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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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냥 주지 ! . . . . . . . . . . . [최혁순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3-28 조회수1,098 추천수14 반대(0) 신고

 

 

 

 

내가 사목하는 곳은 자그마한 시골 본당이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족함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열심한 신자분들의 신앙심으로 꾸려가는 그런 소박한 신앙 공동체다.


그런데 요즘 사는 것이 힘들다 보니

이 작은 시골 본당에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물질적 도움을 청하러 오시는 분들이 많아진다.

 

얼마 전에는 무전여행을 하고 있다는 한 청년이 와서

하룻밤 잠자리를 청한 일이 있다.


몇몇 신자 분들이

어떻게 모르는 사람을 사제관에 재울 수 있느냐 며 반대했지만

난 잠자리와 더불어 저녁 식사까지 대접해 주었다.

 

그 다음날이었다.

청년이 보이지 않았다.

아침 일찍 떠났구나..! 라고 생각하고 본당 업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오후 늦게 그 청년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돈을 좀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 청년을 한참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은근히 신경질이 났다.

 

그래서 그 청년에게

육신 멀쩡한 사람이 왜 일을 하지 않고 공돈을 바라느냐?

몸이 불편한 분들도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사는데

왜 그렇게 사느냐? 고 다그쳤다.

 

다시 한번 사정하는 그 청년을 난 그냥 보냈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모습이 괘씸했다.


저녁 미사 후 평소 습관대로 성당에서 묵상을 했다.

그런데 자꾸 귓가에 무엇인가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냥 주지...!

   나도 아무 조건 없이 따지지 않고 주었는데......,

   그냥 주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듯 했다.

 

그냥 주지!

 

그랬어야 했다.

그냥 주었어야 했다.

아무것도 따지지 말고......,

고개 숙여 부탁했던 그 모습을 받아들였어야 했다.


강론 때 아무리 사랑을 이야기하면 뭐하나!

실천하지 않는 사랑은 공허한걸......,

 

또 한번 주님께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그 청년에게도 용서를 구한다.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

그것은 예수를 지금 여기서 사는 것임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어느 책에서 읽었듯이

예수처럼 살기 위해 나는 내 안에 죽은 예수를 살려야 한다.

내 생각, 내 욕심, 내 변명 때문에 죽은 예수를 다시 살려야 한다.

 

내가 상처 주었던 그 청년에게서 다시금 깨닫는다.

내 안의 예수를 살리는 것이 매일 삶에서 부활을 사는 것임을......,


사제로 살면서 부족했던 많은 모습들이

이제는 사랑 안에서 채워지기를 기도한다.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조건 없는 사랑을 주님에게서 다시 배운다.

주님께서 그러하셨듯이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주님! 이젠 따지지 않고 그냥 줄게요!

 

 

 

- [사목일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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