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 중에 예수께서 유다인들에게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고 질책하신다. 최근 몇 년 동안 회자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코드’라는 말이다. 특히 정치권 뉴스에서 자주 듣게 된다. 이른바 코드 문화란 끼리끼리 문화를 말한다. 사자성어 중에 ‘초록동색(草綠同色)’이라는 말이 있다. 풀색과 녹색은 같다는 뜻으로, 같은 처지나 같은 종류의 사람들은 그들끼리 함께 행동한다는 뜻이다. 이와 유사한 뜻을 지닌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말이 있다.
이런 말은 요즘 말로 ‘코드’가 같은 사람들의 모임을 연상시킨다. 곧 코드가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 영광을 주고받는다. 그들과 함께하지 않는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끼게 만든다. 예수님 말씀대로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는데, 이들은 사람뿐 아니라 하느님까지도 소외시킨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명동성당 상설고해소를 찾은 일이 있었다. 성당 비탈길을 올라가는데 맞은편에서 내려오던 어떤 자매님이 맞은편에 있는 누군가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 강남으로 이사했어요!” 그러자 내 뒤에서 누군가 볼멘소리를 했다. “흥, 강남? 강남, 좋아하시네!” 나는 내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상대적 박탈감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는 약자의 피해의식 같은 것이었다.
끼리끼리 문화 또는 코드 문화로 살아가는 것은 자연인으로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비슷한 사람한테서 동질의식을 느끼고 가장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은 이런 자연인의 모습을 뛰어넘어야 한다. 바로 예수님이 그 모델이시다. 예수님은 당대의 비천한 사람들, 심지어 죄인들마저 끌어안으셨다. 이제 우리는 무의식중의 끼리끼리를 벗어나 깨어 있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야겠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원하시는 하느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자기들끼리’라는 말은 없고, 다만 ‘우리 모두’가 있을 뿐이다.
정복례 수녀(성모영보수녀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