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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묵상모음 [사순 제3주 3월12일 월요일]
작성자원근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11 조회수539 추천수1 반대(0) 신고
♡ 3월12일 사순 제3주 월요일 복음모음 묵상 ♡ .

    ◆ ▥ 제1독서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5,1-15ㄷ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지만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루카 4,27).> 그 무렵 아람 임금의 군대 장수인 나아만은 그의 주군이 아끼는 큰 인물이었다. 주님께서 나아만을 시켜 아람에 승리를 주셨던 것이다. 나아만은 힘센 용사였으나 나병 환자였다. 한번은 아람군이 약탈하러 나갔다가,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아 왔는데, 그 소녀는 나아만의 아내 곁에 있게 되었다. 소녀가 자기 여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 어르신 께서 사마리아에 계시는 예언자를 만나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분이라면 주인님의 나병을 고쳐 주실 텐데요.” 그래서 나아만은 자기 주군에게 나아가,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가 이러이러한 말을 하였다고 아뢰었다. 그러자 아람 임금이 말하였다. “내가 이스라엘 임금에게 편지 를 써 보낼 터이니, 가 보시오.” 이리하여 나아만은 은 열 탈렌트와 금 육천 세켈과 예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 임금에게 편지를 전하였다. 그편 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 편지가 임금님에게 닿는 대 로, 내가 나의 신하 나아만을 임금님에게 보냈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나병을 고쳐 주십시오.” 이스라엘 임금은 이 편지를 읽고 옷을 찢으면서 말하였다.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시는 하느님이란 말인가? 그가 사람을 보내어 나에게 나병을 고쳐 달라고 하다니! 나와 싸울 기회를 그가 찾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들은 분명히 알아 두시오.”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는 이스라엘 임금이 옷을 찢었다는 소리 를 듣고, 임금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을 전하였다. “임금님께서는 어찌하여 옷을 찢으셨습니까? 그를 저에게 보내십시오. 그러면 그가 이스라엘에 예언자가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아만은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 대문 앞에 와서 멈추었다. 엘리사는 심부름꾼을 시켜 말을 전하였다.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십시오. 그러면 새살이 돋 아 깨끗해질 것입니다.” 나아만은 화가 나서 발길을 돌리며 말하였다. “나는 당연히 그가 나에게 나와 서서, 주 그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병든 곳 위에 손을 흔들어 이 나병을 고쳐 주려니 생각하였다. 다마스 쿠스의 강 아바나와 파르파르는 이스라엘의 어떤 물보다 더 좋지 않으냐? 그렇다면 거기에서 씻어도 깨끗해질 수 있지 않겠느냐?” 나아만은 성을 내며 발길을 옮겼다. 그러나 그의 부하들이 그에 게 다가가 말하였다. “아버님, 만일 이 예언자가 어려운 일을 시 켰다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아버님께 몸을 씻기만 하면 깨끗이 낫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 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 그러자 그는 어린아이 살처 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 나아만은 수행원을 모두 거느리고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 가 그 앞에 서서 말하였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 고리토1서. 10,1-6.10-12 <모세와 함께 한 백성의 광야 생활은 우리에게 경고가 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1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사실도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 아래 있었으며 모두 바다를 건넜습니다. 2 모두 구름과 바다 속에서 세례를 받아 모세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3 모두 똑같은 영적 양식을 먹고, 4 모두 똑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따라오는 영적 바위에서 솟는 물을 마셨는데, 그 바위가 곧 그리스도이셨습니다. 5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 대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 습니다. 사실 그들은 광야에서 죽어 널브러졌습니다. 6 이 일들은 우리를 위한 본보기로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악을 탐냈던 것처럼 우리는 악을 탐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10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이 투덜거린 것처럼 여러분은 투덜 거리지 마십시오. 그들은 파괴자의 손에 죽었습니다. 11 이 일들은 본보기로 그들에게 일어난 것인데, 세상 종말에 다다른 우리에게 경고가 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12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 하십시오.
    복 음 루카가. 4,24ㄴ-30 예수님께서는 엘리야나 엘리사같이 유다인만을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다. [나자렛에 도착하신 예수님께서 회당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 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 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엘리사는 엘리야 예언자를 계승한 예언자입니다.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 처럼 하느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과 큰 기적을 행할 능력, 그리고 하느님을 거역하는 그 어떠한 것과도 타협하지 않는 단호함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엘리야와는 다른 면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열려 있는 사고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시리아의 장수 나아만을 고쳐 준일입 니다. 엘리사는 시리아의 강력한 군사적 권한을 가지고 있는 나 아만의 나병을 치유해 줌으로써 하느님의 은총이 이방인에게도 미치고 있음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또한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요르단 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지시하면서 그의 믿음을 시험해 봅니다. 이는 세상의 권력을 쥐고 있는 그가 하느님 앞에서 겸손할 수 있는지, 그리고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으로서 신약의 예수그리스도 께서 완성시키실 새로운 세례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나아만은 겸손하게 이를 받아들여 하느님의 자비를 얻게 됩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구원 의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한정되어있 지 않음을 엘리사가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엘리사의 기적을 통하여, 하느님 백성은 선천적으로 태어나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 각자가 자신의 전적인 자유 의지 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가질 때에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 니다.
    ◆ "사실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 어떤 의미에서 나자렛 사람들은 하느님으로부터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오랜 세월 기다려 왔던 구세주 예수님께서 자기 마을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보통 큰 경사 가 아니었습니다. 오랜 기간 함께 동고동락해왔던 고향마을 사람들! 예수님께 참으 로 고마운 사람들, 정겨웠던 사람들, 꿈과 추억을 만들어 준 따뜻 한 이웃들이었습니다. 나자렛 사람들! 예수님께서 각별한 애정을 지니고 계셨던 사람들 이었기에, 그 어떤 사람들에 앞서 가장 먼저 복음을 전파하고 싶 으셨습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데 있어서 첫 번째 대상 자가 나자렛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철저하게도 무시합니다. 예수님 의 메시아성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불경한 사람으로 단죄하고 돌로 쳐 죽이려고 까지 합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 모두가 들고일어나 예수 님을 즉결심판에 처하려고 합니다. 일정한 법적 절차도 거치지 않 습니다. 죽입시다! 옳소! 하는 식의 인민재판식으로, 다수의 폭력 으로 예수님 한 사람을 처단하려고 합니다. 산 벼랑까지 끌고 가 서 밀어 뜨리 려 합니다. 다행히 예수님은 구사일생으로 궁지에서 빠져 나오셔서 자신의 갈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자신을 끝까지 거부하고 단죄하는 나자렛을 영원히 떠나십니다. 해도 해도 안 되다보니 아쉽지만 어쩔 수 없 었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고향마을을 등지십니다. 이제 고향마을 사람들은 예수님 복음, 구원의 기쁜 소식과는 거리 가 먼 철저한 이방인이 되고 맙니다. 반대로 비록 동향은 아니지 만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인 이방인들이 복음의 수혜자가 됩니다. 세례 받은 지 오래 되었다고 해서, 수도생활이나 사제생활의 연륜 이 많다고 해서, 성당 가까이에 산다고 해서, 단체장을 맡는다고 해서 절대로 신앙의 프리미엄이 붙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언제나 겸손하고 진지하게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의 섭리를 믿고, 하느님의 자취를 찾아 나가려는 매일의 노력이 우리에게 필 요한 것 같습니다.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으로 동족으로부터 발길을 돌리시는 예수님 의 안타까운 마음을 묵상하며, 우리 각자가 몸담고 있는 신앙공동 체의 영적인 상태는 어떠한지 진지하게 반성해보면 좋겠습니다.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묵 상 한 어머니가 아들과 함께 백화점에 들러 양복과 외투를 샀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포장지를 뜯었어요. 그런데 아들의 것으로 샀던 양복의 안주머니에 다이아몬드 반지가 하나 들어 있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손에 끼워 드렸지요. 어머니 손에 너무나 잘 어 울렸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이렇게 말해요. “어머니, 양복주머니에 반지가 들어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 도 없어요. 따라서 이 다이아몬드는 어머니의 것입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아들을 데리고 백화 점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있었던 자초지종을 백화점 주 인에게 말했지요. 백화점 주인은 이 말에 이렇게 답변을 해요. “이 옷을 사셨으니, 이 반지 역시 당신의 것이지요. 굳이 이렇게 돌려주지 않아도 될 텐데 왜 반지를 제게 돌려주시려고 하십니 까?” 이 말에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더니 이렇게 대답 했습니다. “저는 옷만을 샀을 뿐입니다. 즉, 이 반지를 산 적이 없다는 것이 지요. 더군다나 저희는 예수님을 믿는 크리스챤 이거든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그들은 주님께 서 말씀하신 계명들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합니다. 참, 때로는 구 별이 되기도 합니다. 오히려 더 못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거든요. 예수님께서는 죄를 지으라고,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못된 짓만 하 라는 말씀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인들이 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죄를 범하면서 못된 삶을 영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차별 없이 이 세상 사람들을 받아 주신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기 위해 서 똑같이 생활하는 것일까요? 종종 이런 분들을 만납니다. 주일에 미사 한 번 참석한 것으로 신 자로서의 의무를 다했다고 말씀하시는 분, 자기를 위한 기도만을 바치면서도 기도생활을 아주 열심히 하고 있다고 착각하시는 분, 사랑하기보다는 사랑받기를 원하면서도 왜 다른 이들은 사랑을 실천하지 않느냐고 큰 소리 치시는 분……. 이런 분들이 주장하는 신자의 모습은 어쩌면 오늘 복음에 등장하 는 고향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전에 예수님을 본 적이 있다면서 그리고 전부터 알고 있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섣부르게 판단하지요.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은 전혀 보려고 하지 않고 단지 예전의 모습 그리고 예수님의 일가 친척 모습만을 보고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고향 사람들에게 다른 고장에서 보였던 놀라운 기적들을 행해 보라고 했던 것 같 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성서의 예를 들어 이방인들이 오히려 하느님 은총의 선물을 받게 됨을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아주 적은 의무의 실천만으로 신자라고 주장하는 이의 모습은 고향 사람들과 똑같지 않나 싶습니다. 자신이 신자로써 이렇게 행동했으니 그리고 예전부터 예수님을 알았으니, 이 정 도는 내게 베풀어 주셔야 한다는 섣부른 착각과 판단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신자라고만 말만 하는 우리들에게 오히려 당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즉 사랑을 더 열심히 실천하는 사 람들에게 주님의 은총의 선물이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그냥 예수님을 아는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아는 만큼 더 열심히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그래서 “저는 크리스챤 이거 든요.”를 자신있게 외치는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 신앙인답게 생활합시다. 가슴에 남는 느낌 하나(정용철) 나에게는 소망이 한 가지 있습니다. 나의 한 가지 소망은 내 마음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낮아지는 것입니다. 높아지기보다는 낮아질 때 마음이 따뜻해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날마다 마음이 낮아지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나에게는 소망이 한 가지 있습니다. 나의 한 가지 소망은 내 생각이 복잡해지는 것이 아니다 단순해지는 것입니다. 생각이 복잡할 때보다 단순해질 때 마음이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날마다 생각이 단순해지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나에게는 소망이 한 가지 있습니다. 나의 한 가지 소망은 내 마음이 부유해지기보다는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부유해질 때보다 가난해질 때 마음이 윤택해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날마다 마음을 비워 내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나에게는 소망이 한 가지 있습니다. 나의 한 가지 소망은 나의 자랑할 것을 찾기보다 나의 부끄러움을 찾는 것입니다. 나를 자랑하기보다 나를 부끄러워할 때 내 삶이 아름다워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날마다 내 부끄러움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나에게는 소망이 한 가지 있습니다. 나의 한 가지 소망은 기쁨보다 슬픔을 더 사랑할 줄 아는 것입니다. 기쁨은 즐거움만 주지만 슬픔은 나를 성숙시키기 때문입니다. 나는 슬픔이 올 때 그것을 내 인생의 성숙의 기회가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나에게는 소망이 한 가지 있습니다. 나의 한 가지 소망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쉽지만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랑의 기도보다 용서의 기도를 먼저 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 ◆ 묵 상 자료 : 가톨릭 넷톨릭 ◆ 오늘의 말씀은 자신의 생각과 고집에 사로잡힌 사람들에 대해서 경종을 울리십니다. 예수님의 고향사람들은 예수님의 지혜에 탄복하면서도 예수께서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띠고 계시 다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모두 보고 알던 고향사람들로서 성령 을 받으신 예수님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일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생각이 반드시 옳다고 고집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 한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예로, 제 1독서에는 시리아 장군 나아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이스라엘에 위대한 예언자가 있다고 해서 나병을 고치려고 찾아왔지만, 엘리사가 요르단 강물에 일곱 번 목욕하라는 말을 듣고 화가 치밀어 발길을 돌리려고 했습니다. 나아만은 엘리사가 친히 손으로 자신을 어루만지는 정도의 정성 스러운 행동을 할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나아만은 부하의 충고를 들을 수 있는 정도의 아량과 겸손이 있었기에 나병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고 화가 난 채 발길을 돌렸다면 결국 나병을 앓다가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 니다. 철 지난 바닷가에 놀러 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 동네 주민을 만나 이런 곳에 사시니까 참 좋으시겠다고 말씀 드렸더니, 좋긴 뭐가 좋으냐며 피서철만 지나면 쓰레기 치우느라 정신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 눈에는 아름다운 바닷가가 보였지만, 그분의 눈에는 바닷가에 널린 쓰레기가 더 크게 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은 평범함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혜안을 청해 봅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제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소서. 제가 한번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남이 그르다고 몇 번을 얘기해도 안 듣고 제가 한번 그른 것이라고 단정하면 옆에서 옳다고 설명해도 귓등으로 듣는 완고함의 함정에서 저를 구하소서. 주님, 그리 명석하지도 못한 생각을 믿고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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