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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왜 기도를 하면서도 욕을 할까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09 조회수778 추천수3 반대(0) 신고
                         나는 왜 기도를 하면서도 욕을 할까





내 데뷔작인 중편소설 「추상(抽象)의 늪」(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품)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이름 없는 주인공 청년이 또 하루 천주교 성당의 '고해소(告解所)'를 찾아 신부에게 고백을 하는 대목이다. 그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을 증오하며 욕을 했다고 고백한다. 그가 욕을 했다는 사람들은 한국 사회, 특히 정치권의 저명한 인사들이다. 집권세력의 실세들로 분류할 수 있고, 독재권력의 주구(走狗)로 지칭할 수 있는 이들이다. 그들을 그는 매일같이 무시로 저주하고 욕을 하며 산다고 했다.

그는 그 사람들과 유리된 세상에서 살 수 없는 현실을 한탄한다. 집에서도 거리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수시로 그들의 이름을 접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접할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자연발생적으로 그들을 저주하고 욕을 하는 '죄'를 짓는다고 했다. 그동안 무수히 그런 죄를 저질러왔고 오늘도 그런 죄를 지어서 너무도 괴로운 나머지 성당의 고해소를 찾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이런 말을 한다. "오늘은 내가 그 죄에 대해서 고백을 하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지만, 또다시 그런 죄를 짓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스스로 확신할 수도 없다"고….

나는 요즘에도 종종 25.6년 전에 지은 소설의 그 대목을 떠올리며 한숨을 짓거나 혀를 차곤 한다. 그 이름 없는 청년의 그 죄와 비슷한 죄를 나도 오늘 무시로 저지르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상은 다르다. 그 청년은 과거 군사정권의 실세들, 독재권력의 주구들을 증오하며 욕을 했지만, 오늘의 나는 평범한 일부 시민들을 향해 욕을 한다.

남에게 욕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비록 대상이 되는 사람이 직접 듣지는 못하지만, 남에게 욕을 하는 것은 죄를 짓는 일이다. 그것을 잘 알면서도 거의 습관적으로 남에게 욕을 하는 죄를 일상생활 속에서 계속적으로 짓고 있다.

천주교 신자인 나는 일상생활 속에서 거의 습관적으로 '묵주기도'를 하며 산다. 묵주기도란 '성물(聖物)'의 한가지인 묵주를 손에 쥐고 하는 기도이며, '성모 마리아님과 함께'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이다. 나는 거의 매일같이 오후 2시간씩 걷기 운동을 할 때 묵주기도를 하지만, 자동차 운전을 할 때도 한다. 묵주기도 덕택에 매일 2시간씩의 걷기 운동을 지루한 줄 모르게 지속할 수 있고, 장거리 심야 운전도 '재미있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비록 성직자나 수도자들처럼 전적으로 남을 위해 살지는 못하더라도, 내 일상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기도를 하며 산다면, 그 기도들이 저 하늘나라에서 아름다운 '화원(花園)'을 이루리라는 생각도 한다. 그런 생각으로 '기도 실적'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그런데 나는 특히 운전을 할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욕을 하곤 한다. 묵주를 쥔 손으로 운전을 하면서, 다시 말해 기도를 하다가도 누군가를 향해 욕을 하는 것이다. 다음 순간에는 기도 중에 욕을 한 나 자신을 알아차리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 대개는 무안한 기분을 머금고 쓴웃음을 짓지만, 어떤 때는 절망적인 기분으로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운전을 하다보면 차창 밖으로 담배꽁초를 버리는 운전자들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그들은 주행 중이건 정차 중이건 상관하지 않는다. 시내든 어디든 상관하지 않고 창문을 내리고 태연히 담배꽁초를 버린다. 때로는 종이 껍데기 따위 쓰레기도 버린다. 이 세상 천지가 모두 쓰레기통인 줄로 착각한 본새다.  

그들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저런 쓰레기 같은 ×!"이라는 욕을 한다. 차도 고급스럽고 낯짝도 말쑥한 사람일수록 내 입에서 더 심한 욕이 나온다. "앉은자리에다 똥을 싸고 깔아뭉갤 ×!"이라는 욕도 나오고, "저런 ××들 땜에 고성 산불 같은 대형 산불도 발생헌다니께!"라고 탄식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아내에게 핀잔을 먹기도 한다. "점잖지 못하게 왜 그래요? 더구나 묵주를 쥐고 기도를 하다가 그러시면 이상한 사람이 되잖아요"라는 말이라도 듣게 되면 더욱 무안한 기분이 된다.

나는 이렇게 무시로, 또 자연발생적으로 남에게 욕을 하는 죄를 많이 짓는다. 인격을 지닌 사람을 향해 '쓰레기 같은 ×'이라고 하는 것은 분명히 온당치 못한 짓이다. 그가 듣지 못한다고 해서 욕이 아닌 것도 아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욕설은 그 자체로 큰 죄가 될 수 있다.    

그런데도 나는 습관적인 죄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말이지 겉모습은 말쑥하면서도 근성은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 현실과 정비례하여 나의 죄도 커지고 있다. 운전을 하면서 묵주를 쥐고 기도를 하다가, 차창 밖으로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버리는 운전자를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욕을 하는 버릇은 내 '한계'를 드러내주는 것일 듯도 싶다.

내 옛날 소설 속의 그 청년처럼 고해성사를 보기도 하지만 내가 또다시 그런 죄를 짓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스스로 확신할 수도 없는 것 같아 더욱 곤혹스럽다. 하지만, 나의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나는 운전을 하면서도 손에 묵주를 쥐고, 길바닥에 함부로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계속 기도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충남 태안의 18일치 <태안신문> '태안칼럼' 난에 게재된 글입니다.


  2007-03-09 09:40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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