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라는 말씀을 두 번씩이나 강조하신다. 말씀의 요체는,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마치 모세가 요르단강 동쪽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선포하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스라엘아, 들어라!”(신명 6,4) 모세는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5)라고 역설한다. 예수께서 강조하는 말씀도 결국은 하느님을 잘 알아 모시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잘 들어야 한다. 그래야 하느님을 제대로 알고 섬길 수 있기 때문이다. 베네딕토 성인도 그의 규칙서를 “아들아, 들어라!”는 말로 시작한다. 모든 것은 잘 듣는 데서 출발한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을 배신하고 그 대가를 치른 까닭은 잘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듣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가을 전진상 교육관에서 교류분석 강좌를 들었는데, 우리는 대부분 상대방의 말을 에누리해서 듣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남의 말을 에누리해서 듣다 보니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고, 그래서 당연한 결과지만 결코 말을 잘할 수도 없다. 지금 세대는 참으로 많은 말을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타인의 말을 잘 듣지 않으니 잘 알지 못하고 잘 말할 수도 없으며 결국은 많은 말이 울리는 꽹과리처럼 빈 소리로 끝나고 만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귀담아듣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리라. 미사에 참례해도 몸만 성당에 있고 마음은 온통 사사로운 일들로 가득 차 있으니 하느님의 말씀을 어떻게 귀담아들을 수 있겠는가. 많은 유혹이 삶의 현장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하느님의 자리를 넘보는 사탄에게 이끌리게 되고 삶을 무질서하게 만든다.
예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내 말을 잘 듣고 하느님을 잘 알아 모시라는 것이다. 잘 알아듣고 하느님이 누구신지 알아서 잘 모시자! 시편 작가처럼 하느님은 우리의 힘이시고 우리의 피난처이시며, 어려운 고비마다 우리를 구해주시는 분으로 첫 새벽에 도움을 주시는 분이라고 찬미노래 부르자(시편 46장 참조).
정복례 수녀(성모영보수녀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