실 만도 한데, 하느님께서는 거기서 마무리 짓지 않으십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아들을 파견하십니다. 자기 아들을 사지(死地)로 파견한다는 것, 여간 고통스런 일이 아닙니다. 가슴 찢어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아들은 여러 아들 가운데 한 명이 아니라, 오직 하나뿐인 외아들이었습니다. 그 금 쪽같은 외아들마저 우리를 위해 사지로 보내십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느님께서는 그만큼 우리 인류를 사랑하신 다는 표시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외아들마저도 사형에 처했습니다. 그냥 사형에 처한 것이 아니라, 그 존귀한 분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습니다. 조롱하고, 비웃고, 침 뱉고, 돌려 가며 채찍질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또 다시 인내하십니다. 또 다른 형태로 예언자를 파견하십니다. 기약 없는 용서와 인내의 여정을 다시금 시작하십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전개되어온 하느님과 우리 인간 사이의 역사 였습니다. 하느님 측에서 봤을 때는 반역의 역사와 배신의 역사, 치가 떨리는 분노의 역사였지만, 우리 인간 측에서 보면 은총의 역사, 사랑의 역사, 기적의 역사, 구원의 역사였습니다. 살레시오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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