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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부 81주기에 처음으로 '연미사'를 지내다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14 조회수441 추천수1 반대(0) 신고

 

               조부 81주기에 처음으로 '연미사'를 지내다


      

<1>

내 사촌 큰형님 댁은 일년에 기제사를 여섯 번 지낸다. 증조부와 증조모, 조부와 조모, 그리고 내 백부와 백모 제사다. 몇 년 전까지는 고조부와 고조모의 제사도 지냈는데, 제사를 준비하시는 사촌 큰 형수님이 연로해지시면서 너무 힘이 드신 관계로, 고조 제사는 지내지 않기로 집안 가솔들이 합의를 보았다.

고조부터 그 위 조상들에 대한 제사는 매년 한식날에 250여 년의 뿌리가 내려져 있는 인근 향리(태안군 근흥면 두야리) 8대 조부모님의 '효열정문(孝烈旌門)' 앞에서 지내는 '시향(時享)'으로 대신한다.

겨레붙이들의 참여 범위가 비교적 넓은 시향은 그런 대로 괜찮은 풍경이지만, 기제사의 모습은 전혀 옛날 같지 않다. 사촌 큰형님 내외와 작은형님 내외, 작은형님의 중학생 손자, 우리 부부, 혼자 살고 있는 사촌 누이, 이렇게 기껏해야 일곱 명 정도가 함께 한다.

쓸쓸하다. 오늘의 쓸쓸함보다도, 이런 제사 풍경도 낙조(落照)의 음영 앞에서 어렵게 잔명(殘命)을 이어가는 것인 듯싶어, 내일의 공동(空洞) 같은 것이 지레 더욱 쓸쓸하다. 그것은 '단절과 상실의 비애' 같은 것도 안겨줄 법하다.

연로하신 사촌 형님들을 보노라면 정말 어떤 '끝'을 향해 다가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우리 집안의 제사 풍경도 어쩌면 우리 세대가 마지막으로 지키고 향유하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사촌 큰형님이 언젠가 "우리 다음 대(代)부터는 제사가 사라진다 하더라도, 우리 대까지는 끝까지 정성껏 제사를 지내야지"라고 하신 말에서 묘한 애처로움을 느꼈던 기억이 다시금 선연하다.

그래서도 나는 더욱 큰댁 제사에 열심히 참여했다. 고향에 남아 있는 우리 대 몇 명만이 겨우 함께 하는 쓸쓸한 제사지만,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아내를 매번 동반하곤 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는 벌써 여러 번 계속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의 조모, 증조모, 증조부 제사를 지내지 못했는데, 이 달 들어서도 지난 11일 조부의 제사를 지내지 못했다.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사촌 큰 형님 댁에서 아예 제사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이다.

올해 77세이신 사촌 큰형님이 병원에 입원하신 까닭이다. 젊은 시절 정미소의 도정 작업 중에 입은 부상으로 오른쪽 다리가 불편하여 오래 전부터 지팡이에 의지하고 어렵사리 거동을 하셨던 분인데, 집 거실에서 두 번이나 넘어지신 바람에 그만 엉덩이뼈를 크게 다치시고 말았다.

사촌 큰형님이 엉덩이뼈 수술을 받고 병상 생활을 하시니, 형수님도 함께 병실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노인네가 엉덩이뼈 수술을 했으니 병상 생활이 길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연유로 올해 들어서는 벌써 네 번이나 조상님들의 기제사를 지내지 못한 것이다.

<2>

나는 큰댁 제삿날마다 아침에 정육점을 들러 산적거리와 국거리로 쇠고기 2근씩을 사다가 큰댁에 드리곤 했다. 겨우 쇠고기 2근을 사다 드리는 것이 죄송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일년에 여섯 번씩 그 담당을 빠짐없이 해왔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는 계속 제사를 지내지 못하니, 일단은 사촌 큰형님이나 작은형님이나 나나 비용과 수고를 덜게 된 셈이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할 리는 없다. 오랜 세월 해마다 지내오던 제사를 갑자기 지내지 못하는 데서 오는 일종의 공허감 같은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연유로 올해 설날의 '조상을 위한 합동위령미사'에 더욱 신경을 썼다. 나는 해마다 설과 추석과 11월 '위령의 달'에는 세 개씩의 '미사예물' 봉투를 준비한다. 하나에는 내 친가 쪽의 최근에 세상 떠난 이들의 이름과 '아무개의 모든 조상을 위하여'라는 지향을 적는다. 다른 두 개에는 각각 외가와 처가 쪽 고인들의 이름을 적고, 역시 어머니와 아내의 이름으로 모든 조상들을 위한 지향을 적는다.

그런데 올해 설에는 내 친가 쪽 미사예물 봉투에 전에는 적지 않았던 세 분의 이름을 적었다. 증조부와 증조모, 그리고 조모의 이름을 적었는데, 증조모와 조모는 족보상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고 '영산 김씨', '경주 김씨'로 적혀 있어서 그대로 따르자니 새삼스럽게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아무튼 전에는 '아무개의 모든 조상' 안에 포함되어 있던 분들(세 분)을 올해 설에는 미사예물 봉투에 개별적으로 이름을 적어 합동위령미사를 지낸 것이다. 그러고 나니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데서 오는 공허감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오히려 세 분 조상님께 좀 더 면목이 서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서울 삼성의료원으로 사촌 큰형님을 두 번 문병하면서 형님께 확실하게 말씀드렸다. 큰형님은 천주교 신자가 아니지만 내 얘기를 귀담아들으며, 적이 위안을 얻으시는 기색이었다.

나는 큰형님의 그런 모습에서 고마움을 느꼈다. 나는 사촌 작은형님이 천주교 신자가 되신 서너 해 전부터는 큰댁에서 제사를 지낼 적마다 꼭꼭 음복 전에 기도를 해왔는데, 그때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신 큰형님도 내 기도에 동참하는 모습이어서 여간 고맙지 않았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대신 올해는 좀 더 설날의 합동위령미사에 신경을 썼노라는 말씀을 드린 것인데, 내 뜻대로 큰형님께 확실한 위안이 되었으니 나로서는 더욱 기쁘고 고마운 일이었다.

<3>

지난 11일(음 1.22)은 내 조부님의 기일이었다. 1920년 생이신 내 선친이 겨우 6세이시던 시절에 조부께서 별세하셨으니, 올해 81주기가 되시는 것을 쉽게 헤아려볼 수 있었다.

(선친 6세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9세 때 돌아가신 할머니의 제사를 지낼 때마다 조실부모하고 장형(長兄) 집에서 어렵게 성장하신 선친의 소년 시절 일화들이 떠오르고 여러 가지 상상들이 겹쳐져서 선친에 대한 연민을 되새기곤 한다. 이태 전에 작고하신 숙부님에 대한 연민도….)

그런데 올해는 사촌 큰형님의 입원이 길어지는 관계로 조부님의 제사도 지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예년 같으면 아침 일찍 정육점에 가서 쇠고기 두 근을 사 가지고 큰형님 댁으로 갈 텐데, 그 행사부터 중단되어 버린 상황이었다.

아침부터 이상한 단절감과 허전함을 느끼는 기분이었다. 그런 묘한 기분 속에서 나는 불현듯 '연미사' 생각이 났다. 쇠고기 두 근 값을 내 지갑 안에 그대로 남겨 두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 돈으로 미사예물을 마련하여 조부님을 위한 위령미사를 지내자는 생각이었다.

아침에 어머니께 내 생각을 말씀드리니, 어머니는 요즘 들어 부쩍 '부조금' 지출이 많은 상황을 걱정하면서도 찬동을 해주셨다. "하느님을 모르고 사셨던 분이지만…" 하신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담겨 있을 터였다.

나는 책장 서랍 속에 늘 준비해 놓고 있는 미사봉헌 예물봉투를 하나 꺼내어 3만원을 넣은 다음 아내에게 주었다. 미사예물 봉투에 정성껏 글씨 새기는 일은 늘 아내 몫이었다.

아내는 지병수(池炳洙)라는 조부의 함자와 '경주 김씨'라는 조모의 이름을 적었고, 날짜와 시간을 적은 다음 '위령미사' 난의 '기일'이라는 글자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리고 '메모' 난에 "조부님의 81주기를 맞이하여"라는 말을 적었다. 맨 아래 '봉헌자' 난에는 내 이름을 적었고….

나는 조부의 함자와 내 이름자가 함께 씌어져 있는, 천주교의 표식이 새겨진 미사예물 봉투를 앞에 놓고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내가 일찍부터 해마다 설과 추석 명절에, 또 11월 '위령의 달'에 '모든 조상을 위한 합동위령미사'를 열심히 지내오긴 했지만, 조부님의 기일을 맞아 조부모를 위한 개별 위령미사를 지내기는 실로 처음이었다.

문득 조부모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하느님을 모르고 사셨던 조부모님의 영혼을 위해 내가 오늘 위령미사를 지낸다는 사실이 내게 무한한 기쁨을 안겨주는 것 같았다.

자손 덕에 내 조부님도 저 영혼 세계에서 '득(得)'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쁘실 것인가. 비록 내 조부님이 하느님을 모르고 종교를 갖지 않았어도, 그것 때문에 지금 '지옥'에 가 계실 것으로는 믿지 않는다.

세상의 죄를 씻고 영혼을 정화하는 '연옥'에 가 계실 것으로 믿는다. 그런 조부님의 영혼을 천국으로 밀어드리기 위해 내가 오늘 미사를 지내는 것이니, 조부님께서 내게 얼마나 고마워하실 것인가.

비록 예수님을 모르고 믿지 않았던 사람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통공(通功)'의 믿음은 내게 얼마나 큰 기쁨과 희망을 주는가.

그러므로 내가 오늘 조부모님의 영혼을 위해 미사를 지내는 것은 그 기쁨과 희망을 좀더 분명하게 스스로 확인하는 일이기도 할 터였다. 또 부모와 모든 조상들의 영혼까지 생각하는 고귀한 '효(孝)'의 실체를 내 자손들에게도 이어주어 모든 조상들이 계속적으로 득을 보게 하려는 일이기도 할 터이고….

그런 생각으로 하루종일 즐거운 마음이었다. 비록 사순절 기간이지만, 사순 제3주일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잘 지낸 셈이었다.  


  2007-03-14 09:20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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