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곱게 죽어주기 바랐던 부끄러움 . . . [여형구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12 조회수900 추천수8 반대(0) 신고

 

 

 

 

 

  사제 서품 후,

  얼마 안 되어 교도소 사목 신부로 있을 때의 일이다.

 

  혜화동 성당에 얹혀 살며서 교도소 사목을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서대문 구치소 교무과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늘 급한 전화 연락이 갈지 모르니 어디 가지 말고

  집에 대기하고 있으라 했다.

 

  이런 연락은 그 날 사형 집행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긴장이 되었다.

 

  조금 후에 연락을 받고 서대문으로 달려가니 역시 사형집행이...

  그 날 집행자 중에는 천주교 신자가 3명이었고,

  천주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2명이 더 있었는데,

  나는 우선 내가 한 주일에 한 번씩 만나 성체를 영해 주었던

  그들이 더욱 걱정이 되었다.

 

  과연 이들이 이 사형 집행을 잘 받아들일까?

  자신들의 죄를 생각하지 않고 마지막 고해성사, 영성체를

  거부하지는 않을까?

 

  혹시 거부를 한다면...

  그 집행장에 있는 많은 교도관들에게 신앙의 힘이라는게

  얼마나 힘없는 것으로 비쳐질까...?

  하는 두려움으로 초조히 기다리고 있었다.

 

  사형 집행이 시작되었다!

  두 사형수가 고해성사를 비롯해 견진성사를 받고,

  영성체를 진지하게 하고,

  거기 있는 교도관들에게 그동안 고마웠다는 작별 인사를 하고는

  잘 죽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사람에게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내게만 사건이지 그 곳에 있는 다른 이들에게는

  아무 문제도 아닌 사건이었을지도 모른다.

 

  견진성사와 성체를 영해 주었는데,

  그는 사형을 집행하겠다는 검사의 말이 막 떨어지자마자

  할 말이 있다는 것이었다.

  검사가 말을 해보라 하니 이런 요지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 나는 이 사건의 범인이 아닙니다.

    이 사건에서 경찰이 제시했던 그 구두는 내 것이 아닙니다.

    나는 돈 없고 빽이 없어 범인으로 몰렸고,

    올바른 재판도 제대로 못 받고 이렇게 죽게 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그 사람은 그동안 한 번도 나에게 사건에 대해서 말한 적이 없었다.

  또 그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본인이 사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내 쪽에서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 나의 불문율이었다.

 

  곱게 죽어주기를 기다리던 내게는 대단한 충격이었고...

  내가 과연 이 사람에게 절실한 삶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맥없는 존재였던가! 하는

  허무감이 엄습하는 것이었다.

 

  그 때,

  나는 이 친구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는 느낌과 함께,

  이 사형은 마땅히 재고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혼란에 빠질 즈음,

  검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에 대한 세 번의 재판 기록이 다 사형으로 확정되었고,

   당신이 재심을 청구한 것도 기각판정이 났습니다.

   오늘 사형 집행을 하라고 명령이 하달된 이상,

   지금 이 자리에서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에게 곧바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줄에 매달려 흔들리는 그를 망연자실 바라보고 서 있으면서......,

 

  진실인지 아닌지 지금도 모르지만

  '진실 앞에 이렇게 아무 힘없는 것이 나 인가?' 느낌과 함께

  나에게 주어진 소임이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 사형수에게

  곱게만...

  열심히만 죽어주기를 바라던 내 마음이

  한 없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 [치마입은 남자의 행복] 중에서 -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