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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저는 아니겠지요?'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03 조회수685 추천수3 반대(0) 신고

저는 아니겠지요?(마태26,14-25)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서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 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예수님을 팔아 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스스로 말하였다."하고 대답하셨다.

 

 요나리의 창문이라는 것이 있다. 즉 인간은 자기를 아는  네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다른 사람은 모르고 자기만 아는 부분이 있고, 둘째는 자기는 모르고 남이나에 대해서 아는 부분이 있고, 셋째, 나에 대해서 나도 알고 다른 사람도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도 모르고 다른 사람도 나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부분 즉 하느님만이  아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에게는 누구나 네 부분이 있는 데 그것이 마치 창문 같다고 해서 요나리의 창문이라고 한다. 요나리라는 사람이 주장한 의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간관계에 맺는데 있어서 나도 알고 다른 사람도 알고 있는 부분이 많을 때 서로 친하게 지낼 수 있다. 왜냐하면 서로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비밀이 없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통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그래서 대화를 나누기가 쉽다.

 

특히 부부간에는 이렇게 서로 아는 부분이 조금씩 넓어져 가야 한다.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와 하느님은 모든 것을 털어놓고 지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관계를 유지하려면 내가 하느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아야 하고 나의 모든 비밀을 하느님께 말씀드려야 한다. 그러려면 복음을 많이 읽고 알아야 한다. 복음을 아는 것이 하느님을 아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고 자기만 아는 부분이 많을 때 비밀이 많은 사람이다. 음흉한 사람이다. 그 사람 속에 무엇이 들어 앉아있는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하다. 서로 대화가 안되고 가까이 갈 수가 없다. 이런 사람은 점점 모든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하고 결국 자기 혼자 지내게 된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 자기 혼자서만 많은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웃과 서로 나누며 생활해야하고 부부간에도 어려운 일이나 좋은 일이나 슬픈 일이나 행복한 일이나 서로 나눌 때 정이 들고 하나가 된다.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식으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삭막한가. 전혀 비밀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비밀이 적을수록 편하고 모든 이들과도 함께 어울려 잘 지낼 수 있다.

 

우리는 자기를 아는 부분이 4분의 1밖에  안되기 때문에 사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르고 살아간다. 그래서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남을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남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나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는 것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남의 말을 듣지 않을 때 독선가가 되고 점점 자기 자신 안으로 고립되어간다.

 

우리가 본의 아니게 살아오면서 이런 저런 잘못을 많이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언제나 고칠 수 있고 다시 시작할 수가 있다. 그래서 늘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을 성찰하는 사람만이 자기를 교정할 수 있고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을 성찰하지 않고 살다가 더 이상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도 없이 이 세상을 마치게 될 때 그리하여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유다를 보시고 "사람의 아들을 팔아 넘기는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라는 말을 듣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다.

 

예수님은 유다에게 끝까지 기회를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자신을 보기를 부정하였다.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저는 아니겠지요?"라는 자기 부정이 결국 유다라는 한 인간이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인생을 살게 만들었다.  

 

 내일부터 성삼일이 시작됩니다. 성삼일은 예수님 삶의 요약이며 구원사업의 완성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반드시 치루셔야 할 관문이었습니다. 우리도 반드시 이 성삼일을 지나야 합니다. 수난과 죽음과 부활은 구원에 이르는 코스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예수님께 감사 드리며 예수님이 지나가셨듯이 그리고 부활하시어 다시 우리에게 오셨듯이 우리도 이 길을 지나가야 합니다.

 

                                                    -유광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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