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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 66회 마지막 여행. ~♠†/ 오기선[요셉]신부님 이야기 /원작 차 엘리사†♠~ 벳......
작성자양춘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10 조회수597 추천수8 반대(0) 신고

 

†♠~ 제66 회 마지막 여행. ~♠†/ 오기선[요셉]신부님 이야기 /원작 차 엘리사벳...... 


울 앞에서 타올로 머리의 물기를 닦던 요셉 신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새삼스러웠습니다.

“여보게 늙은이, 당신은 누구요?

 당신이 오 요셉인가?

 당신 언제 그렇게 늙었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이야기를 하던 요셉 신부는 어린 시절 동생과 수수께끼 하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먹을수록 많아지는 게 뭐게?”

“먹으면 줄어들지 많아지는 것이 어디 있어, 형?”

“글쎄 그런 게 있으니까 맞혀 봐.”

 “형! 나는 모르겠는데!”

“바보야, 그것도 모르니? 나이야, 나이!”

84세의 고령이 되자 요셉 신부는 고혈압과 당뇨병으로 병원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언제 하느님 곁으로 가게 될지 모르는 신세이건만 마음은 언제나 한결같았습니다.

마카오의 카모에스 공원과 필리핀의 롤롬보이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동상을 세운 요셉 신부는 중국 상해의 김가항, 횡당, 소팔가자에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동상을 세우는 것이 큰 꿈이요, 소망이었습니다.

1986년 북경과 상해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동상을 세우기 위한 전초 작업으로 한국 교회의 200주년 기념 동판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건강이 나빠진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요셉 신부는 교회의 모든 행사를 맡아 기록하고 있는 영화감독 김영걸 씨를 만났습니다.

“김 감독 부탁이 있네. 나와 함께 중국에 좀 다녀옵시다.”

“오 신부님, 몸도 불편하신데 중국에는 어떻게.., 그리고 저는 현재 작업 중이라서...”

“마지막 부탁이네. 아주 중요한 일이니 바쁘더라도 꼭 좀 같이 가세나.”

요셉 신부는 김영걸 감독을 설득하여 숙원 사업을 전수시킬,

사제 일곱 명과 평신도 몇 십 명을 데리고 중국 순례길[1990년 6월 27일]에 올랐습니다.

요셉 신부의 건강을 염려한 일행들은 홍콩의 공항에 도착하자 미리 준비해 온 휠체어를 폈습니다.

“신부님, 여기 올라앉으세요.”

“괜찮아. 아직은 걸을 만한데.”

“안 됩니다. 제대로 날짜를 채우고 돌아가시려면 어서 타세요.”

마다하는 요셉 신부를 떠밀다시피 휠체어에 앉히고 권태진 씨를 비롯한 일행들이 교대로 휠체어를 밀었습니다.

요셉 신부는 애국회[로마교황청에 속하지 않고 중국 정부에 속한 교회]에 속한 서안교구의 이두안 주교, 북경교구 남당의 부철산 미카엘 주교, 상해의 김노현 주교를 차례로 만나 순례의 목적을 밝혔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단순히 관광 온 것이 아니고 역사적, 문화적 소명을 띠고 왔습니다.

이곳에 한국의 첫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한국의 첫 영세자 이승훈 베드로의 동상을 세우고 양국 간의 문화적 교류를 갖기 위하여 왔습니다.

동상을 건립할 인부들은 이곳 사람들을 쓰고 동상을 세우는 비용은 모두 한국 교회에서 부담하겠으니 이 일이 꼭 성사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양국[ 중국과 한국] 관계가 증진되면 자연히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루빨리 요셉 신부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먼저 보내주신 동판은 잘 보관 하고 있습니다.

동상을 세울 자리나 잘 봐 두십시오.”

일곱 번째 중국 땅을 방문한 요셉 신부는 목적했던 일을 확정 짓지는 못하였지만 반응이 순조로워 많은 성과를 거둔 셈입니다.

중국에는 정부에 속한 애국회가 있고 또 이전부터 조용히 움직이는 지하교회[로마교회에 속했으나 두절 상태임]가 있습니다.

요셉 신부 일행은 지하교회의 성직자인 하 주교님과 임 바오로 신부님, 최경숙 데레사 수녀님을 조용히 만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요셉 신부는 임 바오로 신부님을 45년 만에 만나게 된 것입니다.

“ 오 신부님, 정말 반갑습니다.

  내가 죽기 전에 오 신부님을 만나게 된 것도 주님의 은총입니다.“

“오기선 요셉이 죽지 않고 임신부님 을 만나려고 이렇게 휠체어까지 타고    왔지요,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고생이야 말할 수 없이 많았지요. 지금은 많이 좋아진 셈입니다.

  간혹 애국회 와 만날 때도 있으니까요.”

요셉 신부는 같은 동포가 타국에서 고생하며 살고 있는 것이 매우 마음이 아팠습니다.

요셉 신부는 지하 교회의 운영실정과 애로 사항을 상세히 듣고 나서 약간의 기금을 전하고 아쉬운 이별을 하였습니다.


요셉 신부는 일행들을 데리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면서 1836년 15세의 세 소년이 고향을 떠나 의주 변문을 거쳐 먼 중국 대륙을 오가던 일과 신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던 일, 장춘 소팔가자에서 부제품을 받고 고국에 잠입했다가 다시 중국으로 와 상해 김가향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하여 전교하다가 1846년 잡혀서 참수당한 이야기를 일행들에게 상세히 들려주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이야기 중 재미있는 일화 한 가지 얘기할까요?

 우리는 이렇게 비행기나 자동차로 편하게 여행을 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교통수단이 열악했어요.

섣달그믐 날 하루 종일 눈썰매로 벌판을 달린 김대건 학사님이 날이 저물자 어느 주막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그 고장에는 음력 정월 초하루 새벽에 행운을 가져오는 귀신을 맞이하는 풍습이 있대요.

피곤한 몸으로 잠에 골아 떨어져 있는 김대건 학사님에게

“얼른 일어나요! 어서!”

“왜 잠도 못 자게 깨우는 거요?”

“지금 새해 첫 새벽이에요. 행운의 귀신이 오시니 마중 나갑시다.”

“어서 잘들 다녀오세요.

나는 지금 잠 귀신 맞이하느라고 정신이 없어요.”

하면서 돌아누웠습니다.

여관 주인은 김대건 학사님이 웃통을 풀어헤치고 자는 모습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대요.

“아이고머니나! 북두칠성이 있네!

 이 양반 잘못 건드렸다가는 큰 일 나겠군.”

김대건 학사님은 늘 속병이 있어서 가슴에다 스스로 일곱 군데에 뜸을 뜨곤 했는데 이 뜸자리를 북두칠성으로 보고 여관 주인은 이튿날 김대건 학사님에게 융숭한 대접을 해주었대요.”

요셉 신부는 84세의 고령이건만 지칠 줄 모르고 일행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제 67회 마지막 회. 하느님 품에 안긴 요셉 신부로 이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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