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많은 사람들이 용서의 문제로 고민을 한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한테버림받은 청소년, 돈 관계로 가장 가까운 친구·친척을 평생 원수로 삼고 사는 수많은 사람, 구타와 이혼으로 갈기갈기 찢긴 마음으로 살아가는 부부들, 또한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몰살시킨 만행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민족들, 테러가 계속되는 가운데도 반목하며 사는 사람들, 역사의 풍랑 속에서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떤 이는 가해자가 되고, 어떤 이는 피해자가 되는 비극에 이르기까지 용서는 우리 곁에 늘 함께하는 문제다.
스탠포드 대학의 프레드 러스킨 교수는 용서에도 훈련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용서 훈련을 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서적으로 안정적이고 삶에 대한 자신감도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용서란 삶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때도 평온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안에서 불쑥 솟아나는 화를 다스리고, 우리의 상처 받은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 용서라고 말한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말속에 담긴 진실은 용서란 어쩌면 한 번의 결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말이 아닐까? 용서는 용서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용서했다는 순간의 결심이 매일의 삶에서 반복적으로 내 삶의 태도를 결정하는 과정, 화가 일어나는 순간을 극복해 가는 매순간이 모여서 용서라는 인간의 위대한 행위가 완성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 안에 용서의 근육을 키우기를 바라신다. 우리 삶에서 수없이 드러나는 화로 인해 우리 몸과 정신이 상하지 않도록 초대하고 계신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의 시간을 우리는 용서를 생각하며, 용서와 함께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사순시기, 어쩌면 용서를 묵상하기 가장 좋은 때인지도 모른다. 수난받으시는 예수님과 함께 용서의 힘이 내 안에 자라나도록 열심히 훈련하는 기간이 바로 사순시기인 것이다.
최성기 신부(서울대교구 수궁동 천주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