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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미사의 소프트웨어 I[제 21회]/ 정훈 베르나르도 신부님.
작성자양춘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7-04-03 조회수637 추천수8 반대(0) 신고

 

미사의 소프트웨어 I[제 21회]/ 정훈 베르나르도 신부님.

   

♣~ 사제와 인격적으로 인사하기. ~♣


번 장에서는 ‘사제와 인사하기’에 대하여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고 사제가 인사하면 신자들도“또한 사제와 함께.”하고 응답하는 짧은 기도 안에 담긴 뜻을 되새겨 보려면 우선 우리가 지니고 있는 사제에 대한 고정관념부터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 사제에 대한 세속적인 오해. ~

          

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또한 사제와 함께.:하는 인사 기도에 우리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소프트웨어는 ‘고개를 숙인다.’는 정도입니다.

이 부분에서 사제와 제대로 인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시는 분이 많습니다.

사실 저도 어려서 사제란 말뜻을 모를 때에는 이 부분에서 항상 동물원의 사자와 신부님을 헷갈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또한 사제와 함께.”하고 신자들이 사제에게 답례할 때 철없던 저는 으르렁거리는 동물원의 사자를 머리에 떠올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 사제란 말뜻을 알게 됐는데도 잘못된 소프트웨어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왜 내가 고개를 숙여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꾸벅이기만 했습니다.

한동안 신부님에 대한 반발심에서 절대로 고개를 숙이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 인사 기도에는 예수께서 대리자인 사제의 인격 안에 함께하시기 때문에 나중에 성체를 받아 모실 수 있다는 생각까지 담아야 합니다.

나중에 사제가 되어 미사를 집전하면서 옛날 제 모습을 여러 신자들에게서 자주 발견하게 되는 것이 좀 씁쓸합니다.

평신도였던 제가 미사를 집전하시는 신부님들과 인격적인 인사를 하지 못했던 것처럼 많은 신자들이 저와 인사할 때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물론 유쾌하지 않은 체험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섭섭함보다 온전한 미사 참례에 장애가 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예비신자 시절에 이와 비슷한 일을 많이 경험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미사에 왔는데 신앙의 선배들이“또한 사제와 함께.”하는 뜻 모를 주문(?)을 큰 소리로 외치며 앞을 향해 고개를 숙여 절을 하면 어쩔 수 없이 따라해야하는 기분은 참으로 기묘할 것입니다

일종의 생경스러운 소외감이랄까, 아무튼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평상시 일반 신자가 사제와 인격적으로 만날 기회가 적고, 그저 주일날 얼굴이나 한 번 보는 정도이기 때문에 자기 본당 신부 이름을 모르는 신자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사제’에 대한 관념은,

‘우리와 다른 사람’으로 간주하는 풍조가 강합니다.

그림동화 속에 사는 사람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세속적인 잣대로 사제를 오려 붙이다 보면, 사제직 안에‘하느님의 대리자’란 면과 어쩔 수 없이‘보잘 것 없는 인간’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는 것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 본당에서 신자들이 모이면, 자기 본당 신부님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이러쿵저러쿵 칭찬이나 비난을 하면서 재미있어합니다.

근본적으로 예수의 대리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또한 이런 장애는 남이 가르쳐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잣대로 키 작고 못생기고 머리도 나쁜 것 같고 거기다가 말주변 없는 사제는 우습게 생각하고 키 크고 잘생기고 머리도 좋고 말까지 잘 하는 사제는 너무나 멋있고...

거룩함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신앙이나 사제직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기준으로 판단하고 평가하면서 죄를 짓습니다.

이러한 고정 관념을 극복하지 못하면 미사 시간에 사제와 인격적인 인사 나누는 일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서로 속고 속이는 비인격적 관계가 고착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 여러 선입관에 따른 가설을 설정하고 그 사람을 떠 보기위해 이상한 여러 실험도 하고 일종의 법칙을 만들려는 노력도 합니다.

예를 들어 직원을 뽑는 면접관들이 신입사원 들을 뽑을 때 눈썹과 눈 꼬리가 치켜 올라간 사람을 보면,“성질 꽤나 있겠군!”또 눈썹과 눈 꼬리가 처진 사람을 보고는 “느려터지겠군.!”하는 선입관을 갖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런 것은 물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의 인격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어느 본당의 공동체이건 간에 그 본당 신부님이 그나마 가장 거룩하다고 공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신부님이 인격적으로 많은 인격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있고 여러 실수가 잦더라도 그 본당에서는 개중에 제일 거룩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신앙에 안전하고 자신에게도 유익 합니다.

아주 추악한 신부님이 계시다고 합시다.

그래도 그 인격 안에서 아주 좁쌀만 한 거룩함이라도 찾아서 내 영혼이 함께할 수 있어야 미사 중에“또한 사제와 함께.”하는 인사가 기도로 성립합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는 인사 안에는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사제의 인격이 담겨 있어야 하듯이,“또한 사제와 함께.”하는 응답에도 그 신부님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려는 신앙적인 노력과 의지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미사를 시작하고 사제와 인사할 때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분과 인사하지 않으면 미사가 벌써 꼬이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주님께서 어려분과 함께.”하는 미사 중의 인사 기도는 고유한 사 제 개인의 인격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를 대할 때에는 모든 고정관렴을 버리고 눈곱만한 거룩함이라도 발견할 수 있어야“또한 사제와 함께.”하는 응답 기도가 미사를 통해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사제와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은 하느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내 인생의 모든 인격적 만남의 좋은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적인 관계를 맺어본 경험이 부족한 우리가 공직도 아닌 성직을 수행하는 사제와 올바른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신앙 안에서 내린 결론은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서 제가 언뜻 보기에도 “좀 이상한 신부님이시다.”하는 느낌을 주는 분이 계십니다.


이처럼 사제직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사제생활 10여년을 한 제 안에서도 현재 진행 중입니다.

어릴 때 꿈에서도 사제가 될 생각을 못했을 적에 그저 어렵기만 했던 신부님들의 모습부터 처음 신학교에 들어가 ‘모든 이 에게 모든 것이’ 되려 했던 교만한 환상들,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가족과 친지들에게 들었던 올바른 사제의 모습, 서품을 받고 새 신부 시절에 선배 사제들의 언행이나 생활을 못마땅해 하던 모습....또, 지금까지 제 수준에서 이해할 수 없지만 분명히

‘하느님의 사제’인 분들은 얼마든지 계십니다.

“사제는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신부는 자고로 저래야 한다.”하는 식으로 고정된 모범 답안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사제를 사제로 만나기로 이어집니다.]

    

천주교 서울 대교구 중림동[약현]성당 주임 정훈 베르나르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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